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 '다발성골수종' 혈액암을 앓던 OO씨는 치료약으로 쓰던 A약에 내성이 생겨 비급여 약제인 B약 복용을 권유받았지만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복용을 시작했지만 비용 부담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했다. 결국 그는 2개월 만에 가족들에게 빚만 안긴 채 사망했고 B약은 7개월 후 급여 약제로 전환됐다.
항암신약 등 치료 환경 개선으로 암 생존율은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암은 여전히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이다. 특히 암 치료를 위한 비용 부담을 겪는 환자들이 증가하면서 일명 '메디컬 푸어(Medical Poor, 의료빈곤·취약층)'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를 위해 지난 2013년부터 4년간 7657억원의 치료비용을 경감했지만 암 환자들이 실제 피부로 느끼는 치료 상황은 여전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건강 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암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은 약 15조3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는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 주관 아래 '암환자 메디컬푸어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주제로 국회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개회사에서 임영혁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 대표는 "암 환자들의 치료비 부담으로 메디컬 푸어로 전락하지 않는 '환자 중심' 암 치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환자가 의료진이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갖고자 이번 토론회를 개최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의 현 주소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깊이있는 토론이 이뤄졌다.
먼저 이날 발제에 나선 정경해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암은 5대 사망원인 중 압도적인 1위로 그 비중은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자살 △당뇨병 등 다른 질환 모두를 합한 것보다 높고, 이에 따른 사회 경제적 비용도 14조86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4대 중증질환 보장 강화 정책으로 지난 2013~2014년까지 124개 항목을 급여화해 환자부담이 7657억원 경감됐지만, 2014년 암질환 보장률은 2012년 대비 1.5% 감소한 72.6%로 실제적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적극적 치료가 필요한 4기 환자에게는 비급여 항암제가 '희망'이지만 환자의 69%가 경제적 문제로 항암치료를 중단한다"며 "비급여 항암 치료 비용은 전체 치료비의 71.6%에 달하고, 1개월 기준 평균 424만원으로 2015년 월평균 가계소득인 437만원과 유사한 수준"이라며 비급여 약제가 가계에 심각한 부담이 된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OECD 항암 신약 보험 등재율은 평균 62%인데 비해 한국은 29%만이 항암신약으로 허가받았다"며 "항암신약 급여 등재 속도도 조사대상 OECD 국가 평균 245일에 비해 601일로 가장 늦다"고 지적했다. OECD 평균보다 약 2~3배 이상 소요되는 것.
이에 대해 곽명섭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601일은 식약처 허가 시점 이후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라며 "제약사가 건강보험에 등재 신청한 날을 기준으로 보면 평균 320일 정도"라고 해명했다.
또 "제약사 자체가 비급여 정책을 취할 수도 있는 부분이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복지부 직권으로 권한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모두 정부 탓이 아니냐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양현정 한국 GIST 환우회 대표는 "평균 601일이라고 하지만 급여 전환까지 2~3년을 넘기는 약제들도 많다"며 "급여 전환을 기다리다 목숨을 잃는 환자들을 많이 봐왔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글리벡 급여 적용 싸움을 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환자들은 치료 효과가 뛰어난 약을 제때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환자가 부담할 수 있는 가격으로 약값을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민환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장 또한 "현재 국내 메디컬 푸어는 약 70만가구에 달하는데 이는 비급여 항암신약의 비용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암환자 특성에 맞는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더 나아가 김봉석 중앙보훈병원 교수는 메디컬 푸어로 전락할 위험이 높은 암 환자의 건강보험 보장률 개선을 위해서는 항암신약 급여율과 급여속도를 OECD수준으로 향상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약가제도 효율성 제고 △항암제 급여결정 과정 개선 △4기 암환자 비급여 항암제 본인부담률 탄력적용 △건강보험재정 활용 방안 △암환자 메디컬 푸어 전락을 막을 특별 재정지원 방안 △'환자중심' 암 보장성 향상을 위한 상설협의체 설립을 내세웠다.
김 교수는 "항암제 등재 소요 기간을 601일로 보면 정부의 '중증질환 재난적의료비 지원사업'에 따른 재난적 의료비는 180일에 불과해 취약계층이 메디컬 푸어로 전락할 수 있는 기간은 421일에 달한다"며 "지난 2015년 2조4757억에 달하는 국민건강증진기금 투입을 통한 특별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토론회를 주최한 박인숙 바른정당 국회의원은 "이번 토론회에서 논의된 다양하고 심도있는 내용을 국회와 정부 차원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