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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자살보험금 책임 미루는 당국·보험사…잊힌 소비자

김수경 기자 기자  2017.01.17 15: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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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해 얽히고 설켰던 자살보험금이란 매듭이 드디어 풀릴 줄 알았건만, 올해까지 꽁꽁 묶인 채다. 

이번 사태를 이렇게까지 크게 키워온 당국과 보험사들은 천천히 제대로 매듭을 풀기는커녕 무작정 날카로운 칼로 꼬인 매듭을 자르려는 모습도 보인다.

자살보험금의 시작은 이렇다. 2001년 동아생명(現 KDB생명)이 일본 생명보험약관을 번역할 당시 '가입 2년 후에는 자살 시에도 특약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을 작성했고 여러 보험사가 이를 그대로 옮겨 상품을 출시했다. 이후 보험사들은 '자살을 재해로 볼 수 없다'며 2010년이 돼서야 이 문구를 없앴다.

지난해 2월 당시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조사한 결과 자살 관련 미지급 건 가운데 소멸시효가 지난 건은 2314건(78%), 2003억원(81%)에 달했다. 퍼센티지만 봐도 자살보험금 중 대부분이 소멸시효가 지나 많은 이들이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 중 보험금에 소멸시효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계속된 금감원의 압박에 결국 보험사들은 꼬리를 내리고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다시 문제를 일으킨 건 '삼성·교보·한화생명' 생명보험사 톱3으로 불리는 이들 대형사다.

우선 교보생명과 한화생명은 2011년 이후 청구 건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소명서를 제출하면서 '꼼수' 논란이 일었다.

두 보험사가 지급 제한선을 2011년 1월24일 이후로 둔 것은 금융감독원이 지적한 '기초서류(약관) 준수 위반' 관련 규정이 이 당시 보험업법에 추가됐기 때문. 이렇게 되면 두 보험사는 전체 자살보험금의 20%도 안 되는 돈만 지급하면 된다.

삼성생명은 두 보험사와 다른 지급 방식을 택했다. 지난 2011년 1월24일부터 2012년 9월5일 사이의 미지급 보험금은 '자살예방사업'에 사용, 2012년 9월6일부터 2014년 9월5일까지의 미지급 보험금은 고객에게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금감원이 자살보험금 지급을 권고한 시점이 2014년 9월5일인 까닭이다. 소멸시효가 2년인 점을 감안하면 2012년 9월6일부터 2014년 9월5일까지의 보험금만 지급 대상이라는 주장이다. 

자칫 막연하게 이 사태를 본다면 금감원은 '소비자 편'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금감원도 자살보험금 사태를 이만큼 키운 장본인 중 하나다. 금감원은 보험 상품 신고를 진행하면서 약관을 제대로 확인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억울함을 내비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이 이 약관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만일 몰랐다고 쳐도 금감원은 2000년대 후반부터 자살보험금 문제가 대두했을 때는 무엇을 했는가. 결국 10여년 동안 방관자처럼 지내다가 이제야 소비자 편에서 슬그머니 서는 모양새다.

이렇듯 금감원, 보험사 모두 '이 사태에 자신들의 잘못은 없다'고 외치며 서로 헐뜯는 사태를 보면 정녕 소비자들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정말 소비자들을 생각했다면 금감원은 대응에 앞서 "이제서야 바로잡아 미안하다"는 사과가 있어야 했다. 보험사들도 마찬가지다. 선심 쓰듯 보험금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뒤늦게 지급해서 죄송하다"는 진심 어린 사과를 했어야 했다.
 
당시 취재 도중 자살보험금 미지급 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죽은 이를 다 잊은 수익자에게 오히려 후폭풍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다"며 "쉽사리 돈을 주며 끝내버릴 단순한 일이 아니다"고 했었다.

저 말도 맞다. 그러나 자살보험금 사태를 질질 끌며 가슴 한편에 묻어둔 상처를 다시 들춘 것은 누구일까. 

"마누라가 죽고 이 년 반이 지났어. 그런데 이제서야 검찰수사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네……. 얼마나 더 많은 날을 마누라가 죽은 그날에 멈춰있어야 할지 감도 안 온다네."

즐겨보는 웹툰 속 등장인물이 재판을 포기하면서 외친 대사다.

이 한 마디처럼 아직 많은 이들은 기나긴 자살보험금 사태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그날에 멈춰 살고 있을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