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에 대한 안전관리에 관한 법(전안법)이 탄핵 정국 와중에서도 정치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민생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
정부에서 이 법의 일부 문제조항 시행을 1년간 유예하기로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전안법 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고, 국민의당은 8일 동대문 밀리오레를 찾아 전안법 대상 중소상공인 애로 사항을 청취했다.
시행을 유예한 기간 내에 문제점을 보완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수순은 일단 시작된 것 같다. 하지만 애초 왜 이런 문제적 규제가 등장을 하게 된 것인지 구상과 필터링 과정의 문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새롭게 규제를 도입하는 취지는 좋았다. 공산품 및 전기제품에만 적용되던 전기안전관리법과 의류나 가방 등에 적용했던 생활용품안전관리법 구조를 합쳐, 그간 전기제품에만 적용하던 KC인증을 생활용품으로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생활용품에도 안전관리가 한층 강화된다는 진단이었다. 간접적으로는, 옥시 사태를 타산지석 삼아 제대로 안전 그물망을 짜보자는 사회적 필요성 역시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런 아이디어를 시행하는 데 따르는 사회적 비용과 부담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점, 이에 따라 중소상공인이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점은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의류나 잡화 등 신체에 접촉하는 대부분의 제품에 KC인증마크를 달기 위해선 제품 개당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비판이 당장 터졌다.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니, 자체 인증 역량이 없는 영세업체와 소상공인은 막대한 비용을 부담할 우려가 목전에 닥치자 발을 굴렀다.
정동희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행 유예기간 중에 전안법에 대해 제로베이스에서 점검을 다시 할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은 개탄스럽다.
정 원장은 "상공인들이 필요할 때마다 인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지, (정부 차원에서) 소상공인에 대한 서포트를 어느 정도 할지, 이런 제도 자체가 실효성이 없어서 이렇게 시행을 안 해도 안전 문제가 없는지를 시행유예 기간 중에 제로베이스에서 점검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국민 입장은 자세히 살피지 않고 실효성 자체가 아리송한, 그러면서도 무겁기는 짝이 없는 족쇄부터 덜컥 만들었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문제는 이런 혼란 상황이 제조물책임법(PL법) 개정 움직임과 맞물려 재연될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살핀 전안법의 규정, 그리고 그 개정을 추진한 이유 못지 않게 제조물책임법 개정 논의의 그것 역시 아름답다.
우선 제조물책임법의 기본 틀부터 잠시 보자. 물품을 제조하거나 가공한 자에게 해당 물품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생명·신체의 손상 또는 재산상의 손해에 무과실책임의 손해배상의무를 지우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다. 손해의 입증에 대한 기본틀을 바꿔 소비자 친화적으로 새로운 틀을 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정 움직임 역시 소비자가 입은 손해액보다 훨씬 큰 금액을 기업이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미국적인 소송'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려 문제적 기업을 아예 퇴출시켜 버리는 제도'를 목표 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지난해 11월 언론이 소개하면서 사람들을 당혹시킨 한 설문조사 내용을 짚을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중소기업 제조물책임 대응실태 및 의견조사' 결과, 제조물책임 강화 법안 도입에 대해 조사업체의 19.4%가 '전혀 모른다'고 했다. 43.2%는 '들어본 적은 있으나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이쯤 되면 왜 매번 제도를 덜컥 만들고 수정한 다음 이후에 불만이 폭발한 뒤에야 새롭게 손질을 하는 것이 반복되는지 궁금하다.
물론 일정한 정책 방향을 위해 반발을 무릅쓰고 소신을 밀어붙이는 입안자(의원 발의안인 경우 정당 소속·정부안으로 입법되는 경우 당국자)의 고심이 따를 게 자명하다. 그러나 다양한 공청회와 여론 수렴, 대안 연구 등에 쓸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면 적어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상황은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