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비정규직은 어느 직종이든 정규직에 비해 더 고생하고, 위험 노출도 적어도 동등한 수준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편의점 비정규직 직원(아르바이트생)들은 안전문제에서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연말 CU편의점 직원 살해사건으로 불거진 이들의 안전 문제와 관련해 '공제' 형태의 논의가 진행 중이어서 주목된다.
이재성·안준기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2016년 3월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학술지에 '근로환경에서의 위험노출 정도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근로 현장에서 위험에 노출될 확률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1.8배에 달했다.
다만 화가 난 고객이나 환자에게 공격당할 확률은 비정규직 부담이 높지 않았는데, 이는 무차별적인 감정을 폭발시키는 만큼 거의 동등하게 부당한 대우와 공격을 받을 확률을 감수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비정규직 안전 문제에서도 가장 낮은 지위에 머무는 것이 편의점 비정규직 직원들이다. 손님을 응대하고 비품을 채우면서 시재 맞추기(현금 총액)를 하는 데다 요새는 빵과 조각치킨 등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등 일인다역을 강요받는다.
새벽 근무자는 또한 본사에서 배송오는 물건 하차와 창고 채우기 등도 해야 한다. 그 자체가 고된 일과다.
가장 큰 문제는 대다수의 고객들이 이들을 얕잡아 본다는 데 있다. '편돌이-편순이'라는 비하 단어가 널리 사용될 정도로 사회적 인식이 워낙 낮은 탓에 상처를 입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거친 대접이나 언어 폭력에 그치지 않는다.
강도를 만나는 등 작심하고 들이닥친 범죄자의 표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손님이 어느 순간 가해자로 돌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해나 살인 등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상황을 체념하고 받아들인 채 일해야 한다는 게 가장 힘든 요소인 셈이다.
경찰과 아르바이트노동조합(이하 알바노조) 등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매년 편의점에서 300~400건에 이르는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이나 추행 및 성범죄·방화 등)가 벌어지고 있다.
◆무방비 상태 기습당할 우려 커도 '보상-배상' 미비
그럼에도 현재의 편의점 구조로는 방어나 탈출 등이 쉽지 않다. 우선 입구나 창문 근처 등에 짐을 쌓아두거나 해서 다른 이들이 편의점 내부에서 무슨 사고가 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카운터 자체가 좁고 쪽문을 들었다 놨다 하는 식으로 개폐하게 돼 완전히 밀폐된 공간 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경상북도의 한 CU 편의점에서 종업원이 살해된 사건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의 숙명을 잘 보여주는 압축적 사례다.
지난해 12월14일 새벽, 경북 경산의 CU편의점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던 A씨는 봉투 값을 받는 문제로 고객과 시비가 붙었다. 50대 남성 고객은 화를 참지 못해 자기 숙소에 들어가 흉기를 가져왔고, 결국 두 사람이 대치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편의점 계산대가 좁고 도망갈 방법도 마땅찮아 A씨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뒤 100일(지난 23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CU 가맹본부, 즉 BGF리테일 본사에서는 회사 차원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 23일 본사 측과 유족은 비공개 면담을 했지만, 2시간 넘게 대화한 끝에 협상은 결렬됐다.
산재보험 처리가 됐고, 편의점주가 개인적으로 위로금도 지급했으므로 회사 측에서 따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 편의점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업계의 견해다. BGF리테일 역시 이 같은 방침을 견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현재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이라 하더라도, 산업재해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한 노무법인 관계자는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해도 산재보험 대상이 된다. 1명만 고용해도 (산재보험에) 가입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기업에서 비정규직을 뽑을 때 4대 보험 적용이라며 별도 항목을 내세우는 것은 이런 점에서 보면 사실 큰 의미가 없는 눈속임 조항인 셈이다.
