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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형의 M&M] 님아, 그 벽을 세우지 마오

이윤형 기자 기자  2017.02.28 1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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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영웅과 사랑, 서민의 노래(귀족 풍자), 예술과 대중의 조화…. 11세기부터 이어진 프랑스 대중음악 '샹송'의 변천사입니다. 이처럼 음악은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때로는 표현의 자유와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투영하기 위한 도구로도 쓰입니다. 'M&M(뮤직 앤 맥거핀)'에서는 음악 안에 숨은 메타포(metaphor)와 그 속에 녹은 최근 경제 및 사회 이슈를 읊조립니다.

논리학적 관점에선 제한된 증거를 갖고 바로 결론을 내는 것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정의합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어마무시한 말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이는 일종의 편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오류가 인종 간 일어나면 인종적 편견이 되고, 국가 간에 발생하면 국가적 편견으로 굳어지게 되죠.

비록 누군가가 신뢰를 져버리는 행동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들의 모든 것과 단절하는 결단을 내렸다면 '그것이 과연 성숙한 결정이었나'라는 반문은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될 것입니다.

여덟 번째 「M&M」에서 청취할 곡은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밴드의 1인자,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열한 번째 스튜디오 앨범 '더 월(The Wall)'입니다.

1979년 발매된 더 월은 빌보드차트 5위권 내에 6개월동안 머물렀고, 15주 동안 차트 정상을 차지, 1999년 기준으로 2300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 실적을 세우는 등 세계적 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이 앨범은 록 오페라 형식의 콘셉트 앨범으로 투트랙으로 구성된 26개의 수록곡들이 한 인물(Pink)의 일생을 81분11초 동안 그려냅니다. 여기서 The Wall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려는 내면의 벽을 비유합니다.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핑크는 태어나기도 전에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습니다. 아버지를 여읜 핑크는 주변의 아이들을 보며 외로움을 느끼고. 어머니는 그런 핑크를 과잉보호하며 키우죠.

아버지는 강을 건너 떠나 버렸어. 가족 앨범 안의 사진 한 장만을 남겨둔 채. 아버지,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남겨줬나요? 도대체 무엇을 물려줬나요? 그건 단지 벽을 채운 벽돌 한 장에 불과해요. -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Ⅰ 중

쉿. 아가야 울지마렴. (중략) 엄마의 품속에서 너를 지켜줄 거란다. 엄마는 너를 날게 할 순 없지만 어쩌면 노래하게 해줄 순 있단다. 엄마가 너를 따뜻하고 아늑하게 해줄 거란다. 우…아가야, 우…아가야 당연히 엄마는 네가 벽을 만드는 걸 도와줄 거야. - Mother 중

그러나 엄마의 과잉보호는 핑크가 내면의 벽을 쌓는 원인이 됩니다. 엄마는 그것을 도와주려하고요. 그렇게 핑크는 성장해 학교에 갔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내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학생들에게 푸는 선생과 주입식 교육이었습니다.

우리가 자라서 학교에 갔을 때, 그곳에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혼내려는 선생들이 몇몇 있었지. 아이들이 하는 모든 일들에 조롱을 퍼붙고 (중략) 하지만 마을에는 소문이 다 났었네. 그 선생이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 뚱뚱하고 미친 아내가 그를 죽을 지경으로 때린다는 것을 말이야. - 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 중

주입식 교육과 선생의 화풀이, 과잉보호를 받고 자란 핑크는 더욱 두꺼운 벽을 쌓기 시작하는데요. 다행히 성인이 된 핑크는 록밴드 활동을 하면서 결혼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평범한 삶도 잠시, 핑크는 바쁜 스케줄의 반복으로 아내와 애정을 나눌 기회가 점차 줄게 돼 결국 아내는 불륜을 저지르고 떠나버립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사랑은 식어가. (중략) 모든 게 이전처럼 재미있지가 않아 (중략) 침대방으로 뛰어가서 옷장의 왼편을 바라보면 나의 멋진 도끼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너무 무섭게 생각 하진마. (중략) 경찰을 부를 거니? 이젠 내가 멈춰야할 때라고 생각하니? 왜 도망가는 거야? - One Of My Turns 중

우리가 이야기 하곤 했던 이 공간을 채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나의 무덤을 채워야 할까? 어떻게 나의 벽을 완성해야 할까. - Empty Spaces 중

핑크는 과잉보호와 선생의 억압,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것도 모자라 아내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내면의 벽을 끝까지 쌓아 올려버립니다.

클럽에서 만난 여자를 집에 데려온 외톨이 핑크는 끝내 미쳐버리죠. 핑크는 아내와 그 여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 여자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주려는 손길은 필요 없다며 자신이 쌓아올린 벽 속에 틀어박히게 됩니다.

우…그대여. 날 떠나지 마요. 우리가 끝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내가 보낸 꽃을 떠올려 봐요 (중략)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 있죠? 나에게 당신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토요일 저녁에 죽도록 패버리기 위해. - Don't leave now 중

나는 단지 새로운 남자일 뿐이야. 이 마을의 이방인 일뿐. (중략) 우…나는 더러운 여자가 필요해. 이 황량한 곳의 차가운 여자가 날 진정한 남자로 만들어 줄까? 우…자기야 나를 해방시켜줘. 우…나는 더러운 여자가 필요해. - Young Lust 중

미쳐있던 핑크는 홀로 티비를 보다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쓰러지는데요. 록밴드의 공연을 위해 핑크를 데리러 온 매니저가 쓰러진 핑크를 발견합니다. 매니저는 그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강제로 각성제를 투약하죠.

