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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돈 만드는 조폐공사가 존폐위기라고?

이윤형 기자 기자  2017.03.30 16: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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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 직장인 최정현씨(29·남)는 현금이 없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출근길 티머니가 내장된 신용카드로 버스에 올라타고, 회사 근처 카페에서 휴대전화에 등록된 스마트페이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다. 점심시간엔 직장동료들과 A은행의 더치페이 서비스로 점심 값을 해결했다. 퇴근길 출출함을 느낀 최씨는 집 근처 노점상에서 모바일페이로 핫도그 한 개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1000원짜리 한 장 없이도 불편하지 않은 사회가 도래했습니다. 최씨처럼 집을 나설 때 카드 한 장과 스마트폰만 챙기는 현대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결제도구는 △신용카드(39.7%) △현금(36%) △체크카드(14.1%) 순이었는데요. 

여기에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중 지급결제동향'을 살펴보면 지난해 모바일기기를 이용해 결제한 금액은 4조6000억원으로 1년 전(3조원)보다 51.7% 증가했습니다. 

이는 2014년(1조6000억원)과 비교하면 2년 새 187.5% 성장한 수치죠. 이제는 사람들이 돈을 지불할 때 현금보다 카드(신용·체크)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 같은 지급 결제 수단의 변화는 소비자들이 굳이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일상생활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회(현금없는사회)가 빨리 찾아올수록 애가 타는 회사가 한 곳 있습니다. 바로 돈을 만드는 회사, 한국조폐공사입니다. 현금보다 카드를 더 많이 쓰는 시대에 현금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회사로선 이런 사회 변화 현상은 존폐위기 상황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실제로 조폐공사의 지폐제조량은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5만원권 발행이 시작된 2009년 9억9000만장이었던 지폐 제조량은 점점 줄어 5년 뒤인 2013년에는 5억8000만장으로 41.4%나 감소했는데요. 이 같은 제조량 감소는 약 10년째 지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금이 사라지면서 돈을 만드는 조폐공사도 사라지게 될까요. 결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폐제조량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지만 조폐공사는 매년 매출 최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기 때문이죠.  

최근 김화동 한국조폐공사 사장은 "지난해 매출이 4640억원으로 사상 최대규모를 달성했다"고 밝혔는데요. 조폐공사의 매출은 지난 2014년(4276억원)과 2015년(4595억원)에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돈 만드는 회사가 현금이 사라지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앞날이 어두운 본업(현금제조)에서 일찌감치 눈을 돌려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지폐 관련 파생기술을 신 성장동력으로 삼은 데 있습니다. 

실제로 조폐공사의 사업 포트폴리오도 크게 변화되고 있는 모양새인데요. 실제로 전체 사업에서 화폐 제조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몇 년 사이 60%에서 40%로 줄어들었습니다. 조폐공사는 이 수치가 조만간 30%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도 하죠. 

현재 조폐공사는 제조업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SW)사업으로 변화하고 있는데요. 현금을 만들던 회사인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인 위조지폐 방지 기술을 활용해 각종 위·변조 상품 방지 기술을 민간기업에 판매해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보안 기술 사업의 경우 1967년부터 기술연구원을 운영하면서 현재 600건 정도의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고, 그중 특허가 400건 정도나 될 만큼 앞날이 창창하다는 평가도 따릅니다.

이 밖에 2008년부터 위·변조가 어렵게 IC칩을 내장한 전자여권을 제작, 수출까지 성공했고, 기념주화·메달 등 문화 사업에도 발을 담그며 매출을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조폐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4640억원은 화폐제조 수익보다 △보안기술 △전자여권 △ID카드 △골드바 △기념메달 관련 매출액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사업구조 격변에 따라 공사 내부에서는 사명(社名)을 변경하는 방안들이 거론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1951년 창립 이후 70여 년간 유지한 사명 교체를 고민하는 이유는 더 이상 화폐제조가 주 사업이 아니라는 점과 최근 매출비중이 확대된 보안기술 분야의 전문성을 부각시키는 차원에서라고 합니다. 

사실 사명교체는 지난해부터 논의돼왔던 사안인데요. 이미 조폐공사에는 사명 변경 태스크포스(TF)도 구성된 상태입니다. 

TF는 빠른 시일 내에 사명의 가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라고 하는데요. 이후에는 상위기관인 기획재정부와 국회의 설득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상황을 미뤄볼 때 존폐위기에 놓인 건 조폐공사 자체가 아닌 '사명'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