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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칼럼] 이발사 제임스

허달 칼럼니스트 기자  2016.12.12 12: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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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일주일이면 적어도 내가 서너 번은 들리는 우리 색소폰 스쿨 바로 옆집이 내 단골 이발소이다. 단골이라고는 하지만 3주에 한 번쯤 염색도 하고 머리도 자를 겸 들린다. 제임스라는 영어 이름을 가진 이발사 부부가 운영한다. 원장 제임스는 이발을, 부원장인 아내는 염색을 전문으로 일을 분업하고 있다. 머리 감아 주는 일은 손이 노는 사람이 맡는다.

70년대에 충무로에서 이발을 배워 아직도 자신의 스타일리쉬한 접근법을 알아주는 고객은 알아준다고 자랑하는 제임스 씨는 미국 이민을 다녀온 뒤 귀국하여 강남에 이 이발소를 차렸다는데,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갖고 무언가 새롭게 연구하여 개선하려는 노력을 즐거운 마음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이 갈 때마다 눈에 띄어, 이발하러 들릴 때 마다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그뿐 아니라 하루는 시집 장가 간 애들 얘기가 나왔는데,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 뿐 저희들 잘 살면 그게 효도지 무어 기대할 것이 있겠느냐고 내려놓았더니 아이들이 오히려 잘들 한다며 에고리스(egoless: 자아가 없는)의 수범(垂範)을 보여, 코치가 직업인 내게 오히려 한 수 가르침을 주었다.

오늘은 이베이(e-bay)를 통해 새로 구입했다는 새 머리 기름 비탈리스(Vitalis)를 발라주면서 이렇게 하면 염색을 안 해도 흰머리가 품위 있어 보인다며, 점심 약속 시간에 쫓겨 두 시간은 조이 걸리는 이 집의 철저한 염색 과정을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불편한 마음을 위안해 줬다.
 
지난 일이지만, 이세돌과 알파고의 마지막 대국이 있던 날.

"바둑을 잘 두세요?" 머리를 만지며 제임스가 물었다.
"한 5급."
"오늘은 어떨 것 같아요?"
"오늘 설사 이세돌이 이기더라도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겠지. 어차피 바둑의 속성이 영토 넓이를 계산하는 게임이니…"

시중에 모두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접전 이야기가 왁자지껄 했던 터라 여기도 그 얘기였다.

"계산 게임 말고, 인간과 기계가 아이 낳기 게임을 하면 누가 이길까?"

이 얘기는 전날 색소폰 이원장과 하던 얘기.
 
"근데, 카이스트(KAIST) 박사라든가 어떤 분은 인공지능이 악(惡)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요?"
"그 박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일 거야."

악이라면 어떤 것이 악일까?

최순실 바람을 일으켜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이 이제 와서 태블릿PC는 누구 것이어도 상관없고, 없었어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악한 행위도 일부 젊은이들에게는 재미요, 선의 추구라고 읽혀졌으니 호응을 받았을 것이다.

'사람은 바람직하지 않은 자신을 밖으로 투사하고 그것과 경계를 지어 자신을 축소 정의하려 한다.'

경계를 지을 때 이미 선악이 모두 내 안에 있다는 말이 된다. 켄 윌버의 '무경계', '의식의 스펙트럼 장(章)'에서 만난 글이다.
 
迷生寂亂이요, 悟無好惡이니
一切二邊은 良由斟酌이라.
 
'미혹한 즉 고요함과 어지러움 생겨나고
깨달은 즉 선악의 구분 사라진다.
일체의 대립과 경계가
오직 마음이 짐작하여 만든 상(相)임을 알라.'

승찬 스님의 신심명(信心銘)에서 만난 글이다.
 
이 말들, 제임스 씨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와 나 사이에 있는 피부적 경계?
그것이 머리와 이발을 매개로 하는 우리 만남에서는 연결의 선(線)이 된다.


허달 칼럼니스트 / (현)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 / (전) SK 부사장, SK아카데미 교수 / (전) 한국화인케미칼 사장 / 저서 '마중물의 힘' '잠자는 사자를 깨워라'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