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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정리 거자필반] 굴착기 기사 對 현장소장 혈투도 산재

임혜현 기자 기자  2017.04.04 1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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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사람은 모이면 언제고 헤어지게 마련(會者定離)이고 헤어진 사람은 다시 만나게 마련(去者必反)입니다. 하지만 반갑게 만나서 헤어지지 못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바로 근로고용관계인데요. 회사가 정리(會社整理)해고를 잘못한 경우 노동자가 꿋꿋하게 돌아온 거자필반 사례를 모았습니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징계나 부당노동행위를 극복한 사례도 함께 다룹니다. 관련 문제의 본질적 해결은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하겠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주장: 안녕하세요? 우리 공단은 산업재해 여부를 검토, 급여 지급·거절을 결정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이번 건은 좀 너무하다 싶어서 부득이 이렇게 법원까지 와서 치열하게 다투게 됐습니다. 

건설 공사 현장에서 관리자가 업무상 고용 관계인 기계 기사와 싸우다 죽은 경우인데요. 아무리 업무시간 중에 싸우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경우라도 이건 개인적인 시비니까, 지급을 하지 않는 게 맞다 보고요. 그래서 불승인 판정을 했는데 유가족 측에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시 하수관 정비사업은 **건설이라는 곳에서 맡아 진행했습니다. 이 회사는 과거 관급공사 순위도 높고, 전통도 있어 인지도도 괜찮기는 했는데요, 그룹에서 힘들어지면서 계열사에서 돈을 계속 짜내어 쓰다 보니 살림이 어려워진 경우입니다. 그러다 결국 그룹이 채권단 압박으로 구조조정을 할 때, 이 회사는 주거래은행과 조정을 통해 계열분리를 하고 홀로서기에 나섰죠.

이렇게 빈껍데기만 남기고 독자생존을 시작하니, 당연히 돈이 안 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시비가 끊이지 않았겠죠.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저희도 그런 사정은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사업장 분위기나 기분 문제, 또 그런 데서 파생되는 사고까지 저희 공단에서 모두 산재로 덥썩 돈을 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굴착기 운전기사로 공사에 참여한 L씨가 수사기관 조사에서 진술한 바를 보시면요, 그날 굴착기를 운전하던 중 현장소장인 H씨의 출퇴근용 승용차와 부딪히는 사고를 냈다는 게 핵심입니다.

참, 이게 건설현장이다 보니 원래 돌도 튀고 흙탕도 묻고 그러는 게 다반사인데, 저희가 보기엔 큰 사고도 아니니 범퍼 정도만 갈면 되는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니 그리고 위험한 중장비의 작업 반경에는 안 들어가는 게 상식 아니겠어요?

그럼에도 화를 못이긴 H씨는 돌멩이를 주워 L씨가 앉아 있던 굴착기 운전석을 향해 던졌다는 것 아닙니까? 운전석 유리가 깨졌고 격분한 L씨는 또 굴삭기 삽을 들어올려 H씨의 왼쪽 다리 부분을 쳐 넘어뜨렸고요. 이게 불행하게도 대퇴부 동맥이 끊어지는 사고로 이어져 결국 산재 사망 여부를 다투게 된 것입니다.

저희가 비정해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국민의 혈세로 조성되는 돈이니 아리송한 경우에는 지급을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건에서 산재 주장을 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족 주장: 안녕하십니까? 현장소장 고(故) H씨의 가족들입니다. 근로복지공단의 고충도 모르는 바 아닙니다만, 부당한 재해 주장이라는 판정에는 승복할 수 없어서 이렇게 공단 결정에 대해 행정법원에 처분취소소송을 내게 됐습니다.

우리가 산재라고 주장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물론 싸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들의 감정 기복이 큰 싸움으로까지 번진 것에는 업무 연관성이 있다 보고요.

공단은 "고인이 상대방인 L씨를 자극하는 등 직무 한도를 넘어 업무 기인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거부를 하는데, 이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판단입니다. 고인이 근무하던 **건설은 살림이 많이 어려운 탓에 현장에서 관리자와 일을 맡아 처리하는 노무자, 기사 등의 관계가 원만할 수가 없었고요.

특히 작업 진행을 사실상 총괄하고 굴착기 기사 등에게 작업 지시를 하거나 독려하는 소장은 완전히 악역일 수밖에 없었죠. 그러니 이런 불만이 간접적으로 작용해 싸움이 커진 경우, 산재로 봐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닐까요?

-서울행정법원 2016구합1172 사건을 참조해 변형·재구성한 사례

건설현장에서 현장소장은 좀 과장해서 말하면 신(神)에 해당합니다. 매일 일당을 받아 생활을 꾸리는 노무자들, 또 비싼 중장비를 개인적으로 구입해 그 값을 할부로 내 가면서 팍팍하게 사는 기사들을 통솔해 하나의 작업을 이뤄낸다는 게 쉽지 않죠.

본사에서 내려오는 각종 오더를 소화하고 또 일부 거를 건 거르면서 중간교량 역할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이 많고 골치 아픈 만큼 권한 역시 막강한 게 사실이죠. 과거보다는 못하다는 소리가 나오지만, 어쨌든 대체적인 윤곽은 이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용돼 일하는 이들로는 이런 중대한 자리에 있는 소장이 설사 부당한 처우를 하더라도 못 따지는 경우가 많죠. 그러므로 이번 시비의 사실관계만 봐서는 오죽해야 서로 싸웠을까 싶어서 소장의 문제, 즉 부덕의 소치라고 보기 쉽습니다. 개인적인 문제라는 것이죠.

하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소장은 대금 지불 등을 점검하는 업무를 담당하잖습니까? 그 업무 지시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직원이나 인부에게 가해행위를 받을 가능성이 내재돼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사고 당시 L씨를 포함한 굴착기 기사들은 받지 못한 대금이 1인당 3000만원가량이나 됐을 정도라서 서로 감정 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이었죠.

결국 공사 대금 등의 문제 탓에 갈등이 있다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가 커지고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인데요. 그래서 재판부에서도 업무와 사용자의 지배·관리 아래 발생한 사고 사이에는 상당 인과관계가 있으므로 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