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7.04.26 14:07:03
[프라임경제] 아르바이트생이 근무 중 괴한의 공격을 받고 살해당해도 개별 편의점 사장과의 고용관계만 강조하며 도의적 책임 이상을 인정치 않는 편의점 가맹본부가 있다. 그 도의적 책임조차 자사 홈페이지에 띄운 모호한 사과 팝업공지 하나로 다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100일이 넘게 유가족과 노동문제 전문연구기관 알바노조는 이 가맹본부 '본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대치 중이다. BGF리테일(027410) CU편의점의 이야기다.
BGF리테일(027410)이 가진 CU편의점. 우수한 도시락 메뉴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울러 자사 제품을 사랑하는 일명 'CU 덕후'들의 의견을 실제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반영하는 등 열린 태도로도 이름 높다.
그러나 유독 본사와 가맹점, 그리고 그 개별 가맹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관계에서만큼은 '법대로'를 고수하며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 현행법 구조가 가맹본부에 유리할 것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노동문제 전문연구기관 알바노조 등 극히 일부 시민사회계만이 이 같은 기업의 책임론을 주장한다.
본사에서 제공한 인테리어 때문에 고인은 좁디좁은 계산대에 갇혀 속수무책 칼로 난자당하면서도 탈출 기회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경산시 한 CU편의점에서 지난해 아르바이트생 A씨가 살해당했다. 봉지값 20원을 줘야 하느냐 안 줘도 되느냐로 손님과 실랑이가 있었다.
봉투 무상제공 금지 제도가 도입된지 10여년새 어디서나 일어나는 사소한 시비지만, 공격성 강한 조선족 남자였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격분한 이 손님은 감정조절을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흉기를 갖고 돌아와 아르바이트생을 잔인하게 공격했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대다수의 편의점 계산대는 극히 좁은 구조와 입구, 빼곡한 각종 진열 물품 등으로 '갇힌 구조'로 운영된다. 이 부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편의점이나 대동소이하다.
알바노조 관계자는 본지의 질문에 "현장에 건축 관계자와 함께 방문한 적이 있다. 조금만 넓게 설계됐었어도 (도망가)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고 말하며 설계 문제점을 지적했다.
알바노조가 본사 책임론을 펼치며 법률적 검토와 자문을 여러 변호사 등에게 구하는 일에 매달린 것도 이 같은 극히 상식적인 혹은 전문적인 지식에서 볼 때 지나치게 열악한 구조 때문이다.
다른 프랜차이즈업종도 마찬가지지만 더욱이, 우리나라 편의점은 개점할 때 입지 문제 상의부터 각종 인테리어 문제까지 회사에서 공급받는다. 특별한 경영 노하우 없이도 브랜드 파워로 어느 정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로 보면 영업의 자유가 전혀 없고, 어떤 구조상 임의 변경이 허용되지도 않는 구조다.
일각에서 '돈 짊어지고 들어가 편의점 본사 종업원 노릇해주는 제도'로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보호의무' 놓고는 법조계 의견 갈려…유족 발 동동
다만 알바노조 관계자들을 고민케 하는 요소가 있다. 민사법상 '보호의무'를 통해 본사는 자사의 간접지배를 받는 가맹점 아래 피용자(비정규직 근로자)까지도 배려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보호의무' 혹은 '안전배려의무'의 주장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본사와 한 다리 건너 가맹점주가 중간에 서 있는 구조가 여기도 끈덕지게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비정규직 더욱이 개별 가맹점주와 고용관계를 맺은 점 때문에 문의를 받은 변호사들 중에도 약 절반은 부정적 태도를 보인다고 알바노조는 설명했다.
본사 직원들의 각종 업무관계 연락으로 실질적 지배를 하는 점, 내부 구성이나 운영 등 전반에 관리가 이뤄지는 점 등에 주목하는 변호사들은 그 속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까지 안전 배려 의무가 있다는 논리구성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바로 이 논란 요소가 BGF리테일이 당당하다 못해 "CU편의점을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송구하다"는 유체이탈화법 공지 띄우기로 모든 책임을 면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뒷배경이다. 법원에 가도 단기간 내에 배상책임 성립 안 된다는 자신감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고전적 민사법 논리 대신 제조물책임법 규명 새 대안으로
우선 미국 프랜차이즈 본사 관련 판례 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본사가 종업원 안전 문제에 간섭이나 개입을 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논리가 존재한다.
그런데 폐점 직후 무장 강도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어서 맥도날드 본사는 가맹상들의 보안을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하고 대책과 행동지침 마련 후 가맹상들에게 이를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짐 칼슨이라는 맥도날드 본사의 지역 보안 관리자는 문제의 점포 보안상태를 점검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이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종업원이 살해당했고, 소송이 제기됐으며 본사 안전관리의 책임이 인정된 일리노이주 판례(572 N.E.2d 1073, Web 1991 IIIApp. Lexis 715(1991))가 존재한다.
이 판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좀 다른 예로 임의적 구조변경이나 판단에 따라 개별 가맹점주가 좁디좁은 계산대를 운영해도 오히려 본사 직원이 방문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위험을 인지, 문제시하거나 이를 문제시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 등 가맹본부 본사에 책임을 물을 귀중한 연결고리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식 보호의무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법조계 의견이 갈린다고 해도, 다른 카드가 있다.
이미 많은 선진국이 시행 중이고, 우리도 2000년대 초반 도입한 '제조물책임법'이다. 제조물책임법은 PL법으로도 불리며, 제조물의 결함에 의해 생명,신체 혹은 재산에 피해를 본 경우 제조업자 등의 책임에 대해 규정한다.
무과실책임을 기본 구조 삼아 책임주의의 일반 민사법 대비 대단히 혁신적인 법률이자 소비자 보호에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꼽힌다.
제조물에는 다른 동산이나 부동산의 일부를 구성하는 경우를 포함한 '제조 혹은 가공된 동산'이 모두 들어가므로, 인테리어 등 다른 부동산에 부합되는 혹은 철거가 가능해도 일단 고정된 상태로 운영되는 구조물에까지 적용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토지, 건물에 설치 내지 부가된 동산을 제조물로 볼 수 있고, 이를 제조물책임법 보호 범위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부품 그 자체에 결함이 있어서 누수, 균열 등의 결함건물이 된 때는 그 부품도 제조물로 문제 삼을 수 있다.
물론 '개발위험의 항변'이라고 해서, 당대의 기술상으로는 그 물건이 일단 그렇게 약간의 위험을 안은 상태로 설계, 판매됐다고 해도 면책이 된다는 예외조항도 존재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많이 쓰는 일반적 가구, 그리고 이를 협소한 공간에 배치하는 문제는 이에 해당할 확률이 거의 없다. 약품이나 복잡한 첨단 기계 등을 개발, 판매하는 회사 등이나 주장할 수 있고 그 성립 여부를 다툴 부분이라는 것.
결국 BGF리테일의 문제는 자꾸 고용자, 혹은 사실상의 고용자 등으로 접근만 할 게 아니라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물품의 공급자 지위에서 접근해 새롭게 규명할 필요가 높다는 지적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