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인 기자 기자 2016.12.16 17:35:16
[프라임경제] 올해 사상 최악의 수주절벽을 겪은 조선업계는 구조조정으로 힘겨운 한 해를 보냈지만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 올해 말라붙은 수주가뭄 때문에 오는 2018년까지는 매출이 급감하는 매출절벽을 겪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조선 빅3'의 지금까지와 앞으로를 짚어봤다.
영국의 조선·해운 전문 리서치 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전 세계의 선박 발주량은 1048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를 기록해 전년동기(3720CGT)의 28%에 그쳤다.
같은 기간 한국의 수주량은 163만CGT를 기록해 전 세계 수주량의 15%의 점유율을 보였다. 한국의 수주잔량은 2003년 이후 13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 2046만CGT에 머물러 있다.
명실상부한 조선업계의 맏이 기업으로서 현대중공업(009540)은 그나마 체면치레에 성공했다. 올해 초 195억달러를 수주 목표로 잡았다가 지난달 95억달러로 하향 조정하긴 했으나 10월 기준으로 누적 수주 62억달러로 65% 달성에 성공했다. 최근 이란 선사와 컨테이너선 계약에 성공해 목표치에 더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오일뱅크' 다행이다…몸집 줄이기 '열일'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 3분기까지 연속 흑자를 유지하며 누적 영업이익 1조2042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4분기 적자만 나지 않아도 '영업익 1조 클럽' 가입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4분기에도 올해 평균치인 400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호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함께 빅3로 묶이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적이다. 다만 현대중공업의 올해 실적은 본업인 조선·해양부문에서의 성적보다는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의 실적 개선이 큰 역할을 했다. 같은 시기 현대오일뱅크의 누적 영업이익은 6487억원으로 현대중공업의 절반 이상을 기록했다.
물론 현대중공업의 자구노력 역시 효과가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부터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신속한 사업 재편에 돌입했다. 특히 인력 구조조정이 돋보인다. 지난해부터 희망퇴직·분사 등으로 총 3000여명이 넘는 인력을 감축해 몸집을 줄였다.
아울러 울산조선소 내부 1개 도크를 폐쇄하는 등 수주절벽에 맞춰 작업 진행속도를 조절하고 현대아반시스 등 비주력부문 자회사 매각 및 중국·독일 등 해외 법인 청산도 진행했다. 개중 자산가치가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하이금융투자는 적정 가격을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타사보다 빠른 구조조정은 현대중공업의 경영 정상화에는 큰 힘을 보탰으나 회사 내부적으로는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특히 노사관계의 불안정이 가장 큰 문제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 5월부터 7개월 간 60여회 넘는 협상을 진행했으나 임단협에 대한 양측의 골은 조금도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

특히 인력감축 문제에서 노사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자회사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이 지난 10월 회사의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임단협을 마무리한 것과는 반대로, 현대중공업 노조는 올 들어 사측의 구조조정에 반대해 크고 작은 파업을 진행하는 등 타 노조보다 훨씬 강경한 반응을 보여왔다.
이렇게 노조의 불만이 높은 것은 사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만이 원인은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특히 현장에서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오명이 높다. 지난 13일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동안 일터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으로 하청업체 노동자 7명이 사망한 현대중공업을 꼽았다. 올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는 이미 1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했다.
◆분사 기대감…'정기선 체제' 초읽기
현대중공업은 내년 기대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다. 가장 먼저 연초 진행될 분사 작업이 눈에 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15일 이사회를 열고 내년 상반기까지 6개 독립사업회사로 나누는 방안을 의결한 상황. 이를 통해 기존 현대중공업에는 조선·해양 부문만 남고, 나머지 부문은 인적분할 △건설장비 △전기전자시스템 △로봇 및 물적분할 △그린에너지 △서비스로 나뉠 예정.
분사를 위한 주주총회는 내년 2월27일에 개최될 예정으로, 분할기일은 4월1일, 신설회사 재상장 예정일은 5월10일로 계획돼 있다. 이를 통해 현대중공업의 전체 인력 중 20%에 달하는 4500여명이 분사된다. 현대중공업은 이를 통해 기존 차입금을 분사될 회사에 나눠 배정함으로써 부채비율을 100% 미만으로 낮추는 재무구조 개선안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물론 올해에도 인력감축과 사업 재편의 측면에서 분사가 진행됐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주력사업부문을 분리해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각 영역에 대해 비슷한 중요성을 갖고 일종의 병렬식 회사로 정리한다는 것이 현대중공업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우려보다는 기대가 더 우세하다. 조선해양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의 각자도생 가능성에는 다소 우려가 따르지만, 본업에 대해서는 재무구조 개선에 따른 차입 여건이 좋아지고 해외 수주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한편, 이를 통해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 경영체제가 초읽기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감도 높은 상황. 현대가 4세인 정 전무는 지난 201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지난 2014년 말 인사이동에서 상무로, 또 지난해에는 전무로 승진했다.
현대오일뱅크가 당분간 IPO를 할 예정이 없다고 밝힌 바 있어 로봇 사업부가 분사될 현대로보틱스가 해당 지분을 넘겨받아서 지주사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정 전무가 현대중공업에 대한 지분이 거의 없는 현 상태를 고려할 때 현대로보틱스를 지주사로 세우는 이번 분사 전략이 후계 작업에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더해 최근 들어 조선 발주 시황이 이제 바닥을 찍고 서서히 반등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돌면서 현대중공업이 대규모 수주에 성공하는 등 업계 내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분석 역시 현대중공업의 위기 탈출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현대중공업이 컨테이너선·PO선 등 12척의 특수선을 13억달러에 수주했다는 소식 역시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분사를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노조와의 협상은 여전히 현대중공업의 숙제로 남아 있다. 특히 최근 현대중공업 노조는 16년 만에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재가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오히려 더 강경하게 나서고 있다. 오는 20일 가입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가 진행되는데, 만일 재가입이 이뤄진다면 다음해 현대중공업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