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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대의 글쓰는 삶-26] 들리는 소리와 듣는 소리

이은대 작가 기자  2016.12.14 18: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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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우리 집은 아파트 4층이다. 2층에 사는 이웃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피아노를 친다. 주말 오후, 집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피아노 소리가 들여온다.

고요한 주말의 정적이 깨지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치솟는다. 그래도 낮에는 참을 만하다. 한밤에 글을 쓰려고 할 때에는 피아노 소리가 더없이 거슬린다. 내려가서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게다가 이른 아침, 잠에서 깨기도 전에 피아노 소리가 들려올 때면 정말이지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다.

며칠 전, 창원에 강의가 있어 이른 아침 열차에 몸을 실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대부분의 승객들이 부족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잠든 사람들의 숨소리만 겨우 들릴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여보세요'라는 말로 시작된 우렁찬(?) 여자의 목소리가 열차 안의 정적을 깬다. 얼마나 목소리가 큰 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승객들이 한꺼번에 놀랄 정도였다. 선잠을 깬 것도 짜증나고, 저렇게 교양 없이 큰 소리로 통화하는 것도 마땅치 못했다. 승객 중 한 명이 쏘아붙였다.

"통화 좀 나가서 하세요!"

열차 안 분위기는 썰렁해졌지만, 덕분에 여자는 전화를 끊었고 나는 못다 이룬 잠을 다시 청할 수 있었다.

감옥에서의 악몽 같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침묵과 고요함. 얼마나 조용한지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허락되지 않은 말은 할 수도 없었고, 한마디의 말조차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교도관들의 눈치 그리고 극도로 예민한 수용자들의 눈치. 우리는 매일 침묵과 정적 속에서 천정만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그리웠다. 버스 안에서 재잘거리는 어린 아이들의 소란이 듣고 싶었다. 술자리에서 흥청거리는 아저씨들의 걸쭉한 입담이 간절했다. 꿈속에서나마 시장통을 거닐고 싶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공간. 그 곳에서의 정적은 돌이키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롭고 힘든 고요함이었다. 그토록 간절했던 '소리'들이 이제는 짜증나는 소음으로 들려온다. 조금 살만 해 진 걸까. 아니면 배가 부른 걸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갖게 됐다.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내 삶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소명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지금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된다. 시끌벅적한 곳에 있을 때에는 고요함이 그리워지고, 귀가 아플 정도의 정적 속에 있을 때에는 사람 사는 소리가 간절해진다.

눈물을 흘릴 만큼 그리워했던 소리들을 짜증스런 소음으로 느끼는 내 자신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어떤 소리가 들리느냐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 소리를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훨씬 중요한 문제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의 어떤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려놓음이 반드시 필요하겠다.

환경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깊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평정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은대 작가 / <내가 글을 쓰는 이유>,<최고다 내 인생>,<아픔공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