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비뇨기과에서 나오는 '고추' 이야기라고 하면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죄송하지만 일단은 순수한 고추에 대한 내용이다. 고추는 가짓과의 한해살이풀의 열매로 처음에는 초록색이나 익을수록 빨갛게 되며 껍질과 씨는 매운 맛을 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끈질긴 근성을 표현하는 김치나 고추장의 매운맛이 고추 때문인데, 사실 고추의 원산지는 한반도가 아니라 멕시코다. 영어로는 빨간 후추(red pepper)라고 하는데, 콜럼버스가 미국을 처음 발견하였을 때 고추를 보고 후추의 일종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첫 발견 이후 고추는 포르투갈로 전래돼 유럽 음식문화에 영향을 미쳤고, 16세기에 인도로 전파됐다. 포르투갈 선교사에 의해 고추가 전래된 일본에서는 초창기에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이나 독약으로 사용됐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이 고추를 화학무기로 사용함으로써 전래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우리가 고추장을 담가먹고 김치에 고춧가루를 넣어서 매운맛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 무렵부터였다.
고추는 반찬이나 매운맛을 내기 위한 양념만이 아니라 소화제나 진통제 등의 약용으로도 사용된다. 고추의 매운맛은 미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캡사이신(capsaicin) 성분이 신경을 자극하여 나타나는 통증감각이다.
캡사이신의 경우 처음에는 신체조직에 강한 자극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 전달물질의 분비를 억제해 진통효과를 나타낸다. 또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증가시키고 강심작용을 하며, 발열감을 일으키고 지방연소를 촉진함으로써 체중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캡사이신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에 감염된 위 점막의 염증을 억제하는 효능도 있다고 한다. 방광점막이 과도하게 예민해져서 소변을 자주 보고 마려우면 참지 못하고 급한, 과민성방광 환자에게 캡사이신을 방광에 주입하면 방광신경을 마비시켜 증상을 완화시킨다.
예전에 아이를 낳으면 금줄을 대문 앞에 거는 풍습이 있었는데, 아들이면 고추와 숯을 금줄에 끼우고 딸이면 솔가지와 숯을 끼웠다. 짚단으로 만든 금줄은 풍요로운 삶과 건강을 상징하고, 숯은 깨끗함과 청결, 붉은 고추는 행운과 귀신을 쫓고, 푸른 솔가지는 생명력을 상징했다고 한다.
고추의 붉은색도 의미가 있지만 모양이 남자아이의 음경 모양을 닮았다는 상징성도 있다. 남성의 생식기관인 음경을 속어로 고추라고 하는데, 보통은 어린아이의 조그맣고 귀여운 자지를 이르는 말이다. 원뿔 모양의 고추가 어린아이의 음경과 비슷해 그렇게 불렸던 것 같은데, 사실 성인의 음경은 고추와는 모양이 전혀 다르다.
음경(陰莖)은 남성의 외부생식기관으로 △옥경(玉莖) △양경(陽莖) △경물(莖物) △남근(男根) 등으로 불리고 영어로는 페니스(penis)다. 내부는 2개의 음경해면체(corpus cavernosum)와 1개의 요도해면체(corpus spongiosum)로 이뤄져 있다. 요도해면체의 가운데로 소변과 정액이 통과하는 요도가 위치하며, 음경해면체는 성적으로 흥분되면 혈액이 차서 팽창해 음경이 딱딱해지는데 이를 발기라 한다.
음경의 끝에는 둥그런 모양을 한 귀두가 있는데 말초신경이 많아 민감하고, 성행위 시 부드러운 귀두가 여성의 자궁 경부가 받는 충격을 줄여주게 된다. 또 얇은 피부가 귀두를 덮고 있는데, 이 포피가 뒤로 젖혀지지 않는 상태를 포경(包莖, phimosis)이라고 하고 이를 제거하는 시술이 포경수술(circumcision)이다.
일반적으로 음경의 길이는 음경의 위쪽 치골에서 귀두까지의 길이를 재는데, 한국인 평균은 발기 전 7㎝, 발기 시 12㎝ 정도다.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음경이 작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 발기 시 5㎝ 이상이 되면 만족한 성관계가 가능하다. 신체부위와 음경의 크기가 관한 속설이 많지만, 코·입·엄지 등 특정부위나 키·몸무게와 비교한 연구에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
크고 강한 음경을 바라는 남성들 때문에 많은 정력제들이 등장했고, 특히 동물의 음경을 먹으면 효과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수많은 암컷을 거느리는 수컷물개의 음경과 고환인 해구신(海狗腎)과 속칭 만년필이라고 하는 개의 음경은 대표적인 강정제이다.
실제 효과가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단지 심리적 효과일 뿐이다. 남성의 고추와 비슷한 모양을 한 고추에는 캡사이신뿐 아니라 비타민 A와 C,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항산화효과가 크고 면역력을 높여준다. 이런 항노화효과와 함께 캡사이신은 혈관 강화작용으로 음경의 발기력에 도움이 되므로 고추를 먹는 것이 웬만한 정력제보다 도움이 될 수 있다. 단, 정력에 좋다고 너무 많이 먹으면 위 점막을 자극해 속이 쓰릴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심봉석 이화의대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