아울러 그는 이 사안과 관련, "상해 가해나 사망이 발생한 경우에도 불법행위 배상 책임과 산재 보상은 별개"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아르바이트 계약(비정규직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비정규직-편의점주 간의 일이지만, 사실상 회사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이번 일처럼 가맹본부가 아무런 경제적 보상이나 명시적 사과 등을 하지 않는 게 과연 온당한지를 두고 사회적 합의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재 처리를 해주는 것과 고용주(가맹점주)의 다분히 호의에 의한 보상금,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사고를 적극적으로 예방할 의무 관련 위자료가 모두 다른 것인데 우리 사회는 현재 마지막 요소에 대해 아예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경제적으로 기업에 이런 문제가 큰 부담이 된다면, 보험 등의 형식으로 동일한 업계(여기서는 다른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들)가 위험 인수의 규모와 확률을 분담하는 것도 가능하다. 노동계 일부에서 이 같은 이슈에 대한 논의의 공론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이런 문제에 초점을 두고 선뜻 상품설계에 나서는 민간 보험회사가 없을 것이라는 걱정도 따른다. 대신, 같은 가입 대상자(필요자)들 간에 보험회사와 유사한 자체조직을 만들면 된다는 재반론도 있다.
이를 테면 '공제'다. 예를 들어, 시내버스회사들 같은 경우 사고가 잦아 보험회사들이 고객보상보험 가입을 꺼리기 때문에, 서로 도와 공제를 꾸려 운영 중이다.
◆일각 '공제 활용안' 검토 중…법리상 문제 없을 듯
가장 문제가 될 요소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규정이다.
이 법 제80조는 "수급권자가 이 법에 따라 보험급여를 받았거나 받을 수 있으면 보험가입자는 동일한 사유에 대하여 재해보상 책임이 면제된다"고 규정한다.
아울러 "수급권자가 동일한 사유로 민법이나 그 밖의 법령에 따라 이 법의 보험급여에 상당한 금품을 받으면 공단은 그 금품을 환산한 금액의 한도 내에서 이 법상 보험급여를 지급하지 아니한다"고도 명시했다.
결국 이 같은 공제 내지 보험이 탄생하고, 가입 부담(아르바이트생이 부당한 공격으로 신체 훼손 등을 당한 경우 지급을 목적으로 보험금 소정의 금전을 납부하는 것)을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등이 분담해도, 나중에 산재처리 상의 보상이나 형사 배상 등에서 서로 중복 논란으로 감액 처리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여기 앞서 노무법인 관계자는 이 같은 논란 소지에 대해 "중복으로 인한 공제 대상이 아니다, 제80조상의 규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이런 중복 지급 논란이 과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유사 사안이 있고, 이때는 대법원에서 결국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자기신체상해보험'을 든 이가 산재로 보상을 받는 경우 중복 지급인지를 다툰, 2014두724 사건의 경우다.
이에 대법원은 "산재보험법 제80조 3항에서 말하는 동일한 사유라 함은 산업재해보상보험 급여의 대상이 되는 손해와 근로기준법 또는 민법이나 그 밖의 법령에 따라 보전되는 손해가 같은 성질을 띠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서 "산재보험 급여와 손해배상 또는 손실보상이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는 경우를 말한다"며 자기신체상해보험과 산재는 그 내용이 다르다고 해석해 근로복지공단 측의 중복 지급 감액 필요 주장을 일축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의 여지가 있다.
한 변호사는 "상황에 따라 동일한 경우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중복 지급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무조건 동일하게 해석,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라고 말하며 개별 보험이나 공제의 형식에 따라 검토와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따라서 가맹본부나 가맹점주들이 주축이 되는 공제를 만들고 이를 상해나 사망 피해를 입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지급할 경우, 산재의 처리와 기본 궤도가 같다는 식으로 논란이 재점화될 여지가 있다.
여기서 이미 판례가 형성된 자기신체상해보험을 아르바이트생 개개인이 들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그 비용을 '간접' 지원하면 된다는 대안도 뒤따른다. 이런 사안 논의가 시작된 데 대해 노동계 내부에서는 기본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이다.
알바노조 한 관계자는 "공제 등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다만 이미 실제로 일어난 사건 등은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가맹본부 등의 안전배려의무를 규정하는 명시적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