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6.12.12 11:23:56
[프라임경제] 새누리당이 탄핵소추안 가결 정국을 맞았다. 새누리당 출신으로 18년간 국회의원을 역임한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면서 여당 소속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탄핵 검사'역을 맡는 기구한 상황이 됐다.
이정현 대표의 4월 퇴진-6월 조기대선론도 수용되지 못했다. 특히 '압도적 표결 결과'라는 점에 언론은 크게 주목했다. 300명 중에 최경환 의원 1명은 퇴장, 234명 찬성으로, 새누리당 출신 중 상당수도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냈다.
이런 점에서 당이 친박(親朴·친박근혜) 대 비박(非朴·비박근혜 간 갈등으로 요동치는 상황에 빠져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에 나온 반대표 56명이 모두 친박이라고 해도 반대표를 던진 새누리당 의원 규모보다 적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것.
12일 현재 비박과 친박의 격돌 문제 등 많은 갈등이 부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셈범이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박 대통령이 탄핵되어도 즉각 사임해야 할 뿐만 아니라 황교안 총리 등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던 더불이민주당은 일단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내각 총사퇴 입장을 일단 철회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더욱이 60명 가까운 친박이 어쨌든 단일 정치 공동체로서의 친박으로 남았다는 점도 어떻게 정국에 영향을 미칠지 관건이 된다. 이 대표 등 일부 친박 거두들의 사퇴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결국 친박을 오롯하게 몰아내고 정계 개편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절충과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
이런 상황에 유승민 의원, 김무성 전 대표 등이 중심이 돼 당의 혼란을 수습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분노 앞에 일단 납작 엎드리는 상황이 되기는 하겠지만, 당을 쪼개거나 해체하는 상황으로 가지 않을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당이 필요해서' 하는 '재창당 수준의 개편'이지 새누리당 전체가 '폐족'이 되는 불상사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과 대권이 이명박 정권으로 넘어가는 대선 패배로 '친노(親盧·친노무현) 전체가 폐족이 되던' 시절과는 온도차가 생길 것이라는 가능성이 나오는 자체가 이색적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친박이라는 계파 자체가 가진 의미, 친박과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의 역학 관계가 민주당(옛 열린우리당)과 친노의 사정과 다르기 때문이다.
친노는 특정 이념보다도 정치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낭만적 속성이 강하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말기에 당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갖고 간 상황, 당과 친노 그리고 자신과의 단절을 시도한 퇴임 이후 상황에도 노 전 대통령과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따라서 친노는 물론 당 자체가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비리 논란에 시달릴 때 크게 위축됐었다.
◆친박 일부 인사들, 야비해서 떠나? 원래 친박과 당 관계 이래…이상 無
하지만 친박의 경우는 다르다. 친박은 박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어 정치를 하는 세력이기도 하고, 또 친박 정치인을 자처하는 이 중에는 그야말로 박 대통령의 브랜드 가치 덕이 아니면 금배지를 달지 못했을 이도 상당수 섞여 있다. 그럼에도 도의적으로 탄핵에 정면으로 맞섰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시계를 앞으로 돌려 친박의 속성, 특히 정부와 당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시기 포함)이 여당이었던 때를 기준으로 특히 관찰해야 한다.
이명박정부가 정권 초부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괴담으로 고전하던 2008년 겨울 무렵. 당시 정부가 주춤하면서 주요 계파인 친이(親李·친이명박)의 힘이 줄어들 때다. 차기 주자로 꼽히던 박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득세할 시기였던 셈이다.
이에 친박 세가 원래 강하던 영남권에서는 안경률 당시 당 사무총장을 제외한 상당수 의원들이 암암리에 '월박(越朴)'했다는 분석이 보도되거나, 최소한 '양다리'를 걸치는 '주이야박(낮엔 친이,밤엔 친박)' 표현이 공공연하게 나돌기까지 했다.
2008년 겨울은 어떤 시기인가? 원래 친박계는 4·9총선 직후 당선자만 50여명 수준이었고, 7월 이른바 탈당파 친박 복당이 마무리된 뒤에는 그 세가 더 불었다.
