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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殺父 의식'…헌재, 명문장으로 국가 진일보 단초 마련

임혜현 기자 기자  2017.03.10 12: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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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역대 전례가 별로 없는 대통령 탄핵 사건을 심리하는 부담감이 192일간 헌법재판소를 압박했다. 하지만 과부하로 인한 문제 없이 결론이 도출됐다.

헌법재판소는 10일 오전 8:0이라는 일치된 합의로 대통령직이 갖는 엄중한 의미의 무게를 설명해다. 권한 행사의 자율적 판단에 한계를 그으면서 앞으로 어떤 정치인이 대통령직에 오르더라도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경시할 수 없도록 경고를 전달했다.

헌법재판소는 미르·K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기금 모금이 대통령의 공정한 직무수행 의무를 위배해 파면사유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이날 선고에서 "재단 기금 모금과 관련한 대통령이 행위는 최순실씨를 위해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자 윤리법 등 준수해야 하는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행위"라며 "기금 모금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 했을 뿐 아니라 기업 경영의 자율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특히 "박 대통령의 이러한 헌법 및 법률 위반이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정도로 중하고 파면으로 얻는 헌법 수호의지가 압도적으로 크다"고 판시해 문제점의 비교형량에 대한 기준점 역시 제시했다.

이날 결정은 특히 지난 경험(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기각)과 합쳐질 경우, 대통령직을 뺏을 정도의 행동이 어떤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 달해야 하는지 '예측 가능성'을 정치권과 국민들 누구에게나 제시하게 된다.

엄연히 제도적인 가치와 그 운영의 방식 합의 안에서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선언을 헌법재판소가 내놓은 셈이다. 이제 사람에 의한 정치(인치)와 자유민주주의가 합쳐진 모호한 형식의 한국적 공화정은 근원적 변화를 요청받게 됐다.

멀게는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 시대부터, 3선 개헌, 유신 개막 등 각종 적폐를 남긴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 그리고 쿠데타로 집권했다는 한계를 지녔던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까지 아우르면서 정치 전반에 영향을 미친 권위주의에 대해 수명을 다했다는 선고가 내려진 셈이다.

이와 함께 이번에 파면되면서 수명을 다한 박근혜 정부는 단순히 보수의 대표 아이콘일 뿐만 아니라 유신 시스템의 변형된 형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를 이은 통치와 그 잘못된 정치적 감각으로 빚어진 문제들에 대해 우리 헌재가 더 이상 용인하기 어렵다는 의식을 갖고 메스를 댔다는 풀이가 나온다. 

이는 다른 나라 간의 전쟁 결과로 얻은 독립과 건국, 각종 정치적 난항 속에서도 박정희 체제는 '경제적 기적'이라는 공으로 인해 '공 7, 과 3' 정도의 후한 평을 받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후광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박정희 체제가 남긴 문제점까지도 포용되는 문제점이 없지 않았다. 

이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 목소리가 중간중간 나왔지만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고, 결국 박근혜 체제라는 혈연적-정신적 후계자 정권이 탄생하게 됐고, 비선실세들이 국정농단을 하는 상황으로까지 민주정을 변질시키는 비위를 저지르게까지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이번에 형성되고, 국회가 그러한 국민적 열망을 탄핵소추안 제출로 문서화했으며 이에 대해 심리와 지적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이뤄진 셈이다.

분단과 한국전쟁 등의 처참한 상황 속에서 경제적 대성장을 일군 박정희 체제에 대해, 더 크게는 조선의 문제적 정치 시스템이라는 권위주의에 대해 우리 사회는 그간 제대로 논의를 하고 그 문제점을 해소하는 자리를 갖지 못하거나 애써 피해왔다. 

어느 나라든 근대화를 이루려면, 과거의 시스템과 단절하기 위한 '살부(殺父)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정치학계에서는 이야기한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치열한 내부 의견 대립, 서남전쟁 등 대규모 내전 등이 있었던 게 한 예다.

한국은 이런 점에서는 시간적으로 늦었지만, 박정희 코드를 어버이, 국부로 숭배하고 유신적 정치 행보를 모두 용인하는 데서 이제 벗어나는 살부 의식을 치르게 됐다. 그것도 1960년 4월 혁명 같은 '미완의 혁명'이 아니라, 헌재의 심리라는 평화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으로 치르게 됐다.

"한국이 민주주의를 한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한 영국 기자의 탄식은 약 70년 만에 이제 "드디어 피웠다"는 평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헌재가 내린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후진적 문화의 흔적 제거에 정치권이 나서고, 시민사회계에서 정파적 판단과 취향을 내려놓고 대승적으로 합의, 협력해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