여보게 거기 누구 없소? 내 말이 들리면 고개를 끄덕이시오 집에 누구 안 계시나요? (중략) 오케이 핀에 찔리듯 따끔하기만 할 것이오. 더 이상의 '아아아악!'은 없을 것이오. 약간 속이 울렁거릴 수는 있소. 일어날 수 있겠소? 그렇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소. 이 정도면 어떻게든 쇼를 할 동안은 네가 서있을 수 있겠지. - Comfortably Numb 중

그 뒤로 넋이 나가버린 핑크는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동성애 혐오, 인종차별적인 성향의 공격적이고 난폭한 성격으로 변해갑니다. (In The Flesh) 또한 강제로 맞은 각성제 탓에 핑크는 록밴드를 괴상하게 이끌다가 결국 공연을 망치게 되죠.

급하게 결론을 맺자면 핑크는 결국 내면의 재판을 통해 그가 세운 벽을 허물라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 재판은 현실에선 공연을 망친 것에 대한 죄책감이지만, 상상 속에선 폭력적인 행위와 동성애, 인종차별 그리고 그동안 핑크가 벽을 쌓고 살았던 모든 인생에 대한 재판입니다. (The Trial)

벽을 허무는 형벌은 핑크에게 상당히 절망적이고 두려운 형벌입니다. 핑크의 벽은 사회에게 거부감을 느끼며 사회와 단절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 벽은 한때 자신을 사회에서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보호막이기 때문이죠. 결국 벽을 부수라는 것은 핑크를 죽이라는 소리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핑크는 죗값을 치릅니다. (Outside The Wall)

The Wall 전곡

핑크 플로이드는 이 앨범의 이야기를 통해 벽을 필요 이상으로 높게 쌓지 말라고 권유하는데요. 그러면서도 이들은 인간에게 '벽'은 아주 필수적인 존재이기에 벽은 허물어짐과 동시에 쌓임이라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더 월의 마지막 곡인 'Outside The Wall'은 첫 번째 곡인 'In The Flesh?'와 이어지면서 순환구조를 이루는데요.

이 앨범 첫 곡의 제일 처음부분의 가사 가사라기 보단 제3자의 내레이션처럼 들리는 작은 속삭임인 'we came in?'과 마지막 곡 끝 부분에 나오는 가사이 역시 작은 속삭임인 'Isn't this where'을 이어붙이면 한 문장이 됩니다. "Isn't this where we came in?"(여기 우리 왔던 곳 아냐?)로 말이죠.

영화 '핑크플로이드 더 월'에서도 모든 벽이 무너진 자리에 명령받은 듯한 어린 아이들이 하나씩 벽돌을 주워 다시 쌓아올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핑크플로이드는 우린 영원히 벽을 쌓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존재라는 사실 또한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핑크플로이드는 무한히 반복되는 이야기를 통해 벽은 너무 낮아도, 높아도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벽이 너무 높으면 핑크처럼 고독감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갈 테니까요.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 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아직까지 두꺼운 벽을 쌓아올리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핑크처럼 말이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이후 보호무역, 반(反) 이민주의를 내세우며 신고립주의와 반세계화의 벽을 쌓고 있는데요. 이는 그동안 시장 개방과 세계화를 적극 지지하는 중추적 역할을 해온 미국의 노선과 상반돼 많은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물론 감세와 인프라 투자를 통한 경기 부양이 트럼프노믹스의 근간이라고 하지만 그 기조에는 이미 체결한 무역협정 재협상 등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에 기반한 자국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죠.

이밖에도 이달 초, 반 이민 행정명령에 트럼프 대통령이 사인함에 따라 이슬람권 무슬림계 7개국의 국민이 미국에 입국 금지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요. 미국 국무부도 이라크 등 7개국 국민에게 이미 발급된 미국 비자까지 잠정적으로 취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미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라크 등 7개국 국적자의 미국 비자가 졸지에 취소가 되면서 미국 내 이슬람 사회에서는 언제든 추방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번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 행정부는 불법체류자 단속과 추방을 강화하기 위한 반 이민 행정명령 후속 조치인 반 이민정책 2탄도 발표한 상황인데요.

두 번째 반 이민 정책은 중범죄를 포함해 무면허 운전, 노상방뇨 등 경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도 추방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또 단속 대상을 불법체류자에 한정하지 않고 추방할 수 있는 모든 외국인이라고 규정했죠.

이런 가운데 미국에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트럼프를 반대하는 물결도 상당합니다. 외국인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공개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고 있죠.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은 취업비자(H1B) 덕분에 자국 내 부족한 기술 인력을 인도, 중국 등 외국인 기술자들로 채울 수 있었고, 이들은 인공지능, 자율주행자동차, 가상·증강현실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데 큰 기여를 하기 때문이죠.

세계적 투자 귀재인 워런 버핏도 트럼프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는데요. 그는 "유능하고 포부를 가진 이민자들의 물결은 미국 경제의 번영을 가져온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내세운 신고립주의는 세계 각국에 수많은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반드시 철회돼야하는 정책입니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와 '메이크 아메리카 그레이트 어게인'을 표방하는 현 미국 정부는 외면하겠지만요.

그러나 그들이 날세운 신고립주의의 창끝은 결국 자국에도 필연적으로 겨눠질 것입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워런 버핏, 그리고 핑크의 말처럼 말입니다.


The Wall - Pink Floy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