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환율 조작국 지정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따른다.
글로벌 유력지인 파이낸셜 타임스가 "진짜 환율조작국은 한국"이라고 주장하자 정부 당국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최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 4월과 10월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관찰 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지정했다.
관찰 대상국은 심층분석대상국(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위한 전 단계다. 환율 조작국으로 볼 수는 없지만 경제 동향과 환율 정책을 지속 감시하겠다는 뜻이다.
미 재무부는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을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 △상당한 경상흑자 △외환시장 일방향 개입 등 3개로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 중 대미 무역흑자, 경상흑자 2개 부문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는 302억달러로 '200억달러 초과' 기준을 넘어서고, 7.9%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 규모는 '3%' 기준의 두배를 넘는다.
우리나라가 마지막 요건까지 충족해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경우 상당한 경제 보복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1년간의 협의를 통해 환율 저평가나 대미 무역역조 해소 정책 등을 요구받게 된다. 이후에도 시정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미 기업투자 때 금융지원 금지, 미 연방정부 조달시장 진입 금지 등의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환율조작국 지정은 우리 교역과 펀더멘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환율 상승 재료"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그렇지만, 미국의 견제를 받아 외환 당국이 매도개입을 하거나 매수 개입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환율 하락 재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국이 정기적으로 환율보고서를 발표하는 4월, 중국을 환율조작국에 지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4월 위기설'이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1994년 이후 처음 미국이 지정한 환율조작국이 나오는 것이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중국이 환율 안정 정책이 위협받을 수 있다. 더불어 미국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에 다른 위안화 절상 압력 고조는 원화 강세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위안화와 원화 환율 간의 동조화는 한국의 전체 수출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4에 이르는 등 한국경제의 대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 지정하면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고조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세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역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에 따른 중국의 타격과 피해가 한국에 기회를 주는 반사이익보다 중국 교역 둔화, 미·중 갈등 심화, 한국으로의 환율 및 통상 분쟁 확산 등으로 한국에 위협요인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특히 한국의 대중 수출 중 60% 이상이 재수출 목적인 만큼 미·중 통상마찰이 심화될 경우 한국의 대중국 가공무역과 보세무역이 충격을 받고, 업종별로는 컴퓨터 및 통신기기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보다 앞서 한국이 먼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현 원장은 "올 상반기 미국이 중국을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이 보복조치에 나서면서 양국 간 갈등이 심화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계속해서 "미국이 중국과 극단적인 대결은 피하면서도 중국을 압박하는 형태로 한국이나 대만을 환율조작국으로 우선 지정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중국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한국, 대만 등을 우선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1988년 미국의 종합무역법에서 미국은 한국(1988년)과 대만(1988년)을 중국(1992년)보다 먼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불확실성 확대 탓에 국내증시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진단된다.
마주옥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3~4월 중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이 가능하고 이 경우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국내외환시장의 변동폭이 확대되고 있고, 외국인 매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배성영 KB증권 연구원 역시 "미 증시가 심리 개선 속에 밸류에이션을 레벨업하는 반면, 국내 증시는 심리 위축 속에 박스권 흐름이 이어진다"며 "글로벌 저성장과 경쟁심화, 보호무역주의 확대가 이익 성장의 신뢰를 약화시키며 밸류에이션 정상화를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