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12일 흥미로운 순위가 나왔다. 한국거래소가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의 지분변동 추이를 분석해 본 결과, 최근 10년간 외국인 보유 지분 증가폭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000660)의 외국인 보유비율이 10년 전(2007년 2월9일 기준, 이후 상장한 기업은 각자의 상장 시점 이후로 비교) 20.46%에서 현재 50.23%로 무려 29.77%포인트나 높아져 1위를 차지했다.
2등은 SK(034730, 옛 SKC&C)였다. 이 종목은 SKC&C 상장 시점인 2009년 11월 2.69%부터 따질 때 외국인 지분율이 21.77%포인트나 높아졌다.
반면 현대차(005380), 삼성전자(005930), 한국전력(015760) 등 전통 대형주의 외국인 보유 지분은 10년간 큰 폭으로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흥미로운 점은 SK텔레콤(017670)은 -5.89%포인트, SK이노베이션(096770, 2007년 7월 상장)은 -4.43%포인트의 흐름을 보이는 등 오히려 외국인 지분이 많이 줄어든 순위로 3·4등을 기록했다는 부분이다.
이는 마침 지난 2007년 SK그룹이 지주회사 시스템으로 전환한 10년간의 상황과 맞물리면서 특별한 해석을 낳고 있다. 성공적으로 지주 체제 전환을 마무리한 LG그룹과는 달리, SK그룹은 재계 공정자산 순위에서 3위권을 기록하면서도 아직 '최태원 체제'를 완전히 다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금융회사 지분(SK증권 지분) 보유 문제를 아직 처리하지 못했고, SK텔레콤 밑에 SK하이닉스를 두는 손자회사 상황이어서 M&A 시도 등에서도 발목을 잡히고 있다. 주변 상황도 좋지 않다. 자사주 의결권 부활을 제한한 상법 개정안 등이 통과될 우려도 높다.
현금 여유가 있고, M&A에 적극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숙제 마감이 급한 상황. 최태원 회장이 '서든 데스(돌연사)' 우려까지 내놓으면서 구성원들에게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것에는 이런 상황이 맞물려 있다. 외국인 지분 비율은 높은 투자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SK그룹 소속사들의 경우는 아쉬운 상황을 간파당한 데 따른 비정상적 동향이라는 해석이 그래서 뒤따른다.
증권가에서는 지난 2015년경부터 SK텔레콤을, SK하이닉스 지분을 보유하는 SK텔레콤지주회사와 SK텔레콤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고, 다시 이 지주를 현재의 지주사인 ㈜SK와 합병한다는 시나리오가 활발히 나돌았다. 이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SK의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격상된다. 최근 SK그룹의 '캐시카우'로 떠오른 SK하이닉스를 ㈜SK가 직접 지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외국인들이 굳이 왜 이런 시나리오에 찬성해야 하느냐는 반발 가능성이 계속 따라붙어왔다. 아울러 이 시나리오가 해피엔딩이 되려면 오너 일가 지분이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SK 주가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된다는 숙제가 부산물로 생긴다. 이런 '뻔한' 예측들이 장기간 반영된 것이 바로 위의 외국인 지분 흐름이라는 해석이 눈길을 끈다.
◆높은 배당 비율에 멍든 SK텔레콤, 이젠 외국인 빠질 때?
금융감독원 공시자료를 보면 최 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과 함께 단연 고배당 순위 톱5 안에 들고 있다. 그룹 소속사들로부터 고배당을 이끌어낸 덕이다. 이런 점에서 안정성을 극히 중시하거나 고배당 등 이익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외국인 투자자들이 SK그룹주들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SK텔레콤은 아시아 내에서도 유력한 고배당주로 꼽혀왔다. SK텔레콤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주당 9400원의 배당(중간배당 주당 1000원, 기말배당 주당 8400원)을 해왔고, 2015년의 경우 주당 1만원을 배당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호재가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이 나오고 있었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보고서에 따르면 SK텔레콤의 이동통신시장 점유율은 6년째 감소세를 보여왔다. 결국 최근 실적 약화 상황은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된 것.
결국 외국인 이탈은 고배당 흐름을 즐긴 뒤, SK하이닉스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정책적 규제 대상 종목으로만 남게 되는 상황에 대해 이미 '출구전략'을 진행해온 방증으로 볼 수 있다.
◆SK이노베이션, 올해는 '땀 삐질' 우려?
