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코칭칼럼] 그곳에 사랑이 있었다

허성혜 코치 기자  2016.12.22 11:04:54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2008년 5월, 26세 되던 해 처음 만난 호랑이 상사에 대한 나의 기억은 언제나 생생하다. 그 당시 서른아홉 노처녀였던 그 차장님은 17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마른 체구에 매서운 눈매를 가졌다.

안경 너머로 신입사원이던 나를 쳐다볼 때는 어깨가 움츠러들 만큼 당황하고 땀이 났던 기억이 난다. 어찌나 꼼꼼한지 원고를 보내면 빨간펜 선생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첨삭이 한 바닥이었다.

이메일을 보내면 회신을 줘서 잘못된 점에 대한 피드백을 주며 뭘 잘못했고, 앞으로 어떤 부분을 개선할지 적용점을 다시 보내게끔 했다. 가끔 나는 회사를 온 건인지, 학교를 다시 온 건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겉모습과 말투, 행동까지 닮아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엄마다. 57년 닭띠인 엄마가 나에게 늘 하던 말이 하나 있다. "사람 사는 거 별거 없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라"였다.

제2의 한비야를 꿈꾸던 20대 시절, 나는 그런 엄마가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진취적이라고 칭찬과 지지해주지는 못할망정, 원대한 꿈을 품고 사는 딸을 꼭 끌어내리는 기분이었다.

스무살, 스물다섯살, 서른살이 될 때에도 나의 위치와 역할이 학생에서 직장인, 엄마이자 아내로 달라졌지만 엄마의 그 이야기는 계속됐다. 나와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다른 거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가장 가까운 엄마로부터 공감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언제나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얼마 전 듣게 된 코치의 비폭력대화 수업 중, 평소 가장 듣기 싫은 말을 사례로 역할극을 한 일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가장 듣기 싫어했던 엄마의 저 말이 떠올라 사례로 내 놓았고 엄마 역할을 하는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가 내가 더 좋은 삶을 위해 꿈꾸고 노력하는데 지지해주지는 못하고 늘 평범하게 살라고 이야기해서 정말 화가 났어. 가만히만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할 텐데 왜 엄마는 나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야?"

"엄마는 네가 도전하고 진취적으로 사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아파할까 걱정돼. 지금도 너는 가진 게 많고 충분히 괜찮은 아이야."

엄마 역할을 하는 상대방의 말에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듣기 싫고 이해할 수 없는 '그 말'이 엄마의 걱정과 사랑이었다는 걸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투박한 표현이지만 그 속에 '사랑'이 있었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첫 직장의 노처녀 차장님의 엄격함 속에도 ‘사랑과 배려’가 있었던 걸 알아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스스로를 불량아내, 불량엄마라고 늘 이야기한다. 남편 아침밥도 제대로 못 해주고 원래 아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책임감으로 키운다고 말해왔다. 가족 구성원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캐어도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해온 내 안에도 '사랑'이 있었다.

"사랑은 추구하는 것이 아닐세. 그저 그 곳에 존재하는 것이지. 너희들 속에도 사랑은 존재해. 사랑은 부드러움도 강인함도 초월한 것이지.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똑바로 응시해봐." - 신의 물방울(일본 드라마) 대사 中

출근길 보던 드라마의 저 구절이 유난히 마음을 울린 건, 내 안의 '사랑'을 발견해서 일거다. 부족하고 없다고 생각하는 그 부분은, 사실은 그 순간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성혜 코치 / (현) 코칭경영원 선임연구원 / (전) 한국코칭센터 선임연구원/ (전) 굿네이버스 홍보마케팅 대리 / 저서 '(ebook)투루언니의 직장생활 생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