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배우 윤손하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주말부터 일주일째 온라인 검색창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확하게는 '윤손하 아들' '아시아나 회장 손자'라는 키워드가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불편한 쟁점에 엮여있다.
동시에 학부모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던 숭의초등학교(숭의초)는 여론의 조리돌림과 교육청 감사까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피해자가 아닌 상대적으로 '힘 있는' 가해자편에서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이 실체화되는 상황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어지간한 논란거리는 예사로 받아들일 정도로 둔한 성미지만, 기자에게 이번 사건은 유독 남 일 같지 않았다. 다섯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먹고살기 바쁜 소시민으로서, 우리 가족보다 더 강한 힘 앞에 언제든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이 쉽게 연상된 까닭이다.
가해자와 해당 학교에 대한 비난이 이토록 폭발적인 것은 기자처럼 등골 오싹한 상상을 해버린 사람들이 꽤 많다는 뜻이리라.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함께 기자를 더 불편하게 한 것이 또 있다. 바로 해당 학교와 그 학교를 거느리고 있는 사학재단의 위선이다.
숭의초는 영훈, 리라와 함께 서울에서 손꼽히는 명문 사립이었다. 지난해 기준 학생 한 명당 1년 교육비 891만원, 달마다 100만원 넘는 학비가 들지만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이 좋았다.
일례로 기독교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강조하고, 신앙에 기초해 철저한 커리큘럼을 갖춘 미션스쿨이자 입학 직후부터 클래식 악기를 배우게 해 음악을 통한 인성교육을 강조하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숭의 졸업생이면 무조건 악기 한 가지 만큼은 수준급으로 다룬다'는 말이 돌 만큼 레슨 수준 역시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6년 전 월간지 <여성조선>에 실린 숭의초등학교 학생회장단 인터뷰에 잘 드러나 있다. 당시 학생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수요일 예배 시간에는 다 같이 성경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매일 좋은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쁜 아이들'도 없는 것 같아요."
기사에는 숭의초 교감이 '선한 인성'을 학교 학생을 표현하는 키워드로 꼽았다는 대목도 등장한다. 그는 '철저히 기독교 정신을 반영한 커리큘럼이 아이들의 인성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자평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면면과 엮기 민망할 만큼 바르고 품격 넘치는 자랑거리들이다. 하지만 학교 안에는 매년 집단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가 끊임없이 양산됐다. 그리고 이는 학교가 절대 밝히고 싶지 않은 치부다.
전국 초·중등학교 정보공시포털 '학교알리미'에 따르면 숭의초등학교에서는 2014년 이후 작년까지 학교폭력 실태조사 때마다 적게는 15명, 많게는 36명까지 학교폭력 피해자가 나왔다.
3년 전인 2014년 상반기에 실시된 1차 조사에서 전체 235명 중 18명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답했고 폭행이나 감금을 당한 사례가 5건 있었다. 그해 2차 조사에서는 피해자가 더 늘어 36명이 피해경험을 인정했으며 14명이 폭행·감금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작년 역시 1차 조사에서 35명, 2차 조사에서 20명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래에게 얻어맞거나 감금당했었다는 보고가 7건씩 있었으니 이번 논란과 비슷한 피해사례가 없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
"우리는 교육청이 무서운 게 아니라 이사장이 무섭다"라며 피해자 어머니를 회유하던 학교장의 말은 그들의 위선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보이고 싶은 것만 보여주며 명문을 자처하는 자신감은 폐쇄적인 조직과 불투명한 시스템에서 근거가 엿보인다.
어쨌든 윤손하와 아시아나에 관심이 몰릴수록, 학교 운영권을 쥔 사학재단은 논점에서 벗어난 분위기다.
숭의초등학교가 속한 숭의학원의 전신은 1903년 미국인 선교사 마포삼열 박사가 세운 숭의여학교다. 1938년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에 반발해 자진폐교한 민족사학으로 1953년 학교법인으로 재탄생했지만 이후 크고 작은 풍파에 시달렸다.
전임 이사장이던 이준 삼풍그룹 회장이 삼풍백화점과 함께 주저앉으면서 숭의학원은 1999년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에게 인수됐다. 앞서 숭의초등학교 교장이 '교육청보다 무섭다'고 토로했던 윤순희 이사장이 바로 백 회장의 부인이다.
사학의 족벌·친족경영은 '사학재벌'이라는 껄끄러운 타박과 함께 학교법인의 신뢰도를 깎아먹는 약점으로 꼽혀왔다. 인성을 강조했던 명문학교가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옹호한' 배경에 불투명한 시스템이 깔려 있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사건을 캐는 열혈 기자들의 실화다.
'보스턴 글로브' 소속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은 단순히 피해자 한 명의 단발성 폭로가 아니라 부패한 교회권력의 시스템을 추적하고 이를 고발하기 위해 뛰어 다닌다. 이들을 저지하려는 벽은 아주 높고 단단하지만 결국에는 무너져 내린다.
지난해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해 유명해진 이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린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사는 것을 잊곤 한다. 그러다 갑자기 불이 켜지면 주위에 탓할 게 너무 많이 보인다."
'문제는 시스템'이라는 일갈과 함께 어두운 세상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 대목이다. 고인 물이 썩는다는 것은 상식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어떤 병폐를 낳는지 사람들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번 사건 역시 시작은 병든 시스템이다. 문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인데, 그저 나와 내 가족이 피해자가 아님을 안도하는 것을 매번 반복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