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벤또 '히노마루(日の丸)'는 흰 밥 한가운데 붉은색 '우메보시(매실장아찌)'가 올라간 모습이 일본 국기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차 대전 막바지 일본은 국민 총동원령의 일환으로 이 벤토를 권장했다. 철도역에서도 이것만을 팔도록 지침을 내렸다.
쌀이 귀했던 그 당시 히노마루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것은 한국이나 대만 같은 식민지를 통해 쌀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부는 이 벤토를 통해 애국심을 부추기고 보급품 조달비용을 마련한다. 실제로 육군성에서는 매월 7일을 '히노마루데이'로 정하고, 이 벤토를 7전에 팔아 전비에 충당했다.
이후 1995년 '한신(阪神)대지진' 때에도 이 '애국 벤토'가 등장한다. 피해가 극심했던 코베(神戸)현 니시노미야(西宮)의 시장과 전 직원이 하루 두 번 히노마루로 끼니를 때우며 절감된 예산을 복구비용에 보탰다고 전해진다.
히노마루는 쌀과 우메보시만으로 구성돼 단백질과 비타민이 부족하고 칼로리도 낮은 편지만, 의외로 인체에 유용한 면이 많다. 흰 밥에 우메보시가 결합하면 산과 알카리 균형이 잡혀 뱃속이 편안하고 칼로리가 에너지로 쉽게 전환돼 노동에 이상적인 식사가 된다는 것이다.
또 우메보시에는 강력한 살균과 해독기능이 있어 밥의 부패를 막아주고 피로회복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상시에는 시중에서 히노마루를 보기 어렵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라도 맨 밥과 다름없는 이 벤토를 먹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바라기현(茨城県)' '미토(三戸)'역의 히노마루를 만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전국 최고의 쌀로 만든다는 이 벤토, 밥 위에 우메보시와 함께 다시마조림 같은 것이 올라간다. '히노마루에 웬 반찬?'하겠지만, 밥을 한 젓가락 뜨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밥 아래 쇠고기 조림과 계란말이가 숨겨졌고 그 아래로 또 다시 밥이 깔린다.
벤토를 엎으면 쌀밥 샌드위치가 되는 구조인데 조림은 바로 이 샌드위치의 반찬이다. 이름하여 스페셜 히노마루, 가격은 760엔, 쇠고기 대신 닭고기 소보로가 들어가는 보통은 540엔이다.
일본은 중학교까지 학교에서 급식이 제공된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일부 특수학교를 제외하고 급식이 제공되지 않아 각자 벤토를 준비해 등교한다. 개인의 식성이나 체질을 고려하면 벤토 이상 좋은 식사도 없을 것이다.
감수성 민감한 고교시절을 벤토와 함께 보내는 일본인들이 벤토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할 결과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벤토가 국제적 위상을 갖게 된 데에는 이러한 식문화와 함께 국력의 뒷받침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밥을 짓는 쌀이 자포니카 계통이라는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일본·한국·대만·중국(동북지방)에서 재배되는 이 쌀은 밥이 식어도 식감이 오래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
1900년대 초 일본 제국주의가 팽창하며 한국과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일본 벤토의 영향을 받는다.
그 당시 중국은 식은 밥을 먹는 습관이 없어 벤토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며 상하이(上海) 등 대도시의 편의점을 중심으로 차가운 벤토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는 문화가 보급되고 있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