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인 기자 기자 2017.03.20 17:23:26
[프라임경제] 단지 가만히 있을 뿐인데 괜히 공허한 마음이 든다. 입이 심심해 주변을 둘러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먹는 게 곧 쉬는 것이자 낙(樂). 필자 포함,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우리 혀끝을 즐겁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에 대해 이유를 막론하고 탐구해본다.
'면발이 먼저? 수프가 먼저?' 누군가와 함께 라면을 끓일 때 가장 의견이 대립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존심을 건 대결….
과학적으로 접근한 A씨라면 "물에 다른 물질이 많이 녹아 있을수록 더 높은 온도에서 끓는다"며 "수프를 넣고 면을 넣어야 면발이 불기 전에 빨리 익는다. 수프를 먼저 넣는 게 맛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쫄깃쫄깃한 면보다는 퍼진 면발을 사랑하는 B로서, 그게 꼭 정답일 수 없다는 철학적인 답변을 내놓겠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예는 이렇다. 야외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먹는 라면은 진리다.
이처럼 라면은 뛰어난 맛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는 한편으론 조리가 쉽고 유통기한이 길어 구호물자 역할도 톡톡히 해내는 효자 식품이다. 나트륨 햠량이 하루 권장 섭취량 수치를 넘는 건 안 비밀.
◆라면 원조…중국 vs 일본? 납면과 라멘 사이
라면은 중국의 건면(乾麵)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일본의 안도 모모후쿠가 술집에서 튀김요리를 하는 요리사의 모습을 보고 착안해 만들었다는 설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라면은 본래 중국음식으로 '납면(拉麵)'의 일본식 발음이 '라멘(ラーメン)'이라고 전해지는 게 유력한 설 중 하나일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라멘이 사실 일본 전통음식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라멘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라멘집이 생기기 전에는 중화요리 집에서만 라멘을 다뤘다는 점과 중국 본토 란저우에 그와 유사한 납면이라는 국수가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왔다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당시 납면은 수타면을 가늘게 뽑아내던 형식으로 굵은 면발의 일본라멘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의 라멘 탄생 스토리도 흥미진진하다.
1950년대 일본에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넘쳐나던 시절, 안도 모모후쿠는 밀가루를 원료로 한 식품을 개발하고자 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타이완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일본으로 건너온 뒤 전쟁과 패전의 배고픔을 겪었던 그는 '어떻게 하면 인류가 배고픔을 극복할까?'라는 고민을 품었다.
그러나 계속된 사업 실패와 탈세 혐의 기소 등으로 밑바닥까지 추락, 자살을 결심한 안도는 마지막으로 들린 선술집에서 밀가루 반죽을 입힌 어묵을 기름에 빠뜨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후 그는 최초로 1958년 인스턴트라면 '닛신치킨라멘'과 1971년에 컵라면 '컵누들'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안도는 '먹는 것에 관계하는 일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성직(聖職)이다. 먹는 것이 풍족하게 될 때야말로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는 필자와 유사한 가치관을 품고 실제로도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특허 독점을 포기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일본 묘조식품에서 노하우를 전수한 삼양식품이 지난 1963년 국내 첫 인스턴트라면 '삼양라면'을 선보였다.
◆"'방부제' 따위 필요 없어요"
라면에는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는다. 방부제는 말 그대로 식품의 부패를 방지하는 첨가물이다. 부패와 발효는 모든 미생물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미생물이 증식하기 위해서는 생육에 적당한 수분과 온도, 영양원이 고루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라면은 만들어지는 과정 가운데 기름에 튀겨지면서 속에 있던 수분이 증발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가 시중에서 흔히 사먹는 라면은 수분 함량이 매우 낮아 미생물이 자랄 수가 없다. 따라서 방부제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라면과 관련해 발생했던 가장 큰 사건으로는 단연 '우지파동'이 꼽힌다. 한국에서도 끓어 넘치던 라면의 인기는 지난 1989년 '면을 공업용 쇠기름으로 튀겼다'는 보도로 우지파동에 의한 위기를 맞는다.
A기업을 주 타깃으로 삼아 방망이를 휘둘렀던 데는 라이벌 관계인 경쟁사와 정치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당시 600억원대 추징금에 시달렸지만, 1997년 8월 수년여간 걸친 법정 끝에 무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라면 소비가 생산량의 30%까지 줄어들면서 일부 라면 제조사는 폐업 직전까지 몰렸고 라면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 하지만 굳이 좋게 평가하자면, 오늘날에는 이를 계기로 기업들이 라면의 고급화는 물론, 다양화를 추구하게 되면서 현재는 200여종이 넘는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세계 1위 라면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한국의 국민으로서 오늘은 무슨 라면으로 '나'에게 행복감을 선사할지 깊이있는 고민에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