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대통령 탄핵…박근혜식 양분법 정치도 '퇴장'

당분간 상대방에 대한 공격 눈길 끌어도 '거물정치 염증'으로 기류 변화 대세

임혜현 기자 기자  2017.03.10 11:33:41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가 저물었다. 선친의 정치적 후광을 업고 정치권에 등장한 박 대통령은 탄핵소추를 당하면서 192일간의 대장정에 내몰리는 정치인으로서는 흔치 않은 경험까지 이력에 추가했다.

동시에 10일 오전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결정하면서 '벚꽃 대선' 정국이 활짝 열렸다.

박 대통령은 분열과 공격에 최적화된 어법으로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켜왔다. 2006년 한나라당 대표직을 맡고 있을 때에는 지방선거를 치르며 커터칼 피습을 당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대전은요?" 발언으로 표를 결집, 탈당자를 '응징'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 초두에 원포인트 개헌론을 내놓자, "참 나쁜 대통령" 한마디로 협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기에는 친박 정치인들이 공천 불이익을 입은 데 대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날을 세웠다. 또 친이(親李·친이명박)계에서 세종시 원안 추진 문제에 대해 유연한 협력을 바라는 의사를 여러 경로로 전달했지만, 반대토론에까지 몸소 나서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자신이 집권한 후에도 반기를 든 유승민 의원(현재 바른정당 소속)을 찍어냈고, 최순실씨 일파의 이익을 챙기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까지 세세히 챙겨 불이익을 주도록 하기도 했다.

탄핵소추를 당해 칩거하는 와중에도 정치권에서 한목소리로 요청한 '어떤 결과가 나오든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승복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놓는 대신, 친박(親朴·친박근혜) 단체에 사실상 집회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 물의를 빚었다. 국민의당은 1일 이 일명 '박근혜 편지'에 대해 치졸하다는 강경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라는 평가는 기실 이 같은 불통과 대결 코드에서 얻어진 면이 크다.

이 같은 정치 행보에도 대단한 정치적 힘을 발휘해온 것은 선친의 물리적 후계자라는 점 외에도 유신체제의 정신적 승계자라는 측면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이번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라는 제도적 처분에 객체로 전락하면서, 일정한 힘을 다하고 이제 '벚꽃 대선'의 뒤안길로 퇴장하게 된 것이다.

보수적 가치의 기치를 든 정치인들이라 해도 대선 후보로 등장하는 와중에 박근혜식 정치의 후계자라는 부담스러운 위치를 안고 선거를 치르고자 할 사람이 많지 않아 보인다. 현재로서는 이 같은 정면승부를 시도하겠다고 공언한 유력 보수 대선주자가 거의 없다. 박근혜식 정치가 완전히 소멸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다만 당분간, 박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 유산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본의 아니게 탄핵 논란을 겪게 되면서 여권과 야권을 막론하고 선거를 치를 심적, 물리적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 이런 '이상하고 전례를 찾기 어려운 정치지형' 위에 서 있는 정치인들로서는 우선 가장 빠른 길인 유력한 적을 저격하고 '선명성'을 강조하는 대결의 정치를 시작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미 다수의 정치인이 이탈하면서 힘있는 여당의 역할은 물론 대선정국에서 보수 결집의 구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리적 토대마저 잃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정적에 해당하는 더불어민주당 역시 독자적으로 법안 처리를 강행할 수 있는 과반 의석에는 미치지 못한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 등이 촛불집회에 동참하는 등 제도적 정치의 틀 안에서 역할을 하는 대신 '아스팔트 정치'에 매몰되고 있는 게 좋은 예다.

'박근혜'라는 정치인 자체는 비판하지만, 그런 박 대통령 스타일의 분열과 대결 정치 코드를 당분간 갖고 갈 유혹을 모든 정치인에게 고루 뿌리고 가는 셈이다. '벚꽃'처럼 화려하게 피다 일순간에 일제히 지는 대신, '목련'처럼 가지에 붙어 천천히 썩다 떨어지는 낙화 모습을 보이며 주변에도 그 영향을 주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계속적으로 정치 문화를 지배할 것으로 탄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일부에서는 대선 전후로 불거질 '개헌 정국' 등으로 정치권 전반이 체질 개선을 요구받을 것으로 예측한다.

친노(親盧·친노무현)-친문(親文·친문재인) 패권주의에 비판적인 개헌파 민주당 의원들이 어떤 식으로든 대선 정국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조짐도 감지된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대연정 논의를 꺼냈다 지지율 하락의 역풍을 맞았으나, 이는 현재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 바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을 반영한 것이고 또 그의 콘텐츠 부족과 겹치면서 비판을 산 것이다. 

강한 대결 의식과 선민사상을 갖추고 대립의 정치를 하겠다는 정치인에 대해 국민들이 염증을 느끼면서, 일명 삼김정치, 즉 거물 정치인 개개인에게 모든 것을 걸고 정당 자체의 생성과 발전, 소멸을 그 같은 지도자의 손에 맡기는 데 대한 비판론도 급격히 세를 불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므로 콘텐츠를 풍부히 갖추고 국가 발전의 어젠다를 잘 제시하는 정치인이 이번 대선 아울러 그 다음의 여러 선거에서 계속적으로 부각될 수 있다. 이런 움직임 중 가장 빠른 방안이 바로 가장 강력한 주자인 문 전 대표에 대한 공세로 나타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