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탈리아 토스카나에는 오르치아(orcia) 강 계곡을 따라 작은 마을들이 아주 오랫동안 있어왔다.
발도르챠(val d’orcia)라 불리는 이 일대를 도보 여행하며 만난 이 곳 사람들은 낯선 여행객인 나를 오래된 친구처럼 대했다. 수백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그들의 집과 태고의 모습처럼 꾸미지 않은 그곳 풍광처럼.
몬탈치노 마을의 민박집 주인 마리오와 풀비아 부부는 숙박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버스와 도보로는 가기 어려운 샌안티모 사원에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내게 제안을 했다. 미안한 마음에 망설였으나, 친구를 위한 우리의 기쁨을 거두지 말라니 어찌 사양할 수 있었겠는가.
8세기경 순례자들을 위해 세워진 샌안티모 사원은 도시의 거대한 성당들에 비해 소박하지만 작은 창들을 통해 비치는 햇살의 경건함이 하늘과 닿을 만큼 넘치는 곳이었다.
기도 중, 성스러운 공간을 가르며 바흐를 연주하는 트럼펫 소리가 울렸다. 연주자에게 감사를 했더니, 친구의 행복을 위한 선물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로마시대 온천이 아직 남아있는 반뇨비노니 마을로 이동하는 날 마리오와 풀비아 부부는 아예 민박집 문을 닫아걸고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헤어지며 눈물을 글썽였던 이 친구들과 나누었던 따뜻한 포옹은 아직도 뭉클하다.
반뇨비노니에서는 녹색 물길이 힘차게 흐르는 오르치아 강 목조 다리 끝 작은 호텔 주인 실비노가 매일 아침 빵 굽는 냄새를 사방에 풍기며 꽃으로 장식한 테이블 위로 성찬을 차렸다. 그의 특별한 대접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나는 주변 식당들을 두고 매일 저녁 식사를 그의 호텔에서 했다.
발도르챠의 또 다른 마을 피엔차로 가는 날, 실비노에게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느냐 물었더니, 아예 피엔차까지 운전을 해주겠단다. 극구 사양했지만, 친구를 위한 당연한 일이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피엔차의 산책 길에는 이 곳 시인 마리오 루찌의 기념비가 있다. 그는 이런 글을 썼다.
"이곳에서는 우리의 침울한 마음이 인간애와 삶과 아름다움이라는 우주의 관대함으로 바뀐다."
코칭을 하다 보면 매우 뛰어난 업무 성과와 완벽에 가까운 자기 관리를 바탕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임원으로 승진하는 리더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들은 의외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얼마 전 임원으로 승진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 고객이 있었다. 코칭 초반에 자신이 변화해야 될 부분들에 대한 주변인들의 피드백을 보여줬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거의 완벽한 업무추진을 자부하는 그에게,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가 어렵고, 배려가 없는 높은 기대치로 상대를 지치게 하고, 따라서 동기부여가 안 된다는 내용은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팀원들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그들은 그와 함께 일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코칭이 진행되는 동안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들을 점점 돌아보게 됐다.
성과에만 치중한 그의 업무 방식 때문에 주변인들이 자신을 너무 사무적이고, 성의 없고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는 존재로 느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도 표현을 하지 않아 오해를 산 부분이 적지 않았음을 그는 깨달았다.
주변인들과 친밀감을 쌓기 위한 그의 작은 변화들이 시작됐다. 그가 먼저 다가가서 말 걸고, 함께 밥 먹고, 잘 들어주고, 개인 대화의 시간을 늘려가다 보니, 상대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느꼈으며, 그 사람이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인간애까지 생겼다고 했다.
나는 조직원들을 향한 인간애가 싹트기 시작한 그가 더 큰 리더로 쑥쑥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의 승진을 축하해줬다.
"최고의 리더십은 연민(compassion) 리더십이며, 이를 실천하는 것은 자아에서 타아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말한 구글의 명상교육가 차드 멍 탄의 말을 인용하면서.
코칭이든, 리더십이든 다 효과성 높은 공동체 삶의 추구라는 사실에 착안하면, 발도르챠에서 만난 친구들이 낯선 여행객과 나눴던 마음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유순 코치 / (현)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 / (전) 라이나생명 인사 부사장 / (전) 듀폰코리아 인사 상무 / 공저 <여성리더가 알아야 할 파워코칭> <조직의 파워를 키워주는 그룹코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