SK이노베이션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임원 워크숍에서 작년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과 관련해 "이러한 실적 호조가 지속되지 못하면 시장에서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이유는 환율 문제.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SK이노베이션 실적에는 유가·환율 상승으로 약 2900억원의 추가 이익이 반영됐다"고 풀이했는데, 트럼프발 환율 악재로 실적 상쇄 상황이 우려되는 셈이다. 이 같은 환율 리스크는 정유주 일반에 공통되는 것이지만, 고배당으로 지주회사 ㈜SK의 먹거리 공급에 열과 성을 다해온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이중부담이 있는 것이다.
전통적 고배당주로 알려진 SK이노베이션은 2011년 이후 꾸준히 배당금을 증액했으나 적자를 기록한 2014년에는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SK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들의 배당성향을 30%로 높이겠다는 가이던스를 제시했던 것에 눈길이 쏠렸다.
이달 들어 결정된 SK이노베이션의 특별배당을 보면, 앞으로도 대규모 적자 같은 이슈가 아닌, 환율 리스크 같은 작은 어려움쯤은 간과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SK는 SK이노베이션 지분 33%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특별 배당으로만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약 1977억원을 수취할 것으로 분석된다.
◆슈퍼 사이클 올라탄 SK하이닉스도 '낸드 숙제'
SK하이닉스는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지만, 낸드플래시 부문에서는 뒤쳐진 행보를 보여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K하이닉스는 낸드 부문의 명문 도시바의 지분을 인수하는 문제에 착수한 바 있다.
하지만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SK하이닉스의 도시바 사업부 지분 인수 계획이 성사될 경우 신용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부정적 보고서에 외국인들이 바로 차익 실현을 하러 나서 주가가 당일 5%나 급락한 것은 외국 분석기관이 SK식 M&A에 대해 어떤 시각을 보이고 있고, 또 그런 움직임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또 어떤 추세를 보이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SK텔레콤을 거쳐 SK하이닉스의 배당을 받으려면 이중으로 배당세를 물어야 하지만 그 대신, 막바로 지주회사에서 반도체 쪽으로 모회사-자회사 관계로 연결하면 그런 지출이 사라진다. 하지만 지배구조 변경과 부족한 부분의 역량을 보충하는 숙제를 동시에 푸는 것은 간만에 찾아온 '슈퍼 사이클'에 올라타는 것만으로 쉽게 풀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지주 도입 10년' 속내 뻔히 읽히면서 '10년짜리 빨대'로
㈜SK는 통합 지주 출범 후 사업형 지주사로 변신을 모색 중이다. ICT통합솔루션·LNG·반도체모듈·반도체소재·바이오 사업 등을 미래 성장 사업으로 삼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이런 ㈜SK의 행보들도 역시 오너를 위한 지분 희석 방지라는 일관된 목표로 움직인다는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SK가 직접 거느리고 있는 SK머티리얼즈의 경우 최근 자사주 매입 이슈가 있었다. 연말 자사주 매입에 쓰인 돈만 899억원, 지분율로 보면 5%가량을 움직인 것인데, 상장사들이 통상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사는 자사주 지분이 1~2% 수준인 것과 대비된다. 일각에서는 대형 M&A 이후 SK머티리얼즈와의 합병 과정에서 지주사 측 즉 ㈜SK 지분 희석을 방어하는 차원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길은 ㈜SK의 이익, 더 나아가서는 최 회장의 배당과 지배력 공고화에 맞춰져 있고 이를 위해 부단히 그룹 산하의 주요 업체들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다른 기업과 달리 유난히 들여다보이고 우직하게 실현된다는 데 있다.
SK그룹은 소버린 사태를 겪으면서 오너의 지배력 약화를 어느 그룹보다 싫어하며, 지주회사 정착을 하려면 적잖은 공을 들여야 하는 출발선에서 시작, 지난 10년을 지나왔다. 삼성그룹의 경우 곳간을 여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이재용 체제' 구축에 상당히 다가섰고 외국인들에게 그 과실을 잘 나눠주지 않아 불만을 산 것과 대조적이다. 엘리엇 펀드가 삼성물산 합병 건에서 브레이크를 걸어 비로소 고배당 방침을 끌어낸 것이 그 예다.
그런 점에서 보면, SK그룹의 지주 함수 풀이는 다른 그룹군에 비하면 '오픈북 시험'과 같았던 셈이다. 최대주주의 지분 희석을 막는다는 대전제가 너무 충실히 작동됐기 때문에 국부 유출을 안정적으로 해주는 채널이 됐고, 외국인의 넘치는 사랑을 받기에 가장 적합했던 '미인주'가 된 것.
지금까지 경영권 장악과 지주회사 체제의 동거를 위해 이 같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부득이 해왔다지만, 이는 '최태원과 지주 체제'가 완성된 이후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