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순실씨 국정농단 여파로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낙마한 상황에서 삼성그룹이 '세기의 소송전'을 치를 태세다. 특히나 공소유지에 나선 박영수 특검팀을 농락하는 듯한 전술을 구사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삼성 측은 특검의 공소장 자체가 잘못됐다며 첫 재판준비절차(9일)부터 공격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지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구속된 이래 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상황에서 사실상 첫 대응이 나온 셈이다. 이런 형사 전선에서 치열한 격돌이 진행 중인 가운데 삼성은 자신을 위한 또 다른 전선을 치는 태도를 보였다.
14일 이상훈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가 "지주회사 전환 검토 작업이 예정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해당사 주식은 전일대비 1.87% 오르며 장을 마쳤다.
동시에 두 전쟁을 벌이는 것은 아무리 가용 자원이 풍부하고 우수한 인력이 넘쳐도 쉽지 않다. 미국이 1차 걸프전을 전후에 세계 각지에서 복수의 전쟁이 일어날 경우를 상정, 계획을 짠 바가 있지만 전례가 드물다. 삼성은 대통령 부재 상황과 대선 임박, 트럼프 행정부와 베이징 간의 갈등 등 국내외 불안정 상황에도 과감한 반격을 진행 중이다.
◆특검과의 대결…'일반 검찰' 앞 숨죽인 다른 재벌들과 입장 차
삼성은 다른 재벌 대비, 이번 상황에서 특이한 위치에 서 있다.
총수가 와병 중이고, 그 아들은 구속된 초유의 사태이기는 하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체념 아래 살펴보면 전혀 운신의 폭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특검이라는 명확한 적을 상대하면 된다는 것이 형사소송 쪽에서 전략과 전술을 택할 때 안도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검찰은 특검팀으로부터 각종 사건을 넘겨받아 미진한 부분의 보강수사 등을 해야 한다. 그런데 5월9일로 확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박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 수위가 표심에 미칠 영향과 그 손익을 따질 수밖에 없어 이미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검찰은 현재 박 전 대통령 소환조사도 한번에 마치는 등 불필요한 시간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공범이냐, 혹은 피해자냐'라는 재벌 이슈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잡을 확실한 덫'이라는 의미로 중요한 숙제이기는 하나, 언제고 상황 변화를 겪을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SK그룹 관계자들을 16일 소환조사하기는 했으나, 롯데와 CJ 등 다양한 최씨 농단 관련 재벌들을 어디까지 어느 깊이로 파야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은 상황이라 버겁지 않을 수 없다. 특검이 벌여놓고 공소유지도 특검 쪽 몫으로 처리 중인 상황에 대해 추가로 깊이있는 조사를 더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도 않고, 불필요하게 잔인하다는 인상을 심고 싶어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삼성으로서는 털어서 먼지 안 나올 게 없다는 논리에서 검찰 앞 몸조심을 하며 대응을 준비해야 하는 다른 재벌들 대비 홀가분한 구석이 많아지는 것.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외부 인력 동원 방식으로 형사소송 분야에 열을 올리고, 막강한 그룹 내부 근무 변호사들은 다른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바로 상법 개정안이 좌충우돌하는 상황을 최대한 아전인수하자는 것이다.
◆고난 속 'Finest Day' 역설 '지배구조 굳히기' 활동
상법 개정안 이슈는 삼성을 곤란하게 하는 장애물 중 하나다. 삼성은 지배구조를 매듭짓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사정은 현재 녹록하지 않다.
그럼에도 삼성은 이 부회장이 갇혀있는 상황에서,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14일의 삼성전자 CFO 발언은 대단히 전투적인 발언이나, 계산되고 치밀한 말이지 결코 우발적인 내용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 3당이 3월 임시국회에서 상법개정안 통과를 재추진하기로 합의하는 등 외형상 사정은 좋지 않다. 2월 임시국회에서 추진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막힌 법안들을 다시 밀어붙이는 것이다.
야 3당은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이 지난번 발의한 상법개정안 내용에 합의하고 국회 통과를 최우선 목표로 세운 상황이다. 이번 상법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의결권 제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네 가지. 3월 임시국회 통과가 진행되면 삼성으로서는 지주회사 전환 플레이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삼성전자가 지주사 체제로 바뀌면 물론 이 부회장의 지배력은 강화된다. 삼성전자가 검토하고 있는 지주사 전환은 회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는 것인데, 두 회사로 나눠지면 현행법상 삼성전자는 보유 중인 자사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세칭 '자사주 부활의 마법'이며 지금의 상법 개정안 이슈는 이를 겨냥해 재벌이 '세금을 적게 내고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하겠다는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법안 통과 가능성은 현재 단언하기 쉽지 않다. '경제민주화'에 열을 올리면서 대선 정국 이슈 만들기를 하려는 것이 야권의 뜻이긴 하나, 막상 이전부터 야권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안건임에도 2월 국회에서도 좌초되는 등 추진 동력이 2% 부족한 상황이다. '장미 대선' 상황에서 다시 용두사미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삼성은 이런 틈새를 적극 노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상황은 상법 개정안 표류 상황에서 손질하기 적당하다. 이 부회장의 우호 지분은 18%선(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0.60%에 불과하나, 오너 일가와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보유한 전자 지분율은 18% 이상이다)이되, 약 13%의 자사주 의결권을 더해 지배력이 대폭 강화된다.
