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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정복자'에서 '리스크꾸러기'로…'최태원 M&A' 경고등

도시바 러브콜에 냉정한 평가…반도체 인수전 '아, 옛날이여'

임혜현 기자 기자  2017.02.16 1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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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한국 기업은 유독 '오너 리스크'에 약하다. 재벌의 장점으로 오너십에 의한 진취적이고 책임감있는 경영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지만, 반대로 오너의 잘못된 판단이나 고집이 필터링되지 못하고 실제 집행돼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만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문에 속된 말로 감옥에 갇혀있거나 장기간 누워있는 게 차라리 도움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딥 체인지' 구상을 내놓으면서 연일 임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평탄하게 살다가 돌연사(서든 데스)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그룹 전반에 불어넣고자 노력하고 있다. 차세대 성장 동력을 찾고자 하는 그의 열정의 발로다.

한편에선 최 회장이 대주주로서 고액 배당을 그 어느 재벌 수장보다 즐겨왔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 상쇄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욱이 SK그룹 구조 전반을 뜯어고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지배력 강화라는 제1 목표에만 신경쓴다는 악평도 많다.

최 회장은SKC&C와 ㈜SK(034730)의 합병을 처리하는 등으로 지배력을 높여왔다. 최 회장은 SKC&C의 지분을 33%가량 갖고 있었지만 ㈜SK 지분은 거의 없었다. 2015년 합병으로 이를 일거에 뒤집은 것. 2009년경 7000억원에 불과했던 최 회장의 주식가치는 이 합병 후 3조7000억원대로 폭등했다.

세간에서는 이런 그의 행보를 어떻게 볼까. 흥미로운 해외 평가기관의 분석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응이 이를 극명히 드러내 눈길을 끈다.

낸드 약점 보강 노력? 외국 기관은 '신인도 망칠 판단' 우려

SK하이닉스(000660)는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지만, 낸드플래시 부문에서는 뒤쳐진 행보를 보여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K하이닉스는 일본 도시바의 지분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하지만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사업부 지분 인수 계획이 성사될 경우 신용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부정적 보고서에 외국인들이 바로 차익 실현을 하러 나서 주가가 당일 5%나 급락한 것은 외국 분석기관이 SK식 M&A에 대해 어떤 시각을 보이고 있고, 또 그런 움직임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또 어떤 추세를 보이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리아 취엔 무디스 부사장은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사업 지분인수가 성사될 경우 예상되는 지분율이 20% 미만으로 경쟁사의 기술 및 현금흐름에 대한 접근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이런 시도와 관련 SK하이닉스의 '유동성 차원'에서는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봤다는 점이다. 돈은 있고, 이것을 써서 사들여도 유동성 문제는 없는데, 신용은 깎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왜 이런 평가가 나온 것일까? 

겨우 20% 지분을 사들여서 도시바가 갖춘 비장의 낸드 기술을 들여다 볼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반대로 이런 데 거액을 쓰겠다는 M&A 마인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평가인 셈이다.

이 같은 도시바 지분 일부 매입에는 약 3조원이 쓰일 것으로 업계는 보는데, 기술 이전 효과도 제대로 보지 못할 일에 이 같은 투자를 단행하는 기업구조(내지 의사판단구조)가 신용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전체적 판단을 한 것으로도 읽힌다. 다른 말로 바꾸면 '오너 리스크'다.

대대적인 투자에 박차를 가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최 회장의 행보는 더 나아가 그룹의 지주 시스템 완공과도 연결된다.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 등 일명 '경제민주화법'들이 불리한 법안이 현실화하기 전에 중간지주제 도입 등을 단행할 필요가 SK그룹으로서는 높다. 그룹의 '캐시카우'인 반도체 회사를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탈바꿈하고 그 와중에 부족한 영역의 경쟁력도 키우려는 것.

하지만 이런 시도에 대해 밖에서는 '순수하게만' 봐주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를 제대로 키우겠다는 의지와 그 방법론으로 SK하이닉스의 각종 M&A 가능성 등을 위해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위상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같은 최태원식 M&A 구상에는 당분간 이어질 '반도체 슈퍼 사이클'과 이로 인한 배당을 즐기려 SK텔레콤(017670)에서 굳이 SK하이닉스를 떼어내려 한다는 혐의가 씌워지고 있다.

