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의 권위는 매우 높습니다. 여기 출판부에서 펴내는 책들이 더러 한국에 번역되기도 하는데, 화제를 모으기도 하죠.
필자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여기서 싱가포르 등 일명 '아시아의 4마리 용'이 급격히 발전한 이유를 '신유교주의'로 규명했다고 해서 대학입시 관련 외울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황창규 KT 회장이 14일(이하 현지시간) 바로 이 HBS에 강연자로 서게 돼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됐습니다. 그는 이번에 석사 2년차 120여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죠.
특히나 그에겐 이번 특강이 처음이 아닙니다. 삼성에 근무하던 시절 이미 강연을 하러 HBS에 온 바가 있기 때문이죠. 하긴 '황의 법칙'이라는 걸출한 반도체 관련 어젠다를 만들어낸 인물이자 KT(030200) 실적 문제를 해결한 승부사이기도 하니, 여러 번 초청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긴 합니다.
그의 자연스러운 제스처 역시 미국 유수의 대학 강단에 특별히 초청돼도 어색하지 않아 자연스럽다는 평을 얻는데요. 자칫 잘못하면 삿대질 쯤으로 보이기 쉬운 손가락 제스처 등도 대단히 잘 활용한다는 것이죠.
물론 이렇게 '버터 향기'가 나는 건 그 자신 성공한 글로벌 기업의 CEO이기 전에 미국 유학파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풀이도 뒤따릅니다.
이 정도 화려한 키워드로 하버드와 연관된 인물은 많지가 않은데요. 아마 하버드대 석사와 프린스턴대 박사를 속성으로 끝냈던 고 이승만 전 대통령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보수진영에서 '건국 대통령'으로 추앙해 마지 않는(이런 시각에 따르면 상해 임정 활동의 의의가 대거 축소되죠) 인물이죠. 또 미국에서 외교전에 치중한 독립운동을 오래한 탓인지, 말투나 행동거지에(어순이 도치가 된다든지) 미국 스타일이 물씬 풍겼다고 합니다.
황 회장 개인적으로도 영광되고 좋은 일이자, 국위를 선양한 상황에 대해 제스처 하나를 갖고 일일이 시비를 하는 건 지나쳐 보입니다만, 이왕 제스처와 분위기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가지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황 회장은 이번에 연임에 성공했죠. 그는 "3년 전 이 자리에 섰을 때 KT는 실적 악화와 외부 악재로 매우 위기로운 상황이었지만 지난 3년간 뼈를 깎는 혁신으로 KT 속에 잠재된 1등 DNA를 살렸다"고 자평하며 앞으로도 더 잘 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졌습니다.
이런 자화자찬식 이야기를 할 정도로 그가 궁지에 몰린 것은, 좋은 성적표에도 최순실씨 광고 몰아주기 등 대단히 불미스러운 사태에 연루됐기 때문입니다.
60억원이 약간 넘는 액수였다죠. 문제는 KT가 이런 이상한 지출을 할 정도로 녹록한 사정이 아니라는 것, 즉 황 회장이 살려냈다는 평이 지배적일 정도로 아직 '큰 병치레 후 기초체력이 많이 회복되지 못한 사정'이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KT는 비교적 부채가 많다 보니 이자를 많이 물고 있는 상황입니다. 영업이익은 1조4400억원에 달하지만 이자비용이 3000억원을 넘죠. 이자보상배율은 4.3에 달합니다.
아울러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마진율은 21.4%인데요, EBITDA 마진율이 높은 것은 감가상각비 및 무형자산상각비가 3조4200억원 규모로 크기 때문이랍니다. 결국 광고비를 덥썩 60억원이나 집어주기엔 녹록지 않은 사정이었다는 것이죠.
더군다나 황 회장이 실적이 나빴던 것도 아닙니다. '내 실적이 이러한데,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느냐?' 이런 식으로 당당히 어필할 수 있는 게 HBS가 진정 원하는 (아직 한국처럼 재벌과 공기업, 준공공기관 등에 정부와 정권 관계자들이 압박을 줄 수 있는 나라의) 우수 CEO상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점에서 아까 '이승만의 향기'와 '황창규의 향기'가 겹쳐진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이죠. 고 이 전 대통령이 본인은 친일파를 대거 중용해서 허약한 신생 국가의 기틀을 닦은 점과, 황 회장이 이석채 전 회장 시절의 병폐를 그대로 답습해 자기 입지를 닦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겹쳐집니다.
KT는 황 회장의 전임자인 이 전 회장 시절 배당금을 크게 늘렸습니다. 이 전 회장은 2009년 취임 첫해부터 KT의 배당금을 액면가 5000원 1주당 2000원이 넘는 배당정책을 실시했습니다.
KT는 2009년 회계연도에 배당금이 주당 2000원, 2010년 2410원, 2011년 2000원, 2012년 2000원, 2013년 800원의 배당을 실시했습니다(2013년의 경우 연결기준 603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이런 배당을 실시).
그런데 황 회장은 어렵게 살려낸 회사의 자금을 헐어 여전히 고배당을 하고 있습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KT를 가리켜 실적과 고배당 성향이 잘 어우러진 좋은 종목이라고들 합니다. 다만 이게 마냥 좋은 일인지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KT는 금년 열린 주주총회에서도 주당 800원의 배당금을 확정했습니다.
KT의 정책은 계속해서 투자자들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민감한 사안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단순히 자연스러운 미국식 제스처, 풍부한 식견 등 못지 않게 '황창규와 이승만은 닮은 점이 있다는 등식을 그려보게 됩니다. 과거의 병폐를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는 점도 마찬가지죠.
이런 약점을 넘어서야 앞으로도 또 HBS 초빙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감 넘치면서도 당당한 황 회장의 다음 HBS 특강 사진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