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걸은 '미국 우선주의'에 부응해 정부가 국내 에너지업계에 미국산 셰일가스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연일 높아지는 보호무역 압박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내려진 조치지만, 가뜩이나 공급량이 남아도는 터라 민간 업체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셰일가스 수입? 이미 5년 전 정해진 계약
지난달 26일 기획재정부는 '2017년 대외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에는 미국산 셰일가스를 올해부터 연간 280만톤 규모로 도입하는 등 대미 원자재 교역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가 주문한 물량은 지난 2012년 한국가스공사가 미국 루이지애나의 사빈패스 프로젝트와 올해 하반기부터 연 280만톤의 셰일가스를 20년 동안 장기 공급받기로 체결한 계약 물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가스공사 측은 "해당 계약은 2010년 초 셰일가스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때 체결한 장기 도입계약으로 현 트럼프 정부의 정책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고, "천연가스는 대부분 5년 이상의 장기계약이다 보니 스팟(현물)이 아니고서야 바로 도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SK E&S와 GS EPS 등 민간 가스업체가 오는 2019년부터 20년간 각각 매년 220만톤·60만톤의 셰일가스를 수입할 예정이지만, 이 역시 이미 오래 전 계약한 내용이다.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셰일가스가 일반 천연가스보다 싸다고는 하지만 운송료를 포함하면 거의 비슷한 수준에, 오히려 운송되는 시간이 더 길어지니 딱히 장점이라고 볼 수 없다"며 "수입처 다변화가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셰일가스, 중동 '독소조항' 대응책
실제로 연간 한국가스공사의 판매물량은 △2015년 3145만6000톤 △2014년 3517만3000톤 △2013년 3867만5000톤 △2012년 3654만7000톤 △2011년 3357만1000톤이다.
지난해 물량은 아직 공시되지 않았으나,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에서 도입된 물량만 3184만7000톤으로 전년과 비슷한 규모로 추정된다. 이번에 미국에서 수입되는 셰일가스의 수량은 겨울 한 달 국내 소비량(지난해 12월 기준 382만 톤)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가스공사는 세계에서 가장 LNG를 많이 수입하는 곳이지만 계약 현장에서는 '을'이나 다름없다. 일방적 가스 소비국인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입을 위해 웃돈을 얹어줘야 하는 '아시아 프리미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하역 장소를 특정 국가로 한정해 LNG가 남아 돌아도 타국에 되팔 수 없는 도착지 제한 규정이 있다. 또 수입국에서 물량을 가져가지 않아도 무조건 정해진 금액을 생산국에 지불해야 하는 의무 인수 등의 독소조항이 존재한다.
이번 미국 셰일가스 수입을 통해 현재 30%가 넘는 중동 의존도를 줄이고, 더 나아가 이런 불공정한 조항들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한국가스공사의 향후 계획이다.
◆민간업계 "가뜩이나 공급 넘쳐…정부 보조금 고려해야"
셰일가스란 모래와 진흙 등이 단단히 굳어진 퇴적암 지층인 셰일층에 매장돼 있는 천연가스로, 일반적으로 시추되는 천연가스보다 훨씬 깊은 곳에 넓게 퍼져 있어 시추하는 작업이 매우 까다롭다. 미국, 캐나다부터 러시아, 중국, 중동까지 넓게 분포돼 있으나 경제성이 낮고 환경오염의 문제가 제기돼 오랫동안 채굴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기술을 기반으로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 지난해 에너지원 수출금지 규제를 40년 만에 철폐한 데 이어 트럼프 신정부가 본격적으로 셰일가스 수출을 통해 대외 무역에서 적자를 줄이려고 시도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GS칼텍스가 미국에서 셰일오일 200만배럴을 수입하는 등 도입을 시도했으나 장기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에 가스업계는 향후 셰일가스 수입이 더욱 확대될까 우려하고 있다. 사용처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수입량을 늘리라는 압박이 예상된다는 것.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도시가스를 제외하면 민간업체들이 수입하는 천연가스는 LNG 발전소를 가동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데, 최근 전력수급 상황이 좋아지고 가성비가 좋은 석탄화력발전소 등에 밀리면서 가동률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석탄에 비해 가격도 비싼데 심지어 관세까지 물어야 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셰일가스 수입량을 늘려야 한다면 운송비나 세금 등 보조금 혜택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