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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음식의 예술 '에도마에즈시' 벤토

"벤토를 알면 문화가 보이고 문화를 알면 일본이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기자  2017.03.14 10: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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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의 하나로 '스시(寿司)'를 꼽는데 누구나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스시는 원조격인 '니기리즈시'를 필두로 '치라시즈시' '오시즈시' '마키즈시' '이나리'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과 형태가 존재한다.

'즈시'는 스시가 복합명사로 쓰일 때의 음편형이다. 한자표기는 '寿司' 또는 '鮨'가 일반적이지만, 오사카 같은 지역은 '鮓'로 쓰기도 한다. 

스시라는 명칭은 '맛이 시다(스시)'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유력하나 장수를 기원하는 '寿詞(쥬시)'가 어원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전에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거나 축하연 같은 자리에서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세월이 흘러 1980년대 들어 기업형 회전 스시가 출현하자 급격히 일상적 음식으로 변모한다. 이 무렵 미국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에 sushi-bar가 나타나며 국제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스시 역사는 짧게 잡아도 1000년이 넘는다. 나라시대 문헌에 스시라는 용어가 보이고 헤이안 시대에는 '나레즈시(숙성스시)'가 동남아시아에서 상륙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스시는 생선에 밥과 소금을 넣어 발효시킨 보존식품 성격이었다. 

현재 우리 강원도 해안에 남아있는 가자미 식혜와 유사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요즘 같은 스시는 약 200년 전 에도말기에 그 모습을 처음 드러낸다. 그때까지 젓갈류로 분류되던 스시가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고 선어 상태로 식탁에 오른 것이다. 

당시 스시 한 개 크기가 테니스공 정도였다고 하니 커다란 주먹밥에 회를 듬성하게 붙여 놓은 외관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도 우나기 카바야키가 처음 등장할 때처럼 간장이라는 조미료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스시는 곧 에도사람들의 고상한 먹거리로 자리를 잡는다. 그 후 1923년 '칸토대지진'이 발생해 스시 본고장 토쿄지역이 폐허로 변하자, 많은 스시 장인이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전국각지로 흩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재지변이 스시의 전국화 시대를 앞당겨 준 셈이다.

격식있는 고급 스시는 일본인들로서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음식이다. 유명 블로그 플랫폼 'Ameba'에서 "1만엔 정도로 먹을 수 있는 괜찮은 초밥집 어디 없나요. 그런 곳이 있으면 열심히 다니려 합니다"라며 간청하는 한 마니아의 글이 스시를 대하는 일본들의 속내를 보여준다. 

그는 이어 "좋은 스시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초밥과 재료가 요염하게 빛을 발하며 손끝으로 촉촉이 다가오는 느낌에 그만 머리를 숙이고 만다. 그런 스시를 바라보며 또 먹으며 그윽한 예술성에 마비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또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솜씨가 거칠면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소신도 덧붙인다. 고급 스시 집에서는 젓가락 대신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전통이다. 

스시는 만들기가 까다롭다. 한 사람의 스시 장인이 되기까지는 흔히 밥 짓기 3년, 만들기 8년 등 약 1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스시용 초밥은 가운데를 약간 비워둔 상태에서 밥알을 살려 매끈하게 빚은 것을 물건으로 친다. 

다음은 홋카이도 '오타루(小樽)에서 3대째 스시 집을 운영하는 나카무라씨(37)가 설명하는 스시용 초밥의 표준이다. 흰 살 생선용은 16g, 붉은 살 18g, '군칸마키'는 20g이 적합하다.

밥을 뭉칠 때는 반복된 훈련과 경험에 의한 감각으로 단번에 중량을 잡아내야 한다. 여기에 각각의 재료를 조합해 한입에 먹기 좋은 30g으로 완성한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인의 섬세한 손놀림에 매료돼 사람들은 가격 따지는 것을 잊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초밥에 생선 살 등 여러 재료를 조합해 만드는 것이 '니기리(握り)즈시'다. '에도마에(江戸前)즈시' 또는 '에도즈시'라고도 한다. 토쿄 인근 바다에서 잡아 올린 어패류로 만든 스시라는 의미다. 

에도는 토쿄의 옛 지명이다. 광의로 정의하면 토쿄 시내 스시 집에서 제공하는 모든 스시라 할 수도 있다. 예로부터 토쿄만은 갯벌이 넓고 비옥해 어패류가 서식하기 좋은 천혜의 어장이었다. 

토쿄가 일본 스시의 발신기지가 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일반적으로 스시는 간편성·보관성·대중성이 덕목인 벤토와는 거리가 있는 식품이다. 만드는 데 전문적 기술이 필요하고 유통기간이 짧다. 가격도 비싸다. 

전국 판매망을 가진 벤토 전문 업체들이 상품화를 꺼리는 이유다. 

하지만 특정 지역에 거점을 두고 당일제조·판매를 원칙으로 하는 에키벤 쪽에 눈을 돌리면 사정이 다르다. 

토쿄와는 별도로 오사카 등 서일본지역에는 독자적으로 발전한 '오시(押し)즈시' 계열의 화려하고 기발한 스시와 벤토가 넘친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