따라서 이런 상법안 표류 상황이 반갑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을'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 외국인 지분율이 절반이 넘어 언제든 한국 주주들과는 다른 돌직구(거친 견제구)가 들어올 수 있으므로,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뛸 필요도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방침을 갖고 있다. 이렇게 상법 개정안이 사장되기를 기대하면서 크게는 지주 시스템 도입, 작게는 계열사와 부문 간 이합집산 등 지속적으로 삼성그룹 모듈의 끼우고 빼기 작업을 진행하면 된다. 2014년 이미 무산된 '중공업-엔지니어링' 합병 시나리오 같은 이벤트를 치를 수 있는지, 삼성의 능력과 의지에 그간 회의적인 분석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삼성은 자신의 재무 상황 등으로는 분명히 약속한 지주회사 전환 검토를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 총수가 없는 상황에서 맥없이 현상유지 태도를 보였던 여러 재벌 수사 전례를 볼 때, 이런 삼성식 대응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
이런 정도의 의지라면, 삼성 쪽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늪에 빠진 것을 이용해 물산 합병 와중에서의 잡음을 완전히 제거하고, 그 다음으로 '물산 내의 건설부문-엔지니어링' 간 합병 같은 2014년 대비 약간 작아진 이벤트를 단행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삼성물산(028260)-제일모직 합병 비율 논란은 삼성 측에 대단히 불편한 이슈다. 하지만 이 부회장 구속 전과 일단 어쨌든 지금의 구속 상황 이후를 볼 때의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나라 상법 구조에서는 합병무효소송 판결이 나오면 원상회복을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지난 2008년 대법원은 현저하게 불공정한 합병비율을 정한 합병계약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공평의 원칙 등에 근거할 경우 무효라는 설명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현저한 불공정 등을 이유로 무효화한 선례는 찾기 힘들다.
이에 지난 1월16일 CBS라디오에 출연한 자리에서 개혁 성향 경제학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조차 삼성물산 논란을 두고 "2015년 7월에 주총이 끝났고 9월 달에 합병회사가 출범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이미 수많은 투자자들 사이에 삼성물산의 주식이 거래가 됐다. 이 모든 걸 되돌리기는 어렵다. 이것이 법조계에서 얘기하는 법적안정성 논리"라고 절충적 태도를 보였다.
이런 여론 흐름이나 법집행의 한계 등은 삼성 측으로서는 반갑기 이를 데 없다. 삼성 측은 합병이 무효로 뒤늦게 판정되더라도 원상회복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는 독일 조직재편법 등의 예를 들며 '원만히 합의하자'는 쪽으로 나설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 결연한 의지 배경은? 옥중경영과 위기대응체제 이상 저력에 눈길
다시 이야기를 검찰, 특검이 아닌 서초동 일반 검찰로 돌려보자. 현재의 수사 속도로 보면 검찰은 장미 대선 와중에 자신들의 법 집행이 영향을 준다는 비판을 면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르면 다음 달 중순경, 늦어도 대선 전 모든 수사를 매듭짓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채 재벌 공범 논리 전개를 '전략적으로 구사'하고 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춰 삼성도 남은 약 한 달 안에 상사와 형사 양쪽의 법적 대응을 모두 그릴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일어난 사건에 대응한다는 법리적 방어 상황이 아니라, 이 부회장 석방 이후의 대비 더 나아가 지배구조 문제를 모두 못 박는 백년대계 작업이 진행 중인 것이다.
현재의 삼성 쪽 태도와 의지라면, '굳히기' 처리해 버리는 게 가능해 보인다. 처칠 수상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폭격에 시달리며 수세에 몰린 영국 국민들에게 오히려 "나중에 승전하면 지금이 대영제국 역사상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회상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고 실제로 이 예언은 적중했다.
미래전략실 해체 등에도 이런 결연한 태도로 복잡하고 넓은 소송전을 치르고 있는 점을 보면 옥중경영이나 비상 집단경영체제 등으로 규정지을 선을 이미 넘은 것으로 보인다.
'관리의 삼성'이 결국 '최고의 날'까지 만들어낼지, 3세 승계 구축 문턱 앞에서 좌절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