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7.03.16 16:16:50
[프라임경제] 사드 정국까지 내다보고 전체적으로 저지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대단한 모험심리가 나름대로의 이익 확보에 주효한 것만은 사실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롯데쇼핑(023530) 지분을 지난달 말경 대거 팔아치운 뒤 롯데 BU(business Unit) 체제가 가동에 들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보유 주식 중 6.88%(173만883주)를 팔았는데 이에 따라 신 전 부회장의 롯데쇼핑 지분율은 14.83%에서 7.95%로 줄었다. 차남의 지분율(13.46%)과 차이가 크게 벌어지게 됐다는 점이 두드러지고 한편 주식담보대출을 받으려 금융권에 제공한 부분을 빼면 사실상 롯데쇼핑 직접 보유분을 다 뺀 것이나 다름없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오히려 지분을 한 톨이라도 더 확보하려 노력하는 게 상식적이라는 풀이가 우세하다. 부친의 지분을 자신의 것과 더하면 상황 반전을 노려 봄직도 한데 이상한 수를 뒀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영권 경쟁을 포기하려 드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이 돈을 갖고 일본 쪽 롯데 진영의 지분을 사려는 게 아니냐는 또 다른 해석도 나온다.
◆블록세일, 자금 쓰려는 게 아니고…그 자체가 목적?
이 중 두 번째 해석은 롯데쇼핑 지분을 일종의 할인판매 처리한 데서 자금 마련을 통한 요긴한 움직임 도모라는 관점에서 가능한 풀이다. 그러나 일본 롯데와 관련, 한국 롯데의 판을 흔들 결정타를 새로 구입, 마련하기란 어렵다는 풀이가 일반적이다. 일본 쪽을 신 전 부회장이 장악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종업원지주회 등의 도움으로 경영권 인정은 신 회장이 받는 것이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기존의 순환고리가 어떤 변화 효과를 입게 되느냐다. 그림에서 보듯 롯데쇼핑-대홍기획-롯데제과(004990)로 이어지는 고리는 대단히 흥미로운 이슈였다. 롯데는 반도체 회로기판 이상의 복잡한 고리를 마련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일 셔틀경영을 하면서 성장했다. 오늘날의 번영을 앞으로도 구가하는 것은 앞으로 이 구태를 일정 부분 모범적으로 끊어냈다는 사회적 공감대와 인정이 있을 때 가능할 것으로 재계에서는 본다.
그룹 심장이자 사령부, 친위대 역할을 도맡던 정책본부가 전체적으로 마피아나 삼합회 같은 범죄단체 취급을 받았으며 부회장급 인사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등 살신성인을 해서야 최악의 상처는 면할 수 있었다.
뉴롯데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은 그런 점에서, 단순히 순환고리에서 상층부에 있는 롯데호텔과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는 일명 신동빈 친정체제 구축이 전부는 아니다. 호텔 영역을 상장하면 일본의 비중이 희석돼, '신동빈의 롯데'라는 장악력 강화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는 단지 부수적 효과이며, 창업회장 시대의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모두 정리하고 미래 초석을 확고히 하고 넘어가자는 순수한 백년대계 열망이라는 게 더 정확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 해법이 일단은 BU, 그 다음에는 지주제라고 회자된다.
문제는 이 와중에의 신동주-신동빈 갈등 문제다. 장남 신 전 부회장으로서는 지금의 구도가 굳어지는 걸 찬성하지 않는다. 정통성도 그에게 있다는 자신감도 갖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이미 '룰 메이커' 자리를 차지한 차남(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지분 한 톨 늘리기 경쟁을 하는 식으로는 상황의 역전이 어렵다. 일본 상사법에서는 지분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경영의 실질이 누구에게 장악돼 있는가에 집중하는 경향도 있다고 알려졌다. 일본에서 판결을 구하려 해도 마냥 신동주 체제가 우수하고 옳다는 답을 얻을 것으로 자신하기 힘든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발상의 전환으로 역공을 가할 태세를 유지하려는 시도로 이번 지분 매각을 볼 필요가 있다. 순환의 구조는 언젠가는 깨야 한다. 그 안에 안주해 있다가 차남이 그리는 룰 메이킹에 말려들면 단순히 불만 많은 주주 이상의 위상을 갖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연결을 끊고 롯데제과 지분을 가진 막강한 경쟁자로 남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소수의견은 이에 기반한다.
◆롯데쇼핑 주가 하락은 지주사 전환의 걸림돌?
롯데쇼핑은 중국의 한한령 한파를 정면으로 맞고 있다. 이렇게 주가에 영향을 받으면 지주사 전환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다.
좀 지나친 이야기지만, 롯데그룹에서 이 참에 아예 장기적 리스크인 중국 손실도 털 겸, 롯데쇼핑의 탈중국(전면 철수)이 낫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데에는 이런 리스크가 어떤 식으로든 관리 범주에 들어오는 게 속이 편하다는 불평이 깔려 있다.
신 부회장은 이런 상황 전에 스스로 손을 털었다. 롯데제과를 통해 다시 빙글빙글 도는 특혜, 즉 롯데쇼핑 지배의 권리 조각을 갖고는 있다. 스스로 롯데쇼핑 주가를 떨어뜨리고, 사드 이슈로 롯데쇼핑 주가가 또 떨어질 상황에서는 이미 발을 뺀 구도다.
롯데제과의 지분을 가진 대홍기획의 의미도 희석해 버리는 효과마저도 신 전 부회장의 블록세일은 소량이나마 얻은 것으로 보인다.
연관망(지금까지의 순환고리)을 아예 찢고 나가버림으로써, 대홍기획이 가진 지분을 신동빈 체제가 직접 인수하든 다른 계열 기업에서 사들이든 스와핑으로 바꾸든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전 같은 구조가 계속 간다는 상황에서는 택할 수 없는 스탠스다. 다만 신 전 부회장은 롯데제과를 여전히 쥐고 있기 때문에, 롯데제과와 롯데쇼핑을 합치는 아이디어 등을 실현하려 차남이 나설 때 '합병비율' 등으로 강하게 시비를 걸 수 있다.
자신이 롯데쇼핑 주주이자 롯데제과 주주라는 양 손에 떡을 든 그림으로 하기 어려운 강공을 펼칠 여지도 있다. 그렇잖아도 롯데제과는 '저평가 상황'이라는 평이 적지 않다. 삼성이 엘리엇펀드라는 작지만 강한 조직 때문에, 또 그 조직이 사용한 합병 비율 불만(물산과 모직의 합병 비율) 때문에 골치를 썩은 경험을 타산지석할 필요가 제기된다.
이제 항해를 시작하는 BU는 추후 롯데 지주회사가 설립될 경우 지주회사에 그대로 이식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만 봐도 이 구상에는 난제가 많다. 롯데는 사실상의 지주회사인 호텔을 상장한 이후 회사 분할 등을 거쳐 지주회사 설립을 추진할 것으로 추측된다.
내년 혹은 후년까지는 지주회사 설립을 마무리하려 움직일 것으로도 예상된다. 그런데 지금 BU가 사드 상황에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높은 평을 받기는 난망하다. 롯데쇼핑에 비해 사업이 안정적인 롯데제과 주주들의 '부동의' 즉 몽니의 가능성과 그 예상 파급효과는 잠복하고 있다.
장남인 신 전 부회장이 그 중심에 설 가능성이 BU 시스템의 지리멸렬, 즉 차남의 실수라는 세간의 평가와 함께 무르익어간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