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영화나 드라마·소설, 그리고 스포츠 등 여러 문화 콘텐츠는 직·간접적으로 현실 사회를 반영한다. 영화 '베테랑'이나 '내부자들'이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예로 들 수 있다. 여기에 콘텐츠 배경이나 제목, 주제가 어떤 상황과 이어지기도 한다. 또 이를 바탕으로 한 현상도 바라볼 수 있다. '콘텐츠 렌즈'에선 이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콘텐츠의 직·간접적인 시선을 공유해본다.

#.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정의로 뭉친 주먹 로보트 태권.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 두 팔을 곧게 앞으로 뻗어 적진을 향해 하늘 날으면 멋지다 신난다. 태권브이 만만세. 무적의 우리친구 태권브이.
이는 지난 1976년 국내에서 개봉된 국내 로봇계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 주제가다. 많은 중장년층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추억 속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며, 주된 내용은 외모 콤플렉스로 사람들을 자신 발밑에 무릎 꿇게 하려는 카프박사와 이에 맞서 싸우는 훈과 태권V의 모습을 그렸다.
무엇보다 한국 대표 무술인 태권도와 로봇을 결합시킨 스토리로 개봉 당시 서울 관객만 18만명에 달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아무튼, 최근 태권브이를 그리워하는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두 업체가 마케팅을 펼치면서 브랜드 인지도 향상은 물론, 매출 증대 효과까지 얻어 관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다만, 두 업체와 태권브이의 우연한 공통점이 거론되면서 부정적인 효과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선 가장 활발한 태권브이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업체는 바로 OK저축은행이다. 국내 대부업 그룹 아프로서비스그룹 러시앤캐시가 지난 2014년 가교저축은행이었던 예주저축은행과 예나래저축은행을 인수해 출범시켰다.
브랜드 캐릭터를 태권브이로 선정한 것은 물론, 기존 애니메이션 재더빙을 통한 CF광고 등을 진행, 고객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면서 성공적인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OK저축은행의 태권브이 마케팅 배경에는 '일본계 대부업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 깔렸다. 이는 재일교포 3세인 최윤 회장의 숙원으로 알려졌다. 이에 OK저축은행은 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하면서 ‘토종 로봇’으로 알려진 태권브이를 전면에 내세운 것.
국내 굴지 대기업인 롯데의 경우 계열사인 롯데리아가 태권브이 피규어 마케팅으로 적지 않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롯데리아는 시즌마다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유명 인기 캐릭터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거나 무료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올 시즌 캐릭터로 태권브이를 선정한 것이다.
이처럼 두 업체의 이번 태권브이 마케팅 접근 각도는 약간 다르다. 그러나 '일본 DNA'라는 숨길 수 없는 공통점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또 다른 얘깃거리를 남기고 있다.
토종 로봇이라 칭송받는 태권브이를 둘러싼 ‘표절 의혹’이 그것이다. 태권브이는 '마징가 제트(이하 마징가)'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표절한 것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던 터다.
머리 부분을 제외한 로봇 디자인 도안을 전부 도용했다고 할 만큼 너무 닮았고, 머리 또한 마징가에 등장하는 적 로봇과 흡사하다는 의견이다. 84태권브이 역시 일본 다이아버틀스에서 머리만 변경된 것이라는 의혹까지 나돈다. 또 태권브이 초안 제목도 '마징거 태권'으로 확인되면서 표절 의혹에 신빙성이 더해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태권브이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OK저축은행과 롯데 역시 일본과의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러시앤캐시로 국내 대부업체에 새로운 체계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최윤 아프로서비스그룹 회장은 재일교포 출신 사업가다. 국내에 본사를 뒀으며 대주주도 한국 국적이지만, 일본계 자금으로 회사가 설립되면서 일본계 대부(사채)업체로 분류되고 있다.
그럼에도 OK저축은행을 계기로 제도권 금융에 입성했고, 국내외 다양한 인수합병을 통해 종합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하면서 '일본계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948년 일본에서 '롯데'를 설립한 이후 한일 국교 정상화(1965년)를 계기 삼아 1967년 자본금 3000만원으로 국내에 롯데제과를 세운 '롯데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 역시 재일교포다. 이를 위시해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롯데그룹은 '매출 100조원'을 바라보는 재계 5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다만, OK저축은행과 달리 롯데는 상대적으로 국내기업 이미지가 강한 편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신격호의 장남 신동주 부회장이 일본, 차남 신동빈은 한국을 담당하면서 롯데그룹은 두 형제에 의해 구심점이 나눠져 운영돼 왔다.
하지만 '동주-동빈 형제의 난' 이후 신동빈 회장은 한·일 롯데 경영권을 모두 거머쥐면서 '롯데그룹 정체성'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분위기다.
특히 그룹의 사실상 지주사인 호텔롯데는 일본롯데홀딩스 및 광윤사 등 주주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형제의 난 과정에서 신동빈 회장이 일본 측 지지를 받아 경영권을 유지했던 만큼 경영간섭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다.
최근 '곡성'을 비롯해 △추격자 △황해 등의 영화로 주목을 받은 나홍진 감독이 태권브이 실사판 연출을 제안받고 긍정적인 검토를 한다는 전언이 들린다. 과연 실사판 태권브이는 과거 표절 논란에서 벗어난 새로운 토종 로봇 애니메이션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