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7.05.04 18:37:16
[프라임경제] # 98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 이지영씨(가명). 경제가 어렵다는 말에 인기전공을 택했지만 취업에서는 매번 아슬아슬하게 고배를 들었다. 뒤늦게 진학한 대학원에서 청소년상담이라는 새길을 찾았지만, 일자리 수요가 적은 영역이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금 그녀의 자리는 모교에서 배려해준 무기계약직 행정조교다. 겉으로 보기엔 대학교 사무직원이지만 정직원보다는 실상은 대학원생들의 아르바이트거리인 연구조교에 더 가깝다.
'수능세대'를 연 94학번이 졸업반 무렵에야 1997년 연말 IMF 사태의 유탄을 맞았다면, 98학번 이후 세대는 아예 이런 시대의 흐름에 몸을 담그며 살아왔다. 98학번들은 어느덧 마흔을 앞두고 있다.
빨리 취업한 이들은 직장에서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결혼을 한 이들은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가 됐다. 조남주 작가가 쓴 '82년생 김지영씨'에는 1500원짜리 커피를 먹은 일로 남편의 눈치를 보고 싸우게 된 전업주부, 일명 '맘충'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 맘충 '김지영씨'마저 부러운 비자발적 미혼 '이지영씨들'이 있다. 불혹을 바라보지만 미래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면, 남녀 불문 고단하다. 하지만 이는 여성들에게 더 가혹하게 작용한다.
◆30대 후반 여성, 더 배우면 더 힘들어?
올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여성·출산력·아동, 주거실태'에 따르면 2015년 25~29세 여성 중 미혼 비중은 77.3%, 30~34세는 37.5%이며 35~39세도 19.2%에 달한다.
이들이 결혼에 성공한 같은 연령대 여성에 비해 조건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학력이 오히려 결혼에 장애가 된다는 논란마저 있다. 미혼 비율은 대학원 졸업자에서 23.4%로 정점을 찍는다.
결혼 문제는 엄연히 개인의 문제다. 하지만 결혼을 못한 여성들 중 골드미스, 적어도 남녀 차별이 별로 없는 정규직 직장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다.
2016년 10월에 새로운사회연구소가 내놓은 '참을 수 없는 궁극의 가벼움, 여성임금' 보고서는 "대졸자 여성이 응답자의 절반을 훨씬 넘는 수임에도 대졸 이상 응답자의 30% 이상이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혼도, 취업도 어려운 세대…일본 '패러사이트세대' 답습 중?
물론 이런 '이지영씨들'에게 든든한 가족의 도움이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웃나라의 상황을 보면, 이 힘이 마냥 불행을 유예해주지 않는다.
최근 일본 언론에 소개된 총무성 통계연구소에 따르면 45~54세 연령대 중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해 살고 있는 패러사이트세대는 심각한 규모다. 1980년 이런 조건에 해당하는 이들은 18만명에 불과했으나, 2016년에는 158만명으로 증가했다. 부모의 타계로 이들은 곧 그런 도움마저 잃게 된다. 이에 당황한 일본의 시민사회계는 이들 패러사이트세대의 자립을 돕기 위한 좌담회와 세미나를 마련 중이다.
여성들이 겪는 임금 문제를 보면, 일본의 패러사이트세대의 설 자리보다 한국 미혼 비정규직 여성의 입지가 더욱 좁다.
통계청이 여성가족부와 협력해 작성한 '201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의 연령대별 비정규직 근로자의 취업자 비중은 40대가 22.6%로 가장 높고, 50대 22.5%, 60세 이상 20.0%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는 점을 흘려보기 어렵다. 마흔 무렵, 비정규직은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맴돌며, 경력 단절 여성들의 노동시장 컴백, 즉 비정규직 경쟁 참여 또한 늘어난다는 뜻이다.
즉 미혼으로 좋지 않은 일자리를 계속 옮겨다니던 '이지영씨들'은 이제 회사를 다니다 육아를 어느 정도 마치고 다시 35~39세에 비정규직을 노리며 돌아오는 '김지영씨들'과도 치열한 자리 경쟁을 또 해야 한다.
여성부-통계청 공동 자료 조사 당시, 1인 이상 사업체의 여성 월평균 임금은 178만1000원으로 남성 임금의 62.8% 수준이다.
◆"혼자 살면 외려 더 많이 필요해요…230만원 이상 벌게 해 주세요"
다시 여성 근로자들을 상대로 한 새사연 조사 자료를 보자. 새사연은 가구규모별 '생계에 필요한 자기 소득 수준'을 밝혀냈다. 이를 살펴 보면, 1인 가구는 235만원, 2인 가구 289만원, 3인 293만원 등으로 나타난다. 4인 가계의 여성 근로자의 경우 315만원을 바란다.
막상 '혼자 씀씀이'임에도 여성 근로자가 벌어야 하는 필요 최소액의 부담은 더 크다는 것이다. 여성 월평균 급여 기준 대비 혼자 사는 여성이 얼마나 팍팍한 형편인지 추론 가능하다.
곧 일본처럼 본격적으로 혼자 쓸쓸히 빈곤을 겪게 될, 적지 않은 수의 30대 후반 미혼녀들, 어느 세대의 여성들보다도 잘 배운 이들이 결혼과 일 양쪽에서 실패하고 있다. 혼인 연령에는 이제 '골든타임'이 없지만, 이들 '이지영씨들'에게 일자리 등 종합대책을 만들어줄 '골든타임'은 길지 않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