[프라임경제] 식도락(食道樂). 많은 사람들에게 먹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이다. 요즘 각종 TV 채널에 '먹방'이 대세이고, 맛집 투어 또한 유행이다. 이런 한편 불과 비행기로 몇 시간 떨어진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유엔세계식량계획(WFP)과 다른 4개 UN기구들이 공동으로 발간한 '2017 세계 식량 안보와 영양실태 보고서(SOFI)'에 의하면, 1990년대부터 조금씩 줄기 시작하던 기아인구는 2015년 7억7700만 명까지 줄었지만, 최근 8억1500만 명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세계 인구 아홉 명 중 한 명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틸까 고민해야 하고 밤에는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잠자리에 든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이전에는 식량이 없어서 굶었다면, 지금은 낭비되는 식량이 넘친다. FAO 2014년 보고서를 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생산된 식량 중 1/3은 버려진다. 선진국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개발도상국에서는 생산, 저장, 수송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식량이 버려지고 있다. 이 보고서는 1년에 버려지는 식량이면 20억명을 먹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비만 인구는 기아인구의 2배가 넘는다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서 고통을 받는 셈이다.
기아는 한 개인뿐 아니라 한 국가, 나아가 세계 전체를 멍들게 한다. 특히 미량영양소의 결핍은 간과되기 쉽지만 장기적인 영양불균형을 야기해 '히든 헝거(Hidden Hunger)'라고 불린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임신 직후부터 만 2세까지 인생의 첫 1000일 동안의 영양결핍은 때를 놓치면 영영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지능과 건강문제로학업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성인이 돼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그의 자녀들 또한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프랑스 혁명과 중동의 봄 발발도 민중의 배고픔이 큰 몫을 했고, 식량 가격이 폭등했던 2007~2009년에는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폭동들이 60여 차례 이상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 모두가 기아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반기문 8대 유엔사무총장은 2012년 브라질 리오에서 우리 세대에 기아를 끝내야 한다는 '제로 헝거 챌린지 (Zero Hunger Challenge)'를 선언했다.
더불어, 유엔은 2015년 9월 총회에서 향후 15년간 전 세계와 인류가 함께 추구해야 할 17개의 지속 가능한 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하 SDGs)를 제시했고, 전 세계 기아퇴치 '제로 헝거'는 빈곤퇴치와 함께 SDG의 최우선 목표가 됐다.
"그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SDG의 핵심정신에 맞춰 제로 헝거 역시 "그 어떤 사람도 굶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정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생존에 필수적인 '먹을 권리'만큼 중요한 권리가 있을까? 이 풍요한 시대에 한 사람이라도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한국의 식량 사정은 아시는 바와 같이 긴박한 상황에 놓였으며 절대적인 원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세계식량계획 본부에 원조를 호소하기로 (중략) 긴급구호 식량 획득에 적극적인 활동을 촉구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1963년 WFP에 긴급구호 식량을 요청하던 정부 공식문서의 일부분이다. 보릿고개 시절,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다 항문이 막히고 찢어져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기아문제로 시달렸던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다.
WFP는 1964년부터 20여 년간 대한민국을 도왔다. 전국 각지에서 당시 돈 1억400만달러를 투자해 23개 프로젝트로 아동 영양 급식, 취로 사업 등을 진행했고 WFP 지원은 당시 일간지 일면 헤드라인을 장식하곤 했다.
WFP는 한국을 도왔던 유엔기구 중 6.25 당시 한국을 지원했던 유엔한국재건단(UNKRA)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두 번째로 많이 한국을 도왔던 유엔기구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과거 미국과 유럽 등 각 공여국의 원조 마크가 찍힌 식량을 받았었지만, 이제는 태극기가 찍힌 식량 포대를 보내 전 세계 곳곳에서 가장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돕고 있다.
대한민국은 제로 헝거 달성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며, 수많은 국가들에게 희망을 주는 모범사례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라도 지구촌 이웃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우리 각자가 어떤 작은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