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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오키나와의 거대 벤토 '키로벤'

"벤토 알면 문화 보이고 문화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기자  2017.01.24 10: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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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역사와 문화가 본토와 크게 다르고 지리적으로 일본열도의 최남단과 최서단 섬을 포함하는 '오키나와(沖縄)'현. 1879년 '메이지(明治)' 정부에 의해 일본에 편입되기 전까지 450년간 '류큐(琉球)왕국'으로 존재하던 지역이다.

363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구성된 오키나와현은 전체면적이 제주도의 1.2배 정도고 인구는 144만명에 이른다. 이 지역의 식문화는 아열대 기후와 섬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의 영향을 받아 튀기거나 볶는 음식이 많고 양념이 대체적으로 진한 편이다. 

또 햄버거나 파스타 같은 서양풍 소재에 닭이나 돼지고기를 전통방식으로 조리하는 향토요리가 결합한 패턴이 많다. 

오키나와의 벤토는 일본 내 다른 지역과 달리 밥 위로 기름진 요리가 풍성하게 올라간다. 마치 우리나라 재래시장의 인심 넉넉한 좌판 비빔밥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인들이 소식(小食)한다는 고정관념을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청 소재지가 있는 '나하(那覇)'의 항구도시 토마리(泊)라는 곳에 가면 볼륨 끝판 왕 '키로벤'이라 부르는 벤토가 있다. 

위 사진처럼 바닥에 깔린 파스타 위로 돈카츠와 치킨이 빈틈없이 채워지고 토핑 3종(돈가스소스·마요네즈·체다치즈)​이 사정없이 뿌려진다. 마무리로 파슬리 가루가 첨가된다. 여기에 두 공기는 족히 될 밥 400g이 별도 용기에 담겨 나온다.

반찬과 밥을 함께 저울에 올리면 가볍게 1000g이 넘는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키로벤이며 가격은 5년째 단돈 500엔이다. 닭 '카라아게(튀김)'에 새콤한 소스가 일품인 '치킨난반'이나 '데미 햄버거' 벤토도 인기품목이고 가격은 동일하다.

2012년 4월2일 이 벤토가 처음 출시되자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모았고 지금은 새로운 장르로 인정을 받는 추세다. 오키나와를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다이어트 걱정 따윈 잠시 내려놓고 이 벤토의 '칸쇼쿠(完食, 모두 비움)'에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맛도 수준급이다.

한 양하는 분이라면 팩당 100엔하는 밥을 추가해 먹는 것도 괜찮다. 그래도 반찬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일본의 벤토는 20C 초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에 진출한 후 최근에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프랑스에는 육체노동자들이 빵을 밀폐용기에 담아 휴대하는 '가멜(Gamelle)'이라는 도시락이 있지만, 화이트칼라층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들은 점심식사에도 우아한 코스요리를 즐기며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 하지만 2007년 리만쇼크로 불경기가 심화되고 점심 휴게시간이 대폭 줄어들자 애니메이션을 통해 알게 된 일본식 벤토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3월 리용역에서 '에키벤(역도시락)' 이벤트가 있었는데 예상을 뛰어 넘는 호응으로 행사기간이 연장되기도 했다. 이탈리아도 일본의 에키벤을 본떠 대형 역에서 와인이 딸린 벤토를 팔고 있고 고속열차 '이타로'는 '이타로 박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유럽 여러 나라의 가정에도 '캬라벤' 등을 모델로 하는 다양한 벤토를 개발 중이다. 이 밖에 미국·호주·뉴질랜드는 샌드위치와 과일·초코바 등을 담은 런치 박스가 대중에 통용된다. 특히 하와이에서는 '플레이트 런치(접시 점심)'를 일본식 벤토에 담아 판매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하와이 영어로 벤토는 '1인분 식사를 휴대하도록 채운 것'이다. 플레이트 런치는 19세기 말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하는 일본을 포함한 각국 노동자들이 벤토의 반찬을 서로 나누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