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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모 홈쇼핑 간판 건 '구타유발' 사기극

"작년 11월 알았지만…" 지방 중소기업 피해 속출 중

이수영 기자 기자  2017.04.12 14: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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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중소기업' 네 글자에 담긴 고단함이 유독 짙은 요즘입니다.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사업체의 99.9%, 근로자의 87.9%를 중소기업이 떠맡고 있지만 10곳 중 4곳은 지속적인 매출하락을 걱정할 정도로 경기가 좋지 않습니다.

특히 대부분 제조업에 쏠린 탓에 업체들은 판로. 즉 판매채널 확보에 열을 올리는데요. 그중에서도 TV홈쇼핑은 매출을 드라마틱하게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로 꼽힙니다. 30%를 웃도는 수수료율을 떠안아도 효과만큼은 확실하니까요.

일례로 매출 40억원 정도였던 한경희 생활과학은 2004년 TV홈쇼핑에 스팀청소기를 선보인 직후 150억원으로 매출이 4배 가까이 뛰었고 이듬해 매출 1000억원 돌파, 시장점유율 70%를 달성해 전설로 남았습니다.

이 성공신화를 목표 삼아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업체의 홈쇼핑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데요. 수요가 워낙 많은 탓에 기회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홈쇼핑 진출을 미끼 삼아 중소기업 대표들의 쌈짓돈을 떼먹는 얌체행각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수법은 간단합니다. 홈쇼핑 홍보영상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라고 접근해 계약서를 쓴 후 촬영비 명목을 들어 수백만원을 받고는 차일피일 시간을 끄는 식입니다.

취재 결과 지난해 12월 이후 최근까지 전남 여수 등 호남지역에서만 피해를 봤다는 업체가 열 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속출하고 있는데요. 적게는 250만원부터 많게는 1000만원까지 돌려받지 못한 업체 수십 곳이 냉가슴을 앓고 있었습니다.

정황상 사기를 의심하기 충분하지만 업체 대표들은 수개월째 기다릴 뿐입니다. 문제의 회사가 폐업을 한 것도 아니고 담당자가 제 때는 아니라도 연락이 끊긴 것은 아니기 때문인데요.

두부과자업체를 운영하는 K대표는 "작년 12월 여수에서 서울 강남까지 올라가 직접 대표와 실장, 영상제작 PD를 만나 계약을 진행했다"며 "강남 한복판에 세련된 사무실을 갖췄고 홈쇼핑 관련 상품과 방영영상을 샘플로 보여줘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기자가 확인한 계약서에는 ○홈쇼핑이 보유한 홈쇼핑 채널 '모 홈쇼핑'과 T커머스 채널 'A TV'가 명시돼있었습니다. ○홈쇼핑은 D쇼핑이 경방으로부터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했고 2015년 매출액 기준 국내 3위에 올랐습니다.

계약 상 '갑'으로 명시된 영상제작업체는 작년 8월 설립된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사명도 A TV와 연관성이 있는 듯 비슷합니다. K대표는 작년 12월2일 해당 업체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촬영 날짜만 기다렸다는데요. 4개월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 전혀 진척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담당자로 명기된 A실장은 K대표가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그때마다 회의, 외근 등을 핑계로 제대로 응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K대표의 아들이 지난달 서울 사무실에 직접 찾아갔는데 A실장은 "촬영 일정이 밀려 있으니 기다리라"는 답만 내놨다는군요.

씁쓸한 것은 K대표를 비롯해 촬영비를 건넨 중소기업들은 지방에 위치한 소규모 업체이고 상당수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이라는 겁니다. 일반 사기업에 비해 자금력과 마케팅 경험이 부족한 회사들이죠.

업체들은 속았다는 의심이 들다가도 어쩌면 홈쇼핑 전파를 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고소나 법적대응을 망설였다고 합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D홈쇼핑 또는 A TV와 문제의 업체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인데요.

모 홈쇼핑 관계자는 "문제의 회사는 우리 측과 단 한 건의 거래관계도 없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영상 제작업체로 수차례 연락했지만 대표를 비롯해 관계자들은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습니다. 몇 차례 시도 만에 계약서에 등장하는 A실장과 연락이 닿았는데요.

제대로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A실장은 "(기자)명함을 사진으로 찍어서 메시지로 보내달라"는 다소 황당한 요구를 했습니다. 그렇게 본인의 '개인정보'를 넘겨준 뒤 반나절을 기다리자 임원급인 B이사가 대신 연락을 해왔고 사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취재에 응한 B이사는 "(사기를 당했다는) 업체 이름을 알려주면 우리끼리 원만히 해결하겠다"며 사실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하루 전인 이달 11일자로 업체는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상반기 마케팅팀 신입·경력사원 모집 공고를 낸 것이 확인됐는데요.

B이사는 "홈쇼핑 송출과 관련 영업은 중단했다"라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홈쇼핑 영상 달리 여전히 홈쇼핑 영상 등을 제작하는 프로덕션임을 내세워 영업과 마케팅 직원을 모집 중이었습니다.

지방 중소기업을 노린 사기극일 가능성이 농후해진 가운데 자사 간판을 도용당한 D쇼핑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놀랍게도 관련 그룹 측은 작년에 이미 관련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모 홈쇼핑 관계자는 "작년 11월쯤 해당 부서에서 내용을 파악하고 공식 웹사이트와 블로그 등에 사칭업체 주의를 당부하는 공지문을 게재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난 2월에는 이 업체에 명의도용을 문제 삼아 내용증명도 보냈다네요.

문제는 내용증명 자체에 법적 효력이 없고 지방소재 중소기업들이 공지문을 일일이 확인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 이 때문에 관련 그룹 공식 벤더를 사칭한 사기 영업이 최근까지도 먹혀들었던 겁니다. 국내 재계순위 수위권인 그룹치고는 상당히 미온적인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합니다.

어쨌든, 시간과 돈을 날린 피해 기업들은 조만간 경찰 고소를 포함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함께 입길에 오르내린 모 홈쇼핑이 더 강력한 대응책을 내놓을지 또한 두고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