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적시한 압수수색 영장을 든 특별검사팀 관계자들이 3일 청와대를 방문했다.
공화국에서 흔치 않은, 대를 이어 국가원수로 선출되는 영광의 기록을 쓴 박 대통령으로서는 실로 대단한 추락이다. 탄핵소추를 당하고 영장 집행을 하러 관저 인근에 공무원들이 나타나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경호실에서 영장을 집행할 수 없다고 나서서 이 방침을 관철시켜도 사법부에서 여러 문제를 감안해도 결국 영장을 발부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는 바만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수모' 그 자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4년 3월28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 대박론'을 내놓은 바 있다. 아마 큰 대과 없이 임기를 마쳤다면, 이 정책을 실현하고 못하고를 떠나 통일의 선구적 역할을 한 대통령으로 기록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 등이 나날이 부풀어 오르고만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의미 없는 공론이 돼 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최소한의 체면과 정치사에서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확보하는 길은 드레스덴의 영광 대신 또 다른 독일 도시의 예를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1961년 독일 분단 상황에서 서독은 잘츠기터에 중앙법무기록보존소를 설치했다. 동독이 베를린장벽을 설치하면서 서독 정부는 동독 내의 각종 반민주적 행위에 대해 파악이 되는 한 모두 기록에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이 같은 기록보존소를 세웠다. 잘츠기터라는 크지 않은 도시가 통일 이후 지금도 종종 거론되는 이유가 되는 바로 그 기록보존소다.
북한의 인권 관련 기록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다루던 강좌에서, 한 헌법학 교수는 이 사례를 거론하면서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있다'는 압박만으로도 대단히 큰 억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속칭 '사회 물'을 먹고 뒤늦게 입학한 대학원생들이 주로 들었던 자리라 당일 반응은 심드렁했는데, 지금 새삼 와닿는 내용이다.
'드레스덴의 박'으로 기억될 여지는 이제 없으나, 잘츠기터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적어도 얻는 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영장 문제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있지 않은가.
검찰 조사의 공정성에 대해 비판하고 특검 조사에 불응하면서 기자회견이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만 억울함을 피력하는 방식에 대해 평가가 그다지 후하지 않다. 지금이 '의연함'이나 '거국적 판단'으로 기억될, 스스로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