친이 정치인들이 총선 공천에서 친박 계열에 불이익을 주는 일명 공천 학살에도, 상당수가 무소속 혹은 친박연대 깃발을 들고 나가 싸워 의원직을 쟁취한 것. 이들 무소속 친박과 친박연대 지역구 의원들이 다시 당으로 돌아오면서 2008년 겨울 이미 당내 친박이 70여명으로 늘어났다. 친이계와 대등한 수준(80~90명)이 된 것.
이런 나름의 세를 바탕으로 2010년 6월 일명 세종시 수정안을 정부와 청와대, 친이계가 추진하는 와중에서도 친박계와 박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더 두드러졌다.
당시 박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부결의 중심에 섰다. 이날 부결 상황을 분석해 보면, 당시 한나라당(오늘날의 새누리당) 내에서만 찬성 103명, 반대 50명으로(그외 불참과 기권 등도 있음) 갈렸다. 박 대통령이 몸소 반대토론에 나서는 등으로 친박의 힘을 결집한 터다. 반대표와 실질적으로 반대에 무게를 실어준 기권이나 결석 등까지 상당한 규모가 나타났던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힘은 속칭 '대세'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런 친박의 힘은 시간이 갈수록, 즉 MB정부 그 다음의 정권 창출을 생각해야 할 시기가 되어 박 대통령의 인기가 집중될 것으로 보였음에도 변곡선을 여럿 그렸다.
일례로, 그해 여름 전당대회는 친박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 선거로 보인다. 매파 친이계로 분석되던 안상수 현 창원시장이 당시 당을 이끌 대표가 됐고, 친이계 내지 범친이계로 볼 수 있는 4명이 등장, 선출직 최고위원의 8할을 점유했다. 반대로 친박계는 겨우 1명만, 그것도 턱걸이로 최고위원이 됐다. 친박의 정치적 입지가 오그라들게 됐고, 게다가 대의원 투표에선 기존 친이 대 친박 계파 지분(66.1 대 30.3%)이 철옹성임이 확인됐다.
물론 이후 대선에서 당의 대선 주자로 선정되고, 또 대선 본선에서 타당 후보들을 물리쳐 현재 국정을 이끌고 있으나, 박 대통령 역시 결국 당의 플레이어 중 하나로 일정 지분 이상을 행사, 확보하는 데 한계를 겪었다는 것이다. '차떼기 논란' 이후 '선거의 여왕'으로 당을 살렸다는 공적에도 박 대통령과 친박 역시 상당한 시간을 들여 정치력을 입증하는 등으로 대권과 그 전리품에 다가설 수 있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친박 간판이 유리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일부 정치인의 쏠림 현상이 생기기는 하나, 결국 전체적인 유기체로서의 당심이나, 당의 주요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의 이해관계에 따른 표결 이합집산 등에서는 여전히 특정 계파가 모든 걸 장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대선에서의 정권 창출(혹은 재창출), 총선에서의 대대적인 승리 등 단일대오를 이뤄 공략에 나설 문제에서는 당 전체가 뭉쳐 움직이는 것 같지만 특정인을 위한 계파라는 이익집단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구조는 아니라는 것.
◆친박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정권 창출에 능한 당이 있을 뿐
그러므로 친박이 현재 일정한 존재감을 갖고 엎드려 있기만 한 상황은 원래 근 10년의 정치 흐름을 보아도 결코 위축되거나 분해되는 상황이라고 볼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다만 일부 외곽의 흐름만 달라졌을 뿐이라는 것.
