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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삼성 넘어 재벌 정경유착 전반에 '메스'

"개별 기업 매달린다" 시각 경계…'대통령 뇌물죄' 겨냥

임혜현 기자 기자  2017.01.13 10: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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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삼성그룹이 총수 부재 상황을 맞을지 모른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돌고 있다.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을 맡은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12일 오전부터 피의자로 소환, 고강도 조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의례적인 조사가 아니라 20여 시간 동안 진행된 만큼 특검이 '돌아갈 다리를 스스로 끊어버리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당 그룹뿐만 아니라 여타 대기업들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활' '슈퍼특검'의 진면목이 드디어 드러나고 있다는 해석이 이어진다. 이 부회장을 겨냥한 특검팀은 개별 기업 하나를 털거나 터는 시늉만 하고 일을 끝낼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 섞인) 전망과 각을 세웠다.

이미 특검팀에서는 특검법을 거론하면서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도 조사 대상이라고 돼 있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번 고강도 조사는 이런 문제를 실제로 방증하는 추가 조치다.

◆'파부침주' 나선 재계 저승사자, 재벌 병폐 가장 잘 알아

특검팀 사령탑인 박영수 특별검사는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특별수사통으로 김대중정부 시절 사정비서관으로 일한 이력도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비리, 론스타 사건 등을 두루 조사해 대기업, 사실상 여타 선진국 경영문화와도 다른 한국식 재벌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아는 인물 중 하나라는 평가다.

이 부회장을 험하게 다루는 것은 법조계의 생리상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과거 부친 이건희 회장의 관련 사건을 처리한 경우들이 대개 그렇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배정' 이슈 등이 삼성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었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특히나 '삼성 비자금' 처리에서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으로부터 제공-승계된 것이라는 삼성 측 논리를 받아들여준 바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검은 흔히 말하는 정교한 사전 조사와 증거 보강만 강조하면서 시간을 끌거나 대면 조사를 최소화하는 대신, 삼성을 치면서 다른 대기업들에게도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길을 택했다.

사실상 이 같은 전개 방식은 박근혜 대통령을 뇌물죄 내지 제3자 뇌물죄로 옭아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현재 박 대통령과 최순씨를 비롯해 특검 수사대상에 오른 관련 인사를 위협할 만한 요소는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죄, 뇌물(내지 제3자 뇌물) 두 축으로 볼 수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이 쏟아져나오는 면면들은 충격적이지만, 막상 이것을 대기업 압박 내지 대기업과의 결탁으로 잇지 못하면 청와대를 정조준하거나 구속 수사 등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구석이 적지 않다.

탄핵 등의 절차도 진행 중이지만 특검 같은 수사 기능 발휘를 탄핵소추팀(국회에서 맡는다)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결국 특검 홀로 제한된 기간 내에 탄핵의 법리적 정당성을 보강해주는 지원팀 역할까지 해나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특검으로서도 어떤 '유혹'을 받기 쉽다. '일을 쉽게 하자'는 유혹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특검이 재벌 문제에 어느 정도까지만 손을 대는 제한된 조사를 하고 확실히 잡히는 것 중심으로 집중할 것으로 본 이유다.

사실 이미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의 최고 책임자로 박 대통령을 지목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삼성 합병 관련) 대통령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는 더 조사해봐야 한다"면서도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장관 시절 국민연금에 지시해 삼성 합병에 찬성토록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상태"라고 전한 바 있다.

여기에 한 국정원 직원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이 나오기 전인 2015년 6월~7월 초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에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 위원들의 성향, 합병 찬반을 둘러싼 국민연금 내부 분위기를 전달한 자료가 특검에 입수된 상황이다.

문체부-청와대-국민연금 간 의사연락과 압력이 있었다는 정황을 그리는 기본 틀은 대체로 재료 준비를 마친 상황이고, 다만 기소유지 관련 세밀하게 보강하는가만 남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특검은 '박근혜-최순실 공동지갑론'까지 캐고, 이를 위해 재벌 전체와 척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삼성發 피해자 논리' 차단, 승계 문제 이상의 부정 겨냥 

박 대통령과 최씨 간 관계를 이익을 추구하고 돕는 것으로 잘 설명해내야 최씨 및 그의 딸 정유라씨, 각종 재단 등에 대기업이 자금 출연을 한 행위를 제3자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다.

여기서 아예 최씨와 박 대통령이 경제적으로 공통체 관계라고 설명하면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특검으로서는 이것에 흥미를 느끼는 상황이다. 어렵고 지루한 작업이 되겠지만, 박정희 정권에서부터 부정한 자금을 두 집안이 공동으로 꾸려왔다는 점을 확인한다면 제3자 뇌물죄보다 더 큰 비도덕적 행위로 규정짓고 강력한 처벌을 법원에 요구할 수 있다. 초반이 어렵지만, 일정 궤도를 풀어내면 그 다음이 더 수월해지는 고난이도 문제다.

이 문제를 푸는 고리로 특검이 삼성 등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 자체도 문제가 많지만, 현재까지 뇌물 대가성 입증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대개의 법조인 패턴을 특검도 답습하면 '대기업=피해자' 논리 구조를 채택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삼성의 경영권 승계 부정 시도는 의혹으로만 남게 되고, 삼성물산 합병 등의 제반 사항도 모두 면죄부를 받게 된다.

하지만 특검이 대가성 입증까지 해결하면, 삼성 승계 시도의 문제점을 모두 지적할 수 있게 된다. 삼성에 고강도 압박을 가한 점은 다른 대기업들 역시 같이 다루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오너 일가 이익을 위해 기업 돈을 부정한 청탁에 댄 점을 모두 문제삼겠다는 것이어서, 수사에 협력하지 않으면 재벌 병폐 수사로 특검의 화력이 집중되는 불이익을 예상할 수 있다.  

일례로 이 부회장의 경우도 무작정 '법대로'를 외치기 어렵다. 위증죄 문제 등 이미 다른 족쇄가 마련돼 있어 '별건구속(다른 일로 인신구속을 해 두고 중요한 사건을 캐는 수사기법)'까지도 예상해야 한다.

재벌에게도 일반 국민 이상 편의를 봐주지 않는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것을 넘어서서, 박 대통령의 거대 비리를 밝히는 증명 도구쯤으로 다루겠다는 점을 전달한 만큼, 삼성을 위시한 수사 후보군 기업들의 부담과 자존심 상처가 상당할 전망이다.

'기선 제압'이 대체로 성공한 만큼 향후 조사에 특검이 약간이나마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보인다. 재벌이 주공격 대상이 아니지만, 사실상 재벌 병폐 전반에 대한 브리핑을 확실히 하고 임기를 끝내겠다는 특검의 아이러니컬한 일처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재계 전반이 당혹스러운 연초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