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7.03.22 10:46:17
[프라임경제] 여리고 점잖게만 보이는 변호사가 토론자 발언 순서에 마이크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청중들은 어려운 판례 이야기나 법리상 그렇게 보상을 해주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나오겠거니 지레 짐작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의 주장은 법리적으로 부당합니다"라며 당찬 논리를 펼치자 진폐증 환자, 가족들의 반응이 금세 달라졌다. 급기야 토론자 발언을 마칠 때는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세미나에서 법조계 인사가 발언하는 데 이런 반응이 나오는 예는 드물다.
윤미영 변호사는 중앙대 출신으로 사법시험 제 51회에 합격했다. 현재 법률사무소 피플의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21일 강원도 태백에서 열린 '광산노동자 산재보험 제도 개선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하기도 했지만, 산업재해 보상 문제와 관련된 여러 자리에 계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최근 가장 핫한 소재인 요양급여와 장해급여의 중첩 지급 인정 여부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에 도전한 것.
지금까지 장해급여와 요양급여 중복 문제는 큰 논란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1년 법 개정으로 요양급여자에게는 장해급여를 줄 수 없다는 중복 혜택 금지 논란 여지가 발생했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행정해석을 통해 진폐증으로 요양 대상자로 결정된 이에게는 장해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고 해왔다.
이에 많은 반발이 있었다. 법정 공방으로까지 비화돼 대법원에서도 관련 판례를 내놓고 있으나, 공단에서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받아보겠다며 유력 로펌을 선임해 논쟁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더욱이 공단에서는 소멸시효가 지난 경우가 많아 요양 결정자의 장해급여 신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추가 논리까지 펴고 있다.
이런 와중에 공단 주장에 반대 입장을 펴는 이들이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신의칙 위배 등을 거론하는 것이 논리의 주류였다. 신의칙은 법률의 대전제이기도 하지만, 실무상으로는 신의칙 같은 일반원칙만으로 논리를 구성하는 것을 잘 인정해주지 않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윤 변호사는 이런 상황 속에서 공단 주장을 격파할 논리를 박력있게 전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신의칙 주장을 보완할 든든한 우군을 공급하는 셈.
그는 "공단은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진폐 진단을 받은 시점부터 3년이 경과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해급여 청구권은 시효로 소멸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윤 변호사는 그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의 장해등급 결정 통지가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장해급여 청구권'이 발생하지 않아서, 소멸시효가 '진행조차 하지 않았다'는 새로운 논리를 전개한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주장을 강화할 근거로 대법원 판결 중에 참조할 만한 사례를 찾아냈다.
2008년 2월 선고된 2005두12091 사건에서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이 규정한 보험급여의 지급 요건에 해당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수급권자)라 할지라도 그 요건에 해당하는 것만으로 바로 구체적인 급여청구권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급여 청구에 따라 공단이 보험급여 결정을 해 비로소 구체적인 급여청구권이 생긴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 태도에 따르면, 공단이 일관되게 요양자는 장해급여 대상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장해등급 결정 자체를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허점을 찾아내 새 논리를 펼치는 윤 변호사의 활동 덕에 관련 분쟁의 결론에 관심이 집중된다.
윤 변호사가 이처럼 산재 문제에서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은 행정소송, 특히 산업재해 관련 결정의 불복 소송을 '주전공'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행정과 노동 등 상대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영역들만 관심 대상으로 택한 셈인데, 그런 선택의 원동력은 바로 보람이다.
윤 변호사는 사시 합격 이후, 연수원 시절부터 행정사건과 노동사건에 관심을 갖고 천착했고 사회공헌성 소송을 많이 맡는 법률사무소 피플의 대표까지 되기에 이르렀다.
윤 변호사는 "행정소송은 행정청의 처분에 대해 제기하는 소송이라는 점에서 비전문가가 접근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 그 특성을 설명했다. 깊이있는 연구와 열정으로 늘 최선을 다하는 이유다. 그는 앞으로도 행정청과 공단 등의 다소 잘못된 조치나 무관심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