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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칼럼] 박스아웃: 자신의 틀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고경일 코치 기자  2017.01.23 08: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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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이메일 계정을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 초기부터 지속하여 사용해온 계정을 변경한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은행 재직 시에 사용했던 메일계정이 '보안상의 이유로 퇴직자들에게는 2월28일 이후에는 폐쇄된다'는 공지가 떴다. 그것도 감독기관의 권고사항이라고 한다. 괜히 마음이 허전해진다.

퇴직과 동시에 메일을 변경하던 친구들은 한결같이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를 강조했었다. 그렇지만, 직장을 그만둔 이후에도 메일을 계속 사용했던 것은 인연까지 정리되는 것 같아서였다. 물론 변경하지 않아 지속되는 편리함이 더 큰 이유였던지도 모르겠다.

메일계정의 정리에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꼬박 이틀이 걸렸다. 오랫동안 주고받은 내용을 보관하거나 삭제하기 위한 짧은 머뭇거림이 필요했다.

주소록은 컴퓨터에 복사를 하였지만 주소 변경내용을 알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메일을 보낼 때마다 수정하기로 작정하였다. 메일을 주고받는 일상이다 보니 많은 메일이 남아있었다. '제때 삭제하거나 자료를 저장했다면 그렇지 않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일어났다.

오래된 메일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였다. 먼저, 당시의 관심사항이 새삼 되돌아보아졌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결정된 내용을 볼 때는 '그때 그러기를 잘했다'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지나고 보니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었는데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한 내용들을 보며 욕심을 앞세운 민낯을 보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둘째, 미루다가 저장하지 못한 중요한 파일들을 다운받게 되었다. 마치 추수를 끝낸 들녘에서 이삭을 줍는 것과 같이 알찬 내용의 자료들을 저장할 수 있었다.

셋째, 옮길 것인가? 삭제할 것인가? 의사결정의 기준을 정하게 되었다. 현재 기준으로 향후 필요한 내용여부를 판단하여 삭제여부를 결정하였다. 오래된 집이 사용하지 않은 짐들로 가득한 것과 같이 즉시 삭제해도 될 내용들로 가득하였다. 마지막으로, 잊고 있었던 소중한 연락처를 발견하게 되었다.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인연으로 주고받은 내용을 확인하며 콧등이 찡해졌다. 반가움의 메일을 보냈다. 이미 고인이 된 분의 메일을 보면서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나아가 타임머신을 타고 한참동안 그분과의 추억에 잠겨 있었다.

이메일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이 먼저였지만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과정이었지만 정리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다.

'박스아웃(box out)'이란 농구에서는 상대 팀 선수들이 리바운드하기 어렵도록 여러 명이 미리 유리한 포지션을 잡는 것을 말하지만, 코칭에서는 스스로 갇혀진 틀 안에서 벗어나 자신을 대상으로서 인식하는 행위이다. 현실에 매인 틀, 자신을 가둬두는 제한적 사고의 틀, 습관적 행동의 틀 등에서 나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편하게 사용해오던 이메일을 변경하며 스스로 느꼈던 감정과 인식들이 박스아웃의 효과가 아닐까?

지난해 12월 모임들은 다분히 송년회의 성격이었지만 화제는 단연 현 시국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음식 맛 떨어지니 그 이야기 그만하자"는 진행자의 간섭으로 관심을 행사에 집중시켜야 할 정도로 대화는 뜨거웠다.

한 모임을 마친 후에 중소기업 CEO와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요즘 무척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TV를 통해 접하는 뉴스 때문에 기업하는 사람이 힘들어졌다"는 것과 "사회에 대한 울화로 인해 직원과의 관계 등 대인관계도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코칭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한동안 뉴스를 보지 말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얻어졌다. 그는 실행과제로 경제 분야 이외의 뉴스를 3주 동안 보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지난 주말에 만났을 때 "덕분에 화내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감사의 말을 들었다. 뉴스를 보지 않는 기간에 주변 환경 특히 정치에 과도하게 민감하였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러자 주위에 대하여 마구 화내는 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CEO에게 권한 한마디가 박스아웃 효과로 나타난 것이 상대의 주도성을 깨우치는 이른 바 코칭 대화의 매력이다. 주도성은 마치 육체의 근육과도 같아서 사용할수록 발달한다고 하니, 유의할 일이다.


고경일 코치 /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 / (전) IBK기업은행 기업금융지점장 / 저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부하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