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6.12.18 06:24:57
[프라임경제] 체코 여행 후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와중에 프라하 공항 면세점에서 쇼핑혼을 불살랐습니다. 체코처럼 유로화를 쓰지 않고 자체 화폐를 쓰는 국가를 들르는 경우, 나중에 환전 처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문제는 동전. 특이한 나라의 동전은 모두 털어버리지 않으면 나중에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이것저것 잡다한 아이템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데, 체코 특산물 중 하나인 맥주가 면세점 안에 들어와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사진의 물건은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모 브랜드의 제품인데요, 일명 염소 맥주와 함께 대표적인 체코 맥주 제품 중 하나죠. 어쨌든 남은 마지막 동전이 30코루나쯤 됐는데, 다른 건 살 게 없고(하다못해 선물용 초콜릿 상자도 이것보다는 비싸고) 고심 중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비행기를 타고 나니 속된 말로 '이것 참 낚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바로 맥주의 가격인 30코루나. 동전 등을 모두 털어서 특산물을 살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이 들긴 했지만, 잠시 후 생각해 보면 여행 기간 중에 프라하 시내 테스코(대형할인매장)에선 저 브랜드의 병맥주(캔보다 용량도 당연히 많은!)를 19코루나에 사서 마셨던 것이니, 바가지를 쓴 셈이죠.
아니 세금 떼주는 면세점에서 시중가보다 더 비싼 물건이라니요?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저 물건을 판 곳은 면세점이 아니고 면세점 틈바구니에 끼여있는 슈퍼마켓의 변종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어쨌든 잔돈을 모두 써 버리고 싶은 여행자의 마음을 파고들어서 요령껏 잘 장사하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한편 드는 생각은, 단순히 질 나쁘거나 그저 그런 물건을 비싸게 넘기면 그건 눈속임이지만, 저렇게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는 물건으로 배짱 영업을 하면 상도덕에 어긋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 비싼 화장품이나 되는 양, 저렇게 공들여 기내 반입용 포장을 해 준 걸 보니 웃음도 납니다.
이렇게 체코 공항 면세(?)가게의 일화를 소개한 것은, 바로 그 상술을 겪은 다음날 제가 국내 면세점 사업 특허권 심사 발표 소식을 멀리서나마 듣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현대와 신세계, 롯데 등 유통강자들이 특허를 얻었고, 군소 주자의 진출도 눈에 띕니다. 어쨌든 현재도 치열한 면세점 고객 유치 경쟁이 더욱 가열될 수밖에 없지 않냐는 전망이 드는 부분입니다.
물론 한국을 찾는 주요 관광 고객층인 중국 사람들의 경우, 개별 여행객의 시대로 트렌드가 변하고는 있다고 하는데요. 어쨌든 과당 경쟁 국면이다 보니, 단체 관광객을 노리는 각축전은 단기간에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올해 상반기까지 면세점 송객수수료는 4790억원에 달했다는 게 관세청 등의 자료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체 면세점 매출액 대비 8.3%를 고객 유치전 실탄으로 쏴대는 셈입니다. 그만큼 수익성에 차질이 빚어지는 요소인데요. 이 부분이 더 지출될 것으로 우려된다는 것이죠.
또 하나 문제점, 사실 면세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고객에 대한 서비스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유력 브랜드(일명 명품)를 유치하려는 경쟁으로, 해외 유력 브랜드들의 배만 불려줄 수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됩니다.
이런 사정이고 보니, 무한 경쟁 면세점 시대에 저 체코 맥주처럼 가는 길은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면세점이라고 싸게 가격 경쟁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자체적으로 강소 브랜드를 많이 갖고 있는, 그러니까 이런 브랜드 개발(발굴) 능력을 갖춘 나라의 면세점이라면 해외 유력 명품 유치전이나 단체 관광객 끌어들이기의 제살 깎기 문제는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 아닐까요. 맥주 포장을 뜯으며 우리나라 면세점이 나갈 길도 저런 틈새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