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올 한 해는 정부가 쌀값 조정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농업 진흥을 통한 식량 주권 확보 차원에서 공공비축미 매입과 각종 지원금 제도를 빨리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았다.
쌀은 이미 공급 과잉과 소비 감소로 만성적인 가격 하락을 겪고 있다. 더욱이 수입쌀도 들어오는 터라 안정적으로 수급 대책을 관리하고 농민 소득을 보전해 주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거 정부는 추곡 수매 제도를 가동해 시가보다 높은 가격을 확정, 이에 맞춰 쌀을 매입해 주는 방식으로 관리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한국이 들어가면서 이 같은 시장 개입 행위는 불가능하게 됐다.
이에 활용되는 제도가 공공비축미 매입 제도와 지원금 제도다. 공공비축미는 전쟁이나 재난 등에 대비해 정부가 공공필요물량을 비축한다는 취지로 쌓아두는 것이다. 이 명분으로 매년 구매하고 일정량은 소비하거나 시중에 푸는 등으로 추곡 수매 당시 1년에 한 차례 시장에 개입하던 것을 연중 내내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WTO에서도 정부의 시장 장악과 가격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제도 운영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지원금 제도는 영농 애로를 덜어주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필요에 의해 그때그때 도입돼 현재 쌀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 등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현재 10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불금의 경우 우루과이 라운드 체제와 WTO 정신에 입각, 사용이 제한된다.
현재 가격 변동에 따른 농가 피해를 방어하는 역할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변동직불금이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는 농민들을 돕는다는 취지에도 만족도가 높지 않다.
◆직불금, WTO 허용 예산 도달 목전에…공공비축미도 불만족
우선 직불금 예산을 더 이상 키워 사용하는 것도 어려운 형편이다. 내년도 예산에서 농업 보조 지원금 총 한도액은 1조4900억원에 달한다. 이 농업 보조 지원금이 WTO가 정하는 상한선에 도달한 것도 사상 처음이지만, 이를 쌀 변동직불금이 거의 다 메우고 있는 상황에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쌀 가격을 떠받치는 다른 가격 정책 보조도구를 마련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기 때문.
공공비축미 매입 역시 가격 제도 운영의 맹점으로 인해 경우에 따라 받은 지급금 중 일부를 다시 환급해야 하는 등 불편이 적지 않다.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지원 보조금을 쓴다는 지적을 면하기 위해 시장 기준 가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산지 쌀값의 소폭 반등에도 10~12월 평균가격이 정부 지정가보다 낮기 때문에, 먼저 지급받은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의 일부 반환(조곡 40㎏당 약 800원)이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불편도 불편이지만, 우선 공공비축미 매입량 자체를 전년도 배정량 기준으로만 결정한다는 점 때문에 생산면적 등 변동 사유를 탄력적으로 모두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현재 이 구매량 조절 방안으로 지역별 전년도 매입량과 재배 면적 변동치 반영 등으로 개편을 하는 것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농촌에서 바라는 만큼 물량 소화를 해주는 대책이 되지는 못할 전망이다.
◆정부가 가격 떨어뜨리면서 한쪽에선 공공비축용 구입 '모순'
이를 두고 정부가 쌀값 하락에 일정 원인을 제공하면서 공공비축미 매입 등에 나서기 때문에 본질적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설명했듯 쌀 직불금은 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해 지급되는 보조금의 일종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매번 탄력적인 인상이 어렵기 때문에(목표 가격이 5년에 1회 결정) 소득 보전 대책으로는 100% 만족을 주기 어렵다.
더욱이 이 같은 현재의 투트랙 시스템은 누적되는 재고량으로 인해 쌀값이 언젠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시장 불안을 안고 있다. 정부가 당장의 큰 하락폭을 막아서고 있지만, 조금만 범위를 넓혀보면 가장 큰 쌀 비축량 보유자로서 시장에 하락 심리의 잠재적 원인 제공을 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본질적으로 공공비축용 쌀의 가격이 높아질 수 없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직불금(보조금) 활용에 사실상 한계가 온 현재 보조금과 공공비축미 제도를 모두 손질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보조금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이를 가장 활용도가 높은 방향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이와 관련된 연구용역 결과가 연말 혹은 연초에 나올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업계에서는 일정량의 정부 의무매입을 희망한다. 하지만 이는 수매 방식을 부활하자는 것이 돼 제도적으로 WTO의 견제를 면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 기준 가장 설득력있게 거론되는 대안은 수입보장보험 제도를 벼농사 부문까지 확장 운영, 강제 가입화하는 것이다. 수입보장보험은 일정한 농가의 수입을 목표로 해 그 부족분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지원해 줄 수 있도록 보험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농민들은 가입률 문제에 따라 보장폭이 달라질 것으로 우려한다. 다만, 이 경우 자동차책임보험 제도와 같이 사회적 목적 보험으로 강제 제도를 운영하거나 하면 보험의 가입 인원과 재원 풀(pool)이 커져 위험 보장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진다.
◆사회 공감대에 따른 목적-강제성 보험 운영 필요 높아져
이미 콩 농업수입보장보험이 가동돼, 올해에 농림축산식품부가 가뭄과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콩 재배농가 중 농업수입보장보험에 가입한 425호 농가에 지급될 수입감소 보험금이 약 14억원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는 등 성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포도의 경우에도 수입보장보험의 시범 운영 지역이 지정된 바 있다.
일부에서는 수입보장보험을 완비하려면 재원의 일부 지자체 보전 등이 불가피하다며 재원 가능성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쌀 소비 감소로 인한 재고 안정적 관리의 마지막 비상책으로 재고미의 사료용 방출을 검토(52만톤)하는 상황과 그 손실을 재원으로 고스란히 감당하려는 것과 비교해 보면 이쪽의 지출이 더 적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현재 사료용 방출로 입을 정부의 재정 마이너스는 상당하다. ㎏당 1400원대에 사서 208원에 파는 꼴로 예측되고 있다. 이 같은 물량 조절 실패 손실치를 일종의 물류비로 생각한다면, 이를 사회적 강제 보험 운영과 지원으로 전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
직접 보조금이 이미 수명을 다했고, WTO 시스템에 어긋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수입보장보험이 마지막 대안카드로 부상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