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운명의 날이다. '네 앞가림이나 잘 하렴'이 덕담일 정도로 삭막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여부를 결정하는 2016년 12월 9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일생에 꼽을 하루가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고 부친에 이어 국가 사령탑에 오른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임기를 1년여 남긴 그가 참담한 꼴로 자리를 내주게 된 과정은 너무 아프다.
최순실로 집합되는 측근 비리와 이를 넘어서는 반국가적 전횡은 반박이 불가능한 수준의 국민 공분을 자아낸 탓이다.
속된 말로 '불법은 눈 감아도 (나에 대한) 차별은 못 참는' 대한민국이다. 남양유업과 대한항공으로 대표되는 갑질에 분노했던 민심이 제 딸의 스펙을 위해 명문 이화여대를 농락하고 수백억 원대 나랏돈을 주무른 일개 '강남 아줌마'를 공공의 적으로 삼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박 대통령, 아니 인간 박근혜에게 국민들은 계산적 분노보다 섬뜩함을 느낀다. 그 섬뜩함이 그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당위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감능력은 인간이 가진 가장 뛰어난 사회능력이다. 단순히 남의 불행에 대해 '안쓰럽다' '유감이다' '송구하다' 정도의 말로 일단락 지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왜 섬뜩한지 묻는다면 슬프지만 <세월호> 이야기를 뺄 수 없다. 2년이 흐른 지금 드러난 참상은 당시 죽어간 이들의 사연 이상으로 끔찍하다.
만약 나라면.
만약 내 아들, 내 딸, 내 부모, 내 형제라면.
사람에게 '만약'의 무게감은 어떤 상황에서도 꽤나 무겁다. 그렇기 때문에 2014년 4월 16일은 수학여행 떠난 고등학생 상당수(205명)와 아까운 내 이웃 등 304명이 희생돼 우리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현재 드러난 정황, 폭로, 증언 등을 조합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사령탑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책무와 의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청와대는 9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것이 팩트다'라며 동영상을 게재했다. 박 대통령이 위급상황에 대해 전반적인 보고를 받았으며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습게도 해명 동영상 속 박 대통령이 '제대로 된' 구호 지시를 내린 시간은 그날 17시가 지나서다.
세월호의 최초 사고 접수 시간은 목포해양경찰청 상황실을 통한 8시 58분. 앞서 6분 전 전남 소방본부를 통해 조난 신고가 들어왔다. 무려 8시간이나 지체된 이후다.
오전부터 보도채널은 물론 종합편성채널도 생중계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눈앞에서 살아있던 그들이 바다 아래 처박히는 꼴을 국민이 지켜봤다. 적어도 10분만 TV 뉴스를 봤다면 할 수 없었을 말을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서 뱉었다.
최근 폭로에 따르면 그날 대통령은 20분(혹은 90분) 올림머리를 꾸미고 '평소처럼' 정오, 오후 6시에 맞춰 본인이 기거하는 관저에서 '혼자' 만족스럽게 식사했다고 전해진다. 곧 3주년이 가까워오지만 여전히 9명의 희생자가 차가운 바다 아래 헤매고 있는 와중에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유추할 수 있는 답은 단 하나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날, 그 사고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었다."
2009년 기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CSI인 감식반(현 과학수사요원) 베테랑과 인터뷰했다. 당시 3000여구의 시신을 검안했고 501명의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경험했던 김만범 경감(감식계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 시경 감식반을 풀가동해도 모자라 일선 경찰서에 요청해 베테랑 멤버 20여명을 추가로 차출했다. 일종의 감식 '드림팀'이 만들어진 셈인데 그 친구들에게 딱 한마디 부탁만 했다. '절대 불평하지 말고 일에만 집중해 달라'고. 수백 명이 돌 더미 아래 깔려 있는데 내 부인, 내 자식, 내 친구가 이런 꼴을 당했다 여기라고. 절망에 잠긴 유족들에게 온전한 시신이라도 돌려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당시 감식반의 성과는 놀라웠다. 김 경감을 비롯한 감식반원들은 꼬박 한 달 철야를 감행했고 300여명을 지문조회로 연고자에게 돌려보냈다. 불에 타거나 습기에 뭉개져 지문 확보가 불가능한 시신 100여구는 DNA 감정을 거쳐 영면했다. 한 여름 불과 물에 뭉개진 현장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그럼에도 그들은 안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회한은 평생의 걸림돌로 남았다.
"문제는 나머지 100여명이었다. 날이 더운데다 건물 잔해에 완전히 짓이겨져 형체조차 안 남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두개골과 치열이 온전한 이들은 슈퍼임포즈법(두개골 형체를 복원해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을 쓸 수 있었지만 완전히 분쇄된 유해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 남은 50여명은 무명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김 경감은 희생자 50명을 떠나보내며 회한의 눈물을 삼켰다고 했다. 결국 실종자 명단에는 있지만 신원확인이 불가능한 유해들을 50명 몫으로 나눠 합동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공식적인 절차가 마무리됐다.
"처음엔 신원확인 100%가 목표였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허탈감이 컸다. 무너진 백화점 터에서 뜬 눈으로 지샌 후배들을 포함해 유족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는 경찰에 입문하며 감식반원을 자처하지 않았다. 대졸 출신 공채로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소화한 것 뿐이었다. 대부분의 공무원이 이처럼 선량한 목표로 일한다. 다만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시점으로 되돌려보자.
"탄핵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이 되면 가결이 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되어 있다"
(6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정진석 원내대표 회동 중 발언)
물론 국가통수권자와 일선 감식반원을 비교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국가통수권자인 대통령은 국민의 투표로 입성한 '공무원'이며 당시 국민은 슬펐다. 아팠다. 애석했다.
하지만 국민의 대표로 자리를 차지한 박근혜 대통령은 전혀 공감하지 못했고 당시 행적을 반추하자면 '사이코패스'에 가깝다는 게 국민 정서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로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경제전문매체 쿼츠(Quartz)는 '사이코패스도 후회한다'는 연구결과를 전했다. 흔히 사이코패스는 감정이 없고 슬픔, 공감, 반성할 줄 모르는 인격이하의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데 예일대 심리학자 아리엘 배스킨소머스(Arielle Baskin-Sommers)와 하버드대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도박실험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
참가자들에게 어디에 던져야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지 정보를 주지 않은 채 두 개의 룰렛을 주고 게임을 시작한 것. 몇 번의 실험을 거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한 참가자들은 이전에 낮은 점수를 얻으면서 후회의 감정을 드러냈지만 이를 바탕으로 다음 행동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 실험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잘못된 행동임을 알지만 반성(반면교사)할 능력이 결여된 사람'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두고 시계가 40년 전으로 돌아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통제, 억압, 사찰, 우상화(이미지 메이킹) 등등.
이후 민주화운동과 대통령 직접선거, 지방자치화, 풀뿌리 민주주의를 거쳐 최근 국회 국정조사 과정에서 빛을 발한 일명 '명탐정 주식갤러리' 일화까지 과거의 잘못을 개선하려는 일상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난데없이 2000년대 이후 국가의 시계가 뒤로 돌아간 전제의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까?
이상의 현상을 아울러 정리하자면 이렇다. 문제는 통수권자의 인격이었고. 이를 걸러내지 못한 우리 유권자의 업보라고.
우리 국민은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간과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