우선 지금은 당 전체가 매도되는 상황이지만, 이런 큰 지분의 친박을 완전히 몰아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선뜻 탈당을 해 제3지대 창당론을 외치며 고생을 하기에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승민 후보론'이 이미 거론될 정도로 차기 대선에서 뛸 후보감을 물색하며 '다음'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그런 터에 이 같은 민감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으므로, 다시금 '정권 재창출'이라는 이해관계를 위해 빠르게 전열을 정비하는 정도에서 새누리당이 태세 전환을 하는 쪽으로 당 개혁의 방점이 찍힐 것이라는 풀이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군사정권 시절 태동해 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 후신인 노태우정부를 보좌해온 민자당, 그리고 3당 합당 이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한 당시의 신한국당 등 새누리당의 여러 시기를 거쳐오며 축적한 힘과 능력이 이번에도 발휘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연결된다. 단순히 '여당 체질'로만 살아온 게 아니라 '여당을 오래하는 데 걸맞는 최소한의 능력'은 이미 오래 검증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이 오히려 일찍부터 탄핵 정국의 장악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고, 박 대통령이 차기 총리를 인선해 달라거나 퇴임 시기를 정해달라는 등 요구에 계속 한발짝씩 빼면서 미세하게 요구를 바꾼 점은 '탄핵만 안다'거나 '탄핵 이후 정국을 끌고 갈 방법이 마땅찮기 때문'이라는 지적, 더 나아가 '탄핵 국면을 오래 즐기고 싶은 생각뿐이지 일찍 운전대를 넘겨받아 자기 세력에 마이너스가 나는 것은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는 분석을 낳았다.
실제로 국민의당이나 민주당 어느 쪽도 지금 내각 총사퇴 등 더 강한 수를 쓰는 것을 주저하고 있고, 이는 '힘의 자제'가 아니라 '실제로 대안이 없어서'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런 터에 박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으로 인한 퇴진 등으로 자리를 잃고 개인적으로는 수사나 구속 등까지 겪더라도 친박이 변신과 협상, 자리 보장 등을 통해 또다른 운명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야권에 버거운 전쟁의 요인이 된다.
많은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당의 운명을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손'의 부름과 움직임에 따라 부침을 겪을 뿐이라는 점이 대표적 브랜드 집단인 친박이 보여준 지난 약 10년 흐름에서마저도 어느 정도 드러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에 친박은 아무 데도 없지만, 어디에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실 친박 개개인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도 전체적인 정국에 큰 의미는 없다. 다만 친박이라는 간판이 사라진 후에도 혹은 친박 유력 인사든 친박 주변부의 거품 정치인이었든 간에 이들이 모두 유력한 대선 주자 등에 힘이 될 인사로 활동할 기회만 노리는 셈이다.
무작정 기다리기 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나설 가능성마저 있다. 야권이 탄핵 이후 정국 콘트롤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고, 정부 역시 황 총리가 대행이라는 한계상 현안인 경제 사정 악화 국면 대응 등에 나서기도 힘들다.
부총리 교체(유일호 부총리를 임종룡 지명자로 확실히 바꾸는 등)나 그에 버금가는 조치를 매듭짓거나 새로 구성하기에는 인사권 행사의 한계, 야권의 협조 여부 등 장애물이 너무 많다.
경제 대책의 큰 청사진을 이달 중이나 내달 초 그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나, 정부 내부에서도 이것이 불과 반년짜리 대책에 그치리라는 회의론이 부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법안의 형식으로' 이런 상황 대처를 구상해 야권에 들이민다면 실현 가능성은 없지 않아 보인다. 새로 '거국 내각'을 구성할 힘은 현재 박 대통령이나 황 총리에게는 없지만, 거국 내각에 버금가는 강한 비상기구를 설치하거나 그런 정책을 각개약진 방식으로 처리하는 내용을 실질적으로 담는 안건을 다수 발의하는 것은 새누리당에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또 통과 여부까지도 가늠해 볼 힘이 친박 등이 모두 함께 움직인다는 가정 하에서는 아직도 이들에게 유보돼 있다. 법안의 일반적 통과 요건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의원 과반수'라는 점과 현재 새누리당 원내 구성 지분 및 장악력을 고려해 보면 이해가 쉽다.
새누리당 특히 친박은 특정 계파 명칭에 구애받지 않고, 단순히 생존뿐만 아니라 다음 대선 승리까지 모색하고 다양한 능력을 풀어내 보일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돌파구를 생각해 볼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야당들이 겪을 탄핵 국면의 난이도가 마냥 낮은 수준에 머물지 않고 출렁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야당 정치인들이 훗날 지금을 돌이켜 '박 대통령 덕에 쉽게 정권을 되찾아온 싸움'이 아니라 '대단한 혈전'으로 기억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