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훈식 기자 기자 2017.08.23 14:49:35
[프라임경제] 최근 자동차업계는 물론 국내 모든 업계의 관심이 기아자동차로 쏠리고 있다. 이르면 이달 말 판결날 기아차 통상임금 1차 소송에 따라 향후 국내산업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는 진단 때문이다. 특히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신의칙 인정 여부에 따라 승·패소의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여 법원 판단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을 의미하는 통상임금은 기본급과 직책수당, 직무수당 등이 포함된다. 휴일·야근수당이나 퇴직금을 계산하는 기준으로, 통상임금이 오르면 수당이나 퇴직금도 함께 늘어난다.
국내업계 노사 양측은 이런 통상임금을 놓고 지난 2013년까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데 급급했다.
그러던 중 2013년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2013 전원합의체)는 "정기성과 일률성, 고정성이라는 요건을 갖춘 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다. 이는 그간 판례와 고용노동부 예규(1988년 제정) 사이 수차례 제시된 해석상 논란을 잠재우고자 종합적인 정리를 마쳐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한 것이다.
즉, 사측이 지급한 상여금이 일정 간격(정기성), 모든 근로자에게 고루 지급(일률성)되고, 추가 조건 없이 하루만 일해도 지급(고정성)됐다면 통상임금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와 더불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3년치(임금채권 소멸시효) 미지급분을 소급 청구할 수 있는 요건을 제시했다. 다만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 때는 소급 지급 청구를 불허한다'는 '신의칙'의 조건을 달았다.
2013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가장 주목받는 것은 이달 17일 예정됐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재판장 권혁중) 기아차 노조 통상임금 1심 판결로, 소송 상징성이 큰 만큼 국내 산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요건보다는 신의칙 최대 쟁점…장래 위기까지 고려해야
기아차 노조원 2만7458명이 2011년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건 기아차 통상임근 1심 판결이 이르면 이달 말경 확정된다. 노조 승소 시 사측은 당시 연 700%에 이르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연장 근무 등 각종 수당을 다시 계산해 지급해야 한다.
기아차 노조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고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패소한 현대차 노조와는 달리 2013 전원합의체가 제시한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모두 갖춘 만큼 승소 가능성을 높게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기아차 소송을 포함해 계류 중인 통상임금 최대쟁점을 '정기성·일률성·고정성'보다는 '신의칙 인정' 여부로 판단하는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외 상황 감안 시 오히려 사측에 유리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민법 제2조 신의성실의 원칙(信義誠實 原則)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신의성실의 원칙, 즉 신의칙은 권리의무 양 당사자가 권리 행사나 의무 이행에 있어서 신의와 성실로써 행동해야 한다는 '민법상 대 원칙'이다.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해야 하며, 형평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노사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합의(묵시적 합의 및 관행 포함)를 하고, 이를 토대로 인상율과 같은 그 밖 임금조건을 조율했음에도 노조가 추가 임금을 요구해 기업이 '경영상 중대한 차질'을 빚을 경우 신의칙에 위배돼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한 바 있다.
신의칙 인정 여부에서 핵심인 '경영상 중대한 차질'은 정도 차이는 있으나 '근로기준법 24조 정리해고(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 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와 유사한 성격이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당장 기업 도산이 우려되는 상황 외에도 장래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 인원삭감에 합리성이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마지노선 5% 이익률 '현실은 3%' 당장 3분기부터 적자
기아차가 이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경영상 중대한 차질'을 겪을 것인가에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측 추가 부담 금액은 회계평가 기준 3조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판결 즉시 충당금 적립의무가 발생해 현 회계기준으로 당장 3분기부터 영업이익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기아차 상반기 영업이익이 2010년 이후 최저실적인 7870억원(전년比 44% 급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2012년 7.5% △2015년 4.8% △2016년 4.7% △2017년 상반기 3%로 급락하며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연구원들은 '현재 3%에 그치는 기아자동차 영업이익률 수준을 상회해야 기업 존속이 가능하다"며 "최소 5% 수준을 유지해야 기업이 존속하고 지속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이런 위기에 놓인 기아차가 소송마저 패소할 경우 투자 및 법인세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함에 따라 더 큰 폭의 자금이 필요해 경우에 따라 차입경영도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중국 사드사태로 사실상 차입경영 중인 기아차가 적자상황까지 맞게 되면 국내외 자금조달이 어려워져 유동성 부족과 더불어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질 수 있다. 또 투자여력 감소로 미래 경쟁력이 약화되고, 일자리 창출 동력도 상실할 우려가 있다.
◆全 산업계 '연쇄 파급효과' 중소업체 존폐 위기 초래
이번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은 승·패소 여부에 따라 자동차업계뿐 아니라 전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효과도 염려된다. 우선 현재 기아차 1~3차 협력부품업체는 3000여개. 국내 매출액(지난해 기준 31조6419억원) 중 1차 협력사에 지급되는 부품 납품액 비중이 53%(16조7721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기아차가 3조원 상당의 우발적 채무로 발생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경우 대금 결제 등 현금흐름에 즉각적인 영향이 불가피해져 대금지급 의존도가 높은 영세 부품협력업체들은 자금 회수에 지장이 발생한다. 즉각적인 자금조달이 어려운 중소업체의 경우 존폐 위기상황이 초래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동차부품업계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해 "유기적으로 연결된 자동차산업 생태계 특성상 전후방 3000여개 업체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또 상여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중소 부품산업계에도 심각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이들은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상여금을 임금제도로 운영 중인 다수 중소업체들은 노사간 소송분쟁과 더불어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 리스크와 더불어 경쟁력 저하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판결이 국내 산업 전체 분야에도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포함될 경우 산업계에서 38조원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으며, 한국 노동연구원 역시 4년간 직간적 추가 노동비용이 22조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대한상의에서 126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65.1%가 신규 채용을 축소하고, 19.8%가 기존 고용을 감축하겠다고 응답한 바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의 경우 완성차 및 부품사에서만 2만3000명이 넘는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산업계가 부담할 38조5500억원 인건비로 최대 41만8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이후로도 매년 8만5000~9만6000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기아차 패소로 인해 현대차를 포함한 다수 대기업 노조에서 추가 소송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 다양한 산업군에서 혼란스러운 소송이 복마전 양상을 띌 것으로 보인다.
또 대기업 강성노조 중심의 통상임금 소송이 무노조 중소기업들에겐 사실상 제기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 심화도 우려된다.
실제 기아차 노조는 승소시 인당 1억1000만원(총 31조1000억원)의 소급분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기존 평균 연간 급여(9600만원)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 당해연도만 연봉이 무려 2억원이 넘는 효과가 발생한다.
여기에 별도 합의가 없으면 향후에도 매년 1000만원 이상 지속적인 연봉 인상이 이뤄져 대기업 강성노조 대 무노조 중소기업간 임금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음이 분명하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승소 시 거액의 소급분을 받을 수 있는 통상임금 소송은 대기업 강성 노조의 또다른 특권"이라며 "지금도 중소기업 평균연봉(3400만원) 3배 넘게 9600만원을 받는 기아차 근로자들이 통상임금으로 인한 소급분까지 받으면 많은 노동자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