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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벤토의 귀족 '쇼카도'

"벤토 알면 문화 보이고 문화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기자  2016.12.27 09:5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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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칸이 나눠진 용기 안으로 사시미(회)·튀김·조림·무침요리가 그릇에 담겨 들어가고, 그 주변에 전채·간장·장국·밥 등이 놓인다.

이 사진처럼 버라이어티 풍부한 요리가 총 동원되는 퓨전 스타일의 점보 '쇼카도(松花堂)'도 있다. 쇼카도는 일반 벤토와 달리 음식끼리 맛이나 향이 섞이지 않아 식재료의 고유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또 우아한 칠기용기는 미적인 아름다움과 고혹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외관상 반찬의 종류나 가짓수에 있어서 마쿠노우치와 유사하지만, 마쿠노우치가 무가(武家)의 전통예법에 바탕을 두는 '혼젠료리(本膳料理)'인데 비해 쇼카도는 '다도(茶道)' 모임에 차를 마시기 전 가볍게 나오는 '카이세키(懐石)'요리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양식이다. 

쇼카도라는 명칭은 에도초기 서화에 능했던 '쇼카도·쇼죠'라는 스님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쇼죠는 농가의 씨 보관함에서 힌트를 얻어 필기도구와 담배를 넣어두는 수납함을 고안했는데, 이것이 후일 일본을 대표하는 벤토 용기의 하나인 쇼카도의 모델이 된 것이다. 

지난 ​1933년 오사카(大阪)의 '유키(湯木)'라는 유명한 요리가가 한 다도가의 의뢰를 받아 다도용 벤토를 제작할 때 이 함의 이미지를 활용했고,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이를 '킷쵸젠사이(吉兆前菜)'로 소개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킷쵸'는 유키가 창시해 지금도 성업 중인 일본코스요리 전문 고급요정(料亭)의 상호다. 

쇼카도는 사찰의 다도음식 카이세키(懐石)가 시원이지만, 내용이나 격식은 '카이세키(会席)'요리에 가깝다. '懐石'과 '会席'은 발음이 같아도 요리의 성격은 크게 다르다. 

懐石가 에피타이저(전채)풍의 가벼운 요리라고 한다면, 会席는 다양한 요리가 조합되는 정식(定食)에 가깝다. 따라서 쇼카도는 '懐石풍 会席 벤토'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다도는 지금도 일본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쇼카도를 알면 일본전통 음식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일본의 음식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 단번에 이 벤토의 진가를 알기는 어렵지만, 한번 쯤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가격은 보통 3000엔 이상이다. 시중에 간혹 1000~2000엔대도 눈에 띄지만, 이것은 대부분 보급형일 가능성이 크다. 

정통 쇼카도를 맛보려면 오사카나 토쿄 등지의 킷쵸 17개 지점이나 '쿄토(京都)'부 '야하타시(八幡市)'에 있는 '쇼카도 정원·미술관'을 찾을 것을 권한다. 이곳의 쇼카도는 4000엔짜리 기본부터 7800엔 코스 벤토까지 있다. 

한편, 벤토는 기본적으로 밥과 '소자이(惣菜)'의 구성을 갖춘다. 밥 대신 햄버거나 샌드위치 같은 빵 종류나 '스시(寿司)'가 들어가기도 한다. 

소자이는 조림(煮物)·구이(焼物)·튀김(揚物)·무침(和物)·초절임(酢の物)·찜(蒸物)의 방식으로 조리하는 부식(반찬)을 말하는데, 다른 말로 '오카즈'라고도 한다. 

일본의 식품위생법에서도 소자이의 범위를 위의 여섯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우메보시(梅干し)나 단무지 같이 소금으로 절인 밑반찬은 소자이로 보지 않는다. 

소자이는 제각각 독립된 요리로 서로 붙이면 고유한 맛이 훼손될 수 있지만, 벤토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는 보통 이들 간격이 무시된다. 물론 귀족 벤토 쇼카도는 예외지만. 

벤토는 시대나 환경에 따라 새롭게 진화하고 또 변신한다. 

같은 종류의 벤토라도 지역이나 메이커에 따라 외관이 다를 수 있지만, 소자이의 구성은 대동소이하다. 

결국 벤토는 이들 여섯 가지 소자이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특성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