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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인의 혀끝에 척] 이름하여 성스러운 '초콜릿'

달콤 쌉싸래한 발자취 '공정무역' 눈길

하영인 기자 기자  2016.12.12 12: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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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단지 가만히 있을 뿐인데 괜히 공허한 마음이 든다. 입이 심심해 주변을 둘러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먹는 게 곧 쉬는 것이자 낙(樂). 필자 포함,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우리 혀끝을 즐겁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에 대해 이유를 막론하고 탐구해본다.

'오, 성스러운 초콜릿이여! 사람들은 무릎 꿇고 갈고 있고, 두 손 모아 당신을 부수고 있구나. 그리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당신을 마시네.' 

스페인의 발렌시아 시인이 초콜릿(Chocolate)을 찬양하는 시 '성스러운 초콜릿'이다. 초콜릿의 위대함을 잘 나타낸 시가 아닐 수 없다. 

초콜릿에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세로토닌과 아이러니하게도 도파민을 분비, 기분을 고조시키는 페닐에틸아민·암페타민 성분이 함유돼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입에서 살살 녹는 초콜릿으로 한순간이나마 마음의 평화와 소소한 행복을 맛본다.

우리나라 초콜릿의 시초는 조선 말기 때였다. 당시 러시아 공관 부인이 규방 외교의 일환으로 양과자와 양화장품들을 명성황후에게 바치면서 유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1968년경에는 한국에서도 초콜릿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냈다. 

◆음료에서 고체로 변신…달콤함 뒤에 가려진 참혹함

밀크초콜릿, 다크초콜릿, 화이트초콜릿 등 저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초콜릿은 멕시코 원주민이 카카오콩으로 만든 음료 '초콜라틀(Chocolatl)'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아메리카 아마존강 유역과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강 인근 지역이 원산지인 카카오는 '신이 내린 선물'이라 불릴 만큼 귀한 것이었다. 

고대 마야인들에게 카카오는 화폐로 쓰였기 때문에 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카카오 10알로 토끼 한 마리, 100알로 노예를 구입했다 하니 어느 정도의 값어치인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또 아즈텍인들은 인간 제물을 신에게 바칠 때 초콜릿을 먹여 그 피를 정화했을 만큼 초콜릿은 신성한 음료로 여겼다.

카카오 열매는 15세기 말 이탈리아의 탐험가 콜럼버스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갔다. 1828년경 네덜란드의 반 호텐이 카카오를 압축, 지방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코코아버터'가 탄생한다. 

이후 1876년 스위스의 다니엘 피터스(Daniel Peters)가 지금의 밀크 초콜릿과 비슷한 모습의 초콜릿을 만들어냈으며 100년 뒤 스위스의 피터(D. peter)가 우유를 첨가한 초콜릿을 선보이기도 했다.

초콜릿 산업이 흥성하자 인간의 탐욕으로 '초콜릿의 비극'이 시작됐다. 수백년 전 카카오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성행, 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은 심각한 수준이다.

아프리카의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수확한 카카오로 만든 초콜릿의 맛을 모른다고 한다. 인신매매와 혹사, 강제 노동이 성행하고 아동 착취가 다반사인 것.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12~14세 어린이 30만여명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횡포를 막고자 노력하는 공정무역 초콜릿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한편,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국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카카오를 '피의 초콜릿(blood chocolate)'이라고 부른다. 

북부 이슬람 세력은 정부를 장악한 남부 기독교 세력이 '카카오 수출의 이득을 갈취하고 있다'면서 쿠데타를 기도하려다 실패하자 내전을 벌였다. 2002년부터 5년간 벌어진 전쟁에 수만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반군인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 자금으로 사용되면서 피의 초콜릿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후에 평화협정을 맺기까지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카카오의 비극이었다. 

◆초콜릿에 하얀 가루…오래된 초콜릿? 해로울까?

초콜릿의 주성분인 코코아버터는 트리아실글리세롤(triacylglycerol)이라는 분자인데, 여섯 가지 각기 다른 형태로 결정화될 수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구조로 녹는점도 제각기다.

초콜릿을 녹였다가 다시 굳히면 처음과 다른 다형체가 형성돼 맛이 달라진다. 그저 상온에 두기만 해도 초콜릿은 점점 다른 형태로 변한다. 몇 달 정도 지난 초콜릿 껍질을 벗겨 보면 마치 썩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

사실 초콜릿 표면에 생긴 하얀 가루는 기분을 불쾌하게 하지만 몸에 해롭지는 않다. 이는 가장 안정적인 다형체 형태다. 하지만 이 경우 본래 맛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때문에 초콜릿은 냉장고 등 온도가 낮은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초콜릿은 사는 즉시 먹어주는 것이 인지상정. 그런데 대체 왜 남자는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받고 여자는 화이트데이에 사탕을 주고받을까.

밸런타인데이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기념일인데, 이는 지난 1477년 2월14일 영국의 시골 처녀 마거리 부르스가 몇 년째 짝사랑하던 남자친구에게 고백하는 편지를 보내고 사랑이 이뤄진 소식이 퍼지면서 자리 잡게 됐다.

우리나라의 밸런타인데이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제과회사였던 모토고미 제과점에서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으로 사랑을 전하세요'라는 문구로 다양한 초콜릿을 판매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밸런타인데이 시초가 됐다고 전해진다.

사탕보다 초콜릿을 더 많이 사랑하는 필자로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어 자급자족으로 초콜릿을 즐기곤 한다.

하지만 오늘날 시중에 판매되는 일부 초콜릿에는 식물성지방을 고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겨난 트랜스지방이 3.5g가량 포함돼 있다. 이처럼 초콜릿이 아무리 맛있고 효능이 뛰어날지라도 과한 섭취는 자제해야겠다.

월요병도 이겨 낼 공정무역 초콜릿으로 힘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