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 A씨는 해외 여행 중 심한 탈수증으로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가이드의 실수와 무성의 탓에 현지 병원비와 앰뷸런스 비용 등을 모두 여행자보험으로 처리하는 대신 한인 유학생의 차를 빌려 일을 해결했다. 중간 귀국을 위해 항공편 섭외를 요청했으나, 이번에는 잘못된 날짜를 지정해줘 많은 손해를 입었다. 귀국 후 여행사에 항의했지만, 회사에서는 일부 손해액만 협의금으로 제시했다. 이에 A씨는 한국소비자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내용을 정리해달라는 직원의 요청에 문서와 회사 관계자와의 협상 내용 음성파일 등을 보냈고, 이후 석 달 동안 지루한 과정을 겪었다. 결국 A씨는 당초 회사가 제시했던 합의금 수준에서 합의를 하기로 했다. A씨는 "여름휴가 가서 생긴 분쟁을 겨울 분위기 날 때야 마무리했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
[프라임경제] 한국소비자원(이하 소비자원)이 소비생활 향상을 도모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당초 목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원은 공정거래위원회 산하기관으로 소비자 권익 증진의 최일선을 맡고 있는 전문기관이다. 그러나 소비자원은 소비자원대로 업무 부담으로 신음함에도 막상 처리 속도나 내용에 대해서는 A씨 사례처럼 만족도가 높지 않다는 불만을 사고 있다.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고, 제대로 처리가 된 것인지 확인도 어려운 데다 최종 결정과 관련해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된 터다. A씨 사례를 보면, 처음 서류를 접수한 이후 20일가량 지체된 뒤 업무 처리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소비자원 홍보팀 관계자는 "최초 접수통보서 기준으로 7일 이내 기업 등 피제소 당사자로부터 답변서를 받게 돼 있다"면서도 "강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면 조사나 전화로 진행하면 경과라든지 이런 건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에게 알리고 있다"고 절차를 설명했다.
사실 억울한 소비자가 소비자원을 찾아도 일 처리가 지연돼 별 도움이 안된다는 불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국정감사에 앞서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소비자분쟁조정사건 처리 현황' 분석 결과, 소비자기본법상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30일로 분쟁조정 기간이 규정됐음에도 소비자원의 최근 5년간 분쟁처리 기간은 법정 기간의 3배 이상인 100일을 훌쩍 넘겼다.
물론 소비자원이 게을러서 일을 느리게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5년간 상임위원 1인당 처리건수가 연평균 약 1400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중한 업무 때문에 규정된 기간을 준수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하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요소는 바로 강제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A씨 사례처럼 애초 처음 답변서를 내는 단계부터 소비자원 담당자에게 혹은 소비자에게 '물을 먹이는' 패턴을 보인다는 게 정설처럼 통한다.
강제로 불러 조사를 하거나 자료를 요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처리 결과가 나와도 기업에서 인정하지 않고 재판으로 가자며 버티면 헛수고를 한 셈이 된다.
사건 자체가 원만한 타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비자원을 상대하는 기업의 기본 행태가 낚시꾼이 물고기와 씨름하듯 힘을 빼는 것이어서 소비자의 만족도가 애초 높을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소비자원에서 조사 및 처리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만이 있다면 소비자원 내 조정 절차(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를 밟을 수도 있다. 소비자원 내 조정위원회 절차는 법원의 화해 처리와 같은 구조를 띠는 데다 담당자들이 공신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 경륜이 반영된 내용을 내놓는다는 평가다.
그러나 막상 이 절차를 밟으려 해도 다시 강제력 문제가 남는다. 에너지를 소진한 소비자로서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법원으로 가겠다"고 할 여지가 커진다.
소비자원의 조정 절차라도 준강제력을 부여하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소비자원 직원들의 노고가 매번 사장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각종 생활경제 영역의 다양한 표준약관에 법적 효력이 있는 '중재' 조치 절차 등을 소비자원의 조정 절차에 맡기고 그 결정에 승복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상사중재원 등이 매번 재판을 통하지 않고도 분쟁 당사자들의 승복과 만족도가 우수한 전문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예를 볼 때, 소비자원의 내부 구조와 전문성을 잘 활용한다면 '소비자원을 거쳐도 어차피 법원으로 가야 한다'는 인식 개선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