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별 볼 일 없는 상태를 '끈 떨어진 연 신세'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조향장치인 얼레와 소통할 길을 잃은 연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 결국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을 이렇게 빗댄 조상들의 익살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사진은 서울 고척교에서 멀지 않은 한 건물 주변을 지나다 찍은 것인데요. 저렇게 펄럭이면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현수막으로써의 기능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서 끈을 바로잡아서 제대로 복구를 하든, 아니면 이제 끊어서 현수막을 내리든 해야 할 지경인데요. 그래도 바람에 흩날리면서 몸에 수놓은 글자들을 조금이라도 더 행인들에게 노출해 보려고 춤을 추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한편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는 식으로 정신줄을 놓은 모습이 아니라 "그래도 난 아직 현수막이다"를 외치는 듯한 모습입니다.
지난해 10월 울릉도 성인봉 산자락에서 숨진 고(故) 조영찬 울릉경비대장의 사망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공무원연금공단 결정이 연말에 나왔다고 하는데요. 경찰 및 유가족의 전언을 종합하면, 공단 측은 조 대장 사망과 관련, 주말이고 이전에 신청한 초과근무 시간의 이후 시간대 사고라는 이유로 순직 인정 요청을 부결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상한 사고를 공무상 부상이라고 우겨 유공자 등록을 하는 공무원들도 없지 않았고, 순직으로 인정하기 모호한 건을 우겨서 인정받으려는 시도나 그렇게 판정해 준 바가 과거 없지 않았다는 불만이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규정대로 엄격하게 처리해야 하는 공단의 판단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사고 당일에도 초과 근무시간 이후 전화로 부대원들의 업무보고가 그에게 계속 들어갔다는 점을 안타깝게 보고 이런 점에서 근무의 사실상 연장, 즉 그런 상태에서 사고로 죽은 건 순직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고인이 부임 후 매일 관내 지형 파악을 위해 곳곳을 둘러보다 사고를 당했다는 업무 연관성도 사안을 듣는 이들을 더 슬프게 하는데요.
결국 근무시간인지 아닌지로 순직 기준을 판단하는 공단의 결정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진 불합리한 것이라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순직 인정 기준에 대한 재검토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국록 받아먹으면서 성실히 일하지 않고 노는 공무원도 많지만, 초과수당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일이 있으니 더 한다는 생각으로 고생하는 이들도 공직사회에 적지 않다는 점을 각 부처 취재를 조금이라도 해 본 기자들의 경우 공감하는데요.
이미 객관적인 쓰임새를 다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마지막 임무를 다하고 있는 현수막을 보면서, "이미 신청해 놓은 초과근무 시간은 끝났지만…그래도 난 공무원이다"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고인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