㈜SK가 SK텔레콤을 거쳐 SK하이닉스의 배당을 받으려면 이중으로 배당세를 물어야 하지만 그 대신, 막바로 지주회사에서 반도체가 모회사-자회사 관계로 연결하면 그런 지출이 사라진다.

이런 '얌체 경영'의 일환으로 반도체의 명문 도시바 지분을 그것도 일부만 사서 기밀을 들여다본다는 구상은 '상도의 실종 M&A'로 오해를 살 수 있는 것이고, 전체적으로 마이너스 평가를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같은 3조원 승부, 하이닉스 인수는 '회계학의 모범'이었는데…

문제는 이런 신용도 논란을 빚은 최태원식 M&A가 과거에는 결단력 측면에서는 물론 재무건전성 충족의 모범 사례를 일군 바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무디스 혹평으로 쓴맛을 본 SK하이닉스가 바로 그 과거 성공 사례의 주인공이다. 2012년 SK텔레콤은 하이닉스반도체를 채권단으로부터 약 3조원에 사들였다.

LG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넘겨 탄생한 하이닉스는 결국 경영 악화로 채권단이 장기간 끌고가는 애물단지가 돼 있었다. 효성그룹에서도 관심을 가졌지만 손을 뗐고 결국 SK그룹에서 모험을 한 것.

당시 SK그룹 내부에서도 반도체 인수 문제를 놓고 격론이 오갔다. 다만, SK텔레콤이 가진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상품과 단기투자자산 등을 포함해 고려하면 재정적 부담은 크지 않았다고 풀이된다. 8000억원선을 내부 보유현금으로 처리했고, 그 나머지는 은행(우리은행, 국민은행)을 통한 장단기차입을 통해 조달했다.

두둑한 배짱과 미래를 위한 가치 판단, 자금력과 외부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높은 신용도 등이 빚어낸 역작이었던 셈이다.

채권단으로서도, 정부로서도 만족스러운 계약이기도 했다.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에 외국 기업이 아닌 국내 기업인 SK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였으므로 염려하는 바를 모두 해결한 최적의 방안이 도출된 셈이었다"는 평가에 이어 재무건전성을 살린 M&A 케이스로 학술지에 분석, 정리돼 모범 케이스로 공유되기도 했다(한송이 등 3인 공저, 'SK텔레콤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와 발전: 부채와 재무건전성에 대한 사례', 2015년 12월 '회계저널' 수록).

그러나 불과 5년 만인 2017년, 최태원식 M&A는 다시 같은 소재를 놓고 요리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상반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해외 투기자본 소버린의 경영권 침탈 시도에 맞서던 '젊은 경영인'이라는 이미지는 이제 '고배당 탐욕' '지배구조에 집착하는 오너'라는 식의 의심을 받으며 빛을 잃고 있다.

구속 시 주가 무탈, 최 회장 나와서 돌아다니니 오히려 문제?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나온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의 오너 구속과 주가 변동 가능성(원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문제에 초점을 맞춰 나온 보고서임)은 최 회장을 둘러싼 문제의 실마리를 짐작게 한다.   

정몽구 현대자동차(005380)그룹 회장이 2006년 4월에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을 때 현대차그룹의 상장계열사 주가는 기소된 날을 기점으로 1개월 동안 17.13% 떨어졌다.

하지만 김 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SK그룹은 최 회장 구속(2012년 1월)에도 핵심 계열사의 업황이 구조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덕을 보면서 계열사 주가에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았다.

이같이 탄탄한 경영 체력을 갖고 있던 SK그룹의 위상은 높이 평가됐었다. 물론, 이제는 다름아닌 최 회장의 비상한 경영 독려와 그 파생작품에 대해 무디스 보고서 같은 조롱이 그 위상을 깎고 있지만 말이다. 이는 최 회장이 지배구조 개편을 완성한 뒤에 반드시 자성해야 할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SK텔레콤을 활용한 '하이닉스 도박'은 회계학과 경영학 부문의 교과서적 사례로 꼽혔던 게 사실이다. 최 회장이 초심을 빨리 회복하지 못한다면 SK그룹의 오너 리스크는 시시때때로 재연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