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올해 3조원의 공격적인 해외투자를 예고했던 SK이노베이션(096770)이 최근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데다 최태원 SK 회장의 부재로 발목이 잡힌 모양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정유업계 최초로 매출 39조5205억원, 영업이익 3조2286억원을 기록했다. 정유업계가 호황을 지속하면서 이번 1분기에도 8000억원대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유업계의 이번 호황을 견인한 것은 주 매출원인 정유 부문에서 정제마진과 재고차익을 실현한 것도 있으나 석유화학과 윤활기유 등 부가가치 영역의 역할이 컸다. SK이노베이션 역시 화학자회사인 SK종합화학·인천석유화학을 통해 약 1억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으며 SK루브리컨츠 등 윤활기유사업을 더하면 비정유 사업에서 2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거둬들였다.
올해 SK이노베이션은 3조원의 투자를 공언한 바 있다. 사업구조 혁신과 사업다각화를 통해 기업가치 3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것. SK이노베이션의 투자는 해외 M&A 및 신사업에 집중돼 있다. 매출은 높으나 수익성이 낮은 정유 사업보다는 석유화학 및 전기차 배터리 등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전략을 수립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실제로 정유 4사 중 시설 고도화 측면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가장 낮은 생산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도화율이란 석유를 한 차례 정제했을 때 발생하는 잔사유, 즉 벙커C유를 재정제해 경질유를 뽑아낼 수 있는 설비를 말한다.
정유 4사 중 현재 고도화율이 가장 높은 곳은 현대오일뱅크로 현재 39%의 고도화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GS칼텍스 34.9% △S-OIL(010950) 25.5% △SK이노베이션 23.7% 순으로 나타났다.

석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잔사유가 약 40% 발생하므로, 원론적으로는 현대오일뱅크는 잔사유를 거의 대부분 재정제할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다음 해까지 약 4000억원을 시설 고도화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고도화율은 45% 이상까지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고도화율이 높아지면 저렴한 벙커C유를 추가로 구매해 더 비싼 휘발유 등으로 판매차익을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도화율이 50% 이상인 해외 정유사들의 경우 그와 같은 방식으로 수익을 구현하고 있다.
물론 고도화율만이 석유사업의 기준이라고 둘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이미 정유시설 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있어 낮은 고도화율에도 다른 업체와 비슷한 수익률을 내고 있다"며 "정유사업보다 더 높은 이익을 낼 수 있는 화학 쪽으로 초점을 맞춰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SK이노베이션이 계획하고 있던 해외 투자에 차례로 문제가 발생하면서 사업다각화의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SK그룹이 공들여왔던 '차이나 인사이드' 전략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이 높아지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한반도 배치에 따른 반향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최태원 SK 회장의 부재다.
최 회장은 지난해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박영수 특별검사팀 조사로 인해 출국금지 명령을 받은 후 특검이 해체된 후에도 현재까지 4개월째 해외 사업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매년 개최되고 최 회장도 각별히 관심을 두고 있던 보아오 포럼에도 최재원 부회장이 대신 참석했다.
이런 여파가 SK이노베이션에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다우로부터 EAA 사업분야를 4200억원에 인수하는 데 성공한 SK이노베이션은 여세를 몰아 중국 화학회사 상하이세코에 대해 영국 BP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50% 인수전에도 뛰어들었으나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상하이세코에서 BP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에 대해 2대 주주인 시노펙이 우선매수권을 가지고 있다"라며 "시노펙의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노펙과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지난 2014년 우한 지역에 총 3조3000억원을 에틸렌 합작공장 '중한석화'를 설립한 바 있는 오랜 파트너 관계다. 이는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6년에 걸쳐 공을 들인 중국 사업에서의 최대 결실로 손꼽히는 프로젝트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SK종합화학이 추진 중이던 시노펙과의 부탄디올 생산법인 합작 계획을 돌연 중단하는 등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지난 2013년부터 중국 베이징전공·베이징기차와 합작 설립한 배터리 팩 공장 'BESK테크놀로지 베이징 공장'의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지분 60%를 보유한 협력 파트너사의 전략에 따라 결정한 문제"라며 "한국 서산 공장의 라인 가동 및 증설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