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국세청과 행정자치부 등이 외국계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코리아와 BAT코리아에 각각 2180억원과 890억원의 담뱃세를 추징하기로 한 가운데 해당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소송 등 불복 절차에 돌입하거나 준비 중이어서 주목된다.
두 회사는 추징세액을 모두 납부했으나 즉시 조세심판원에 과세불복신청을 제기하거나 회사 내부적으로 불복을 검토 중이다. 한국 조세당국과 외국계 담배회사간 담뱃세 분쟁이 목전에 닥친 셈.
문제의 관건은 세금이 부과되는 반출 시점. 담배에 붙는 세금을 급격히 올릴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이들 회사는 제조장에서 담배를 대거 반출, 창고에 쌓는 방법 등으로 이전에 붙던 세금을 내고 나중에 오른 가격으로 팔아 차익을 챙겼다는 것이 논란의 골자다.
물론 이 와중에 반출 물량을 일부 조작했다는(꾸몄다는) 의혹 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가장 큰 부분은 과연 세금이 오를 게 분명한 상황에서 일처리를 서둘러 물량을 제조장 밖으로 내보낸 경우 뒤늦게 세금을 물릴 수 있냐에 맞춰지고 있다.
◆세금 정비 골든타임 낭비…국회의원 당부도 묻혀
정부가 담뱃값을 2000원 올리면서 담배에 개별소비세를 신설하는 관련 법령을 입법예고한 때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4년 9월12일, 다음 해부터 담배출고가격의 77%를 개별소비세로 부과한다는 개별소비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입법예고됐다. 개정안은 개별소비세 과세대상에 담배를 추가하고, 물품가격(공장출고가격 또는 수입신고가격)의 100분의77(77%)을 부과하도록 했다.
이후 2015년 1월1일 담뱃세가 실제로 인상되면서, 소비자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문제는 당시 담배 제조회사들과 유통업체들이 '재고로 보유한 담배'에 대해 인상차액이 그대로 넘어가 폭리를 취할 수 있었다는 논란이 이전부터 있었다는 점이다.
법 시행 전부터 시민들의 지적이 많았지만, 특히 2015년 4월15일 김태환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대정부질문을 통해 주형환 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에게 정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 차익에 대해 "국고로 들어가야지 제조사나 유통업자의 호주머니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실정법 위반이 아니라면 재고차익을 모두 환수하도록 하고, 설령 실정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사회환원이라도 시켜줄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의 당부에도 당국은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김 전 의원의 지적이 묻혀버린 지 1년쯤 뒤에야 이 문제는 감사원에 의해 다시 재조명을 받기에 이르렀고 문제 사항이 당국에 통보, 이후 세금 부과 방법을 고심해 실제로 이번에 단행된 것이다.
결국 정부가 담배 가격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민간 기업에서 이를 파악하고 대처할 때까지 사실상 큰 조치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제도적 문제 정비에 대응할 시간? 판례 '1년이면 대응기간 충분'
정부는 2014년 6월부터 담배의 가격을 올리겠다는 뜻을 천명했고, 실제로 9월 입법예고 등 제도의 본격 손질에 들어갔다. 아울러 9월12일에 1~8월까지의 담배 판매의 평균 104% 이상을 반출, 반입할 수 없는 매점매석고시를 발표했다.
다만 외국계 담배 제조사들은 정부가 매점매석고시가 발표되기 이전에 담뱃세 인상을 예상하고 담배를 많이 생산해 제조장 밖으로 반출하는 여러 방법을 통해 담배를 빼돌려 차익을 추구했다.
이 석 달간의 간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제도를 사전적으로 마련해 거둬들인 선진국 사례가 있기는 하다. 미국은 지난 2009년 담배에 대한 소비세를 인상하면서 담뱃세 인상차액을 4개월 내에 신고·납부하도록 했고, 일본은 담뱃세를 올릴 때마다 관련 법률 부칙에 담뱃세 인상 전 일정수량 이상의 담배 재고를 보유한 자에게 인상차액을 신고·납부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예상되는 차익에 대해 제도를 미리 손질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 여러 기관이 관련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의 법안 제출 형식으로 외국 사례를 참조, 미리 제도 정비를 했으면 충분히 거둬들일 수 있는 경우였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기관 내부 사정으로 절차를 망친 경우, 국민에게 세금 부담을 지울 수 없다는 심판 사례도 존재한다. 조세심판원은 2016년 12월7일 한 법인이 기한 내 서류를 제출, 신청을 했음에도 행정기관 내부 사정으로 일처리를 하지 못해 결국 '기한을 지났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준 경우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결정했다(조심2016지0549).
법인에서 애초 신청한 날 기준으로 검토할 때 이 신청 내용의 처리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필요한 서류를 갖춰 정상적으로 등록을 신청한 후 법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정기관의 내부절차로 등록일을 경과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서 사안의 책임을 당국에서 져야 한다고 본 경우다.
토지의 사용에 법령상 장애가 있어서 세금 부과 여부에 문제가 생긴 때 책임의 소재를 과세당국과 법인 중 어디로 볼 것인지를 다툰 데 대해 대법원이 다룬 경우도 있다.
대법원은 "법령상의 장애사유가 충분히 해소될 가능성이 있었고 실제 그 해소를 위하여 노력하여 이를 해소하였는데도 예측하지 못한 전혀 다른 사유로 그 고유업무에 사용하지 못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법령상의 장애사유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대법원 2011두1948)"고 지적했다.
이 사안에서 다툼이 된 사안의 기간은 '취득 후 1년 내'였다.
◆절차 마련 등에 소홀한 관행, 이번 기회 고칠 필요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내부적인 사정으로 행정기관에서 일을 망치고 그것을 이유로 억울하게 과세상 불이익을 준다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울러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 이는 장애사유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에 대응해 일처리를 해 세금상 유리한 조치를 밟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나중에 이를 이유로 다툴 수 없다. 대체로 1년이면 충분한 것으로 판례는 본다.
결국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제도적 맹점을 이용해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 외국계 담배회사들의 문제에는 '꼼수 비판'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추징 등을 하기 어렵다고 할 여지가 크다.
미세한 부분까지 모두 고려한 시뮬레이션과 제도 정비 없이 덜컥 일을 벌이고 나중에 고압적으로 세금 부과 등을 하는 행정 패턴에 외국계 회사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것.
결론이 어떻게 지어지든, 우리나라 제도 운영 수준의 민낯을 드러내는 불편한 사례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