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50대 중반을 향해가며, 주위에서 직장을 나오는 남자 동기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농담 삼아 퇴임하는 동기들에게 들려주는 얘기가 하나 있는데, 오래 전 대기업에서 퇴임한 임원 분의 코칭 주제이다.
그 퇴임한 임원 분은 은퇴 후에 그간 바빠서 보지 못했던 집안을 둘러보니, 장롱에는 옷이 넘쳐나고 냉장고에는 음식이 넘쳐 나더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그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인 부인은 아무리 얘기해도 고쳐지지가 않는다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서 그럼 달리 어떻게 하면 될까요 했더니, 부인이 쇼핑을 간다고 하면 무조건 따라가서 새 옷이나 음식 재료를 못 사도록 하겠다고 해서 웃으며 코칭을 시작한 적이 있다.
오랜 기간 회사에서 생활해 오던 회사원은 몇 가지 몸에 밴 훈련이 있는데, 첫째는 누군가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함께 일하는 훈련, 둘째는 목표(더욱 잘 되게 하든, 문제를 해결하든)를 향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행동하려는 훈련, 그리고 셋째는 상사와 부하직원이 있는 계층구조에 적합한 대화방식의 훈련이다.
조직생활에는 아주 필요한 습관들이나, 조직생활을 벗어났음에도 자신의 눈에 보이는 집 식구들에게 훈련 받았던 옛 습관을 그대로 사용하며 열정을 불태우는 경우가 있다.
퇴임 이후에 눈앞에 보이는 유일한 동료인 부인과 함께 눈에 보이는 목표(장롱에 넘치는 옷이건, 냉장고에서 유효기간을 넘긴 것으로 보이는 음식 자료를 해결하려는 것이건)를 해결하려는 의욕이 넘칠 수 있다. 더구나 임원을 오래 한 분은 부하직원에게 하듯 아내에게(자녀들은 밖에서 바쁘다 보니, 불쌍하게도 집이라는 조직에 유일하게 남아 부하직원의 역할을 떠맡게 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는 확신에 찬 문제해결 방식의 대화법을 쓰다 보면, 멀지 않아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날이 임박할 것이다.
아내의 입장은 이렇다. 오랜 기간 자신이 관리하던 영역이었던 안방과 주방에 퇴임해서 시간 남아도는 남편이 침입해서 장롱 안에 옷을 들춰낸다거나 냉장고안에 식 재료를 들춰내며 잔소리를 해댄다고 보는 것이다.
자신의 몸이 아파 오랜 시간 병원 신세를 질 때 마음을 다해서 살뜰히 보살펴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과 함께 잘 살고 있는 친구도, 주방은 내 영역이니 절대 남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경우는 자신이 회사에서 일하느라 그 동안 아내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이제 퇴임도 했으니 아내와 충분히 놀아주겠다는 기치를 들고 열심히 봉사를 했는데, 3개월쯤 지나니까 아내가 '너 혼자 놀면 안 되겠니'라고 묻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당신이 퇴임을 앞두고 있거나 퇴임을 했다면, 아내에게는 그간 그녀만의 생활방식이 그리고 그녀의 시간을 써야 하는 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이해하고 공간을 내어주자. 그리고 아내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도 새롭게 관계 맺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퇴임 이후에 자동차 대신 주로 타게 되는 지하철에서, 과거 회사에서는 당신을 어려워하며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여직원을 생각나게 하는 20대 아가씨가 하이힐로 발을 밟고도 쓰윽 한번 쳐다보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지나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커리어에서의 퇴임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잠시 두 어깨를 내려뜨리고 크게 숨을 내쉬면 마음이 편해지며 당신 가까이 있는 주위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던 그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분에 대한 코칭에서는 아래와 같은 관점 전환 질문들이 주효했었다.
▶고객님이 아내에게 침범 받지 않고 지키고 싶은 자신의 영역을 세 가지만 적어 보신다면?
▶그 영역을 아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로 넘나든다면 어떤 느낌이 드실까요?
▶맘대로 한다면, 그럴 때마다 아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 이 퇴임 임원에 대한 코칭은 과연 성공했을까?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선현주 코치 / (현)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 / 썬랩(주) 대표 / (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산학협력실장·겸임교수 / 저서 <취업 3년 전> / 공저 <그룹코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