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6.12.04 12:52:12
[프라임경제] 바야흐로 1940년대생 정치인들의 수난시대다. 원로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복잡한 탄핵 정국 와중에 엉뚱하게 갈짓자 행보를 보이거나 제 역할을 100% 해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YS 정치를 상속한 서청원 의원은 새누리당 내 친박계를 이끌면서 탄핵 처리에 브레이크를 거는 데 여념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탄핵안이 발의돼도 여권 내 비박계를 완전히 응집시키지 못하면 최종 통과가 어려운 가운데 비박계 설득 작업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학생운동(중앙대 총학생회장 출신)을 하고 정치권에서 두루 신망이 높았던 그가 '박의 호위무사' 역할을 맡는 것이 의아하다거나 안타깝다는 의견이 더러 있다.
한광옥 전 의원은 요동치는 정국에서 비서실장으로 청와대에 들어갔으나, 야당 출신으로서 민심을 제대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평가가 많다. 평생 DJ를 보좌한 그의 역량과 비중을 보더라도 실망스럽다는 것.
나라종금 사태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되면서 민주당 최고위원에서 나락으로 바로 떨어지던 때보다 오히려 더 깜깜한 상황이라는 혹평도 나온다.
◆서청원, 한광옥 논란에 박지원도 주춤
박지원 의원도 예전의 입지가 아니다. '박지원 비상대위원회호(號)'가 당장 5일 공식적으로 닻을 내린다. 국민의당 최대 악재로 꼽혔던 '김수민씨 의혹' 직후부터 160여일간 당 방향키를 잡아온 박 위원장은 원내 제3당으로서 국민의당의 존재감을 성공적으로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탄핵 일정을 짜는 문제에서 국민의당이 일정 추진에 소극적인 것으로 국민들의 눈에 비치면서 많은 항의를 받았다.
박 의원의 경우 정보력 등 많은 장점을 가졌지만 개인 플레이어라는 이미지가 강한 한계를 좀처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원맨쇼 비판을 받았다.
이 같은 상황은 겐로(元老) 정치로 정당이나 계파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복잡한 현안을 처리할 때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답을 도출해온 일본 정치 문화와는 상당히 다른 한국 정치의 상황을 잘 드러낸다.
한국 정치의 원로 부재 상황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특히 지금은 3김시대 이후 적폐를 청산할 새 정치력 있는 인물을 본격적으로 육성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이슈에 그때그때 대응해온 여의도정치의 한계가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는 것.
이는 베이징 정치권에서도 태자당과 공청단파 출신의 갈등 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제대로 정치가 작동하는 것과 비교해도 후진적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공산당 내부의 많은 인물들이 엄정하고 긴 훈련을 통해 일정기간이 지나면 원로군을 형성, 무게추 역할을 하며 최고 수뇌부를 돕고 조언과 고언을 해주는 것과 대조해도 인재 형성과 역할론에 문제가 많다는 진단이다.
이런 가운데 1950년대생 정치인들이 원로급으로 조기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일각의 제언도 따른다.
국민의당에서는 박 의원이 비대위원회에서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는 사이 안철수 전 대표가 다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간철수(이곳저곳 눈치를 살핀다는 의미)' 이미지를 아직 벗지 못하고 있다. 탄핵 정국 같은 상황을 치러내기에는 그간 쌓아온 정치적 경력이 일천하다는 우려가 여전한 것이다.
이에 대안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변호사 출신의 천정배 의원. 일찍이 DJ시대에 정치적 경력을 시작해 노무현정권 탄생에 기여했다. 법무부장관을 지내면서 수사지휘권 발동이라는 희대의 강수를 둬 검찰의 문민통제에 한 획을 그었다.
강성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번 탄핵 논의 중에는 총리를 뽑는 문제를 도외시하고 박 대통령 몰아내기에만 시선을 주면 자칫 '황교안 시스템'으로 남은 임기를 메워야 한다는 점을 날카롭게 들췄다.
◆日식 겐로 정치 이점도 살펴야… 중진 전문가 조기등판론
최근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회동하는 등 초강경 일변도 정책에서 일부 스탠스 변화를 주는 등 상황도 천 의원 등의 '더 큰 그림' 논의를 일부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병두 의원은 민주당 정치인 중에서도 두드러진 이력과 관록의 인물로 이전부터 꼽혀왔다. '을지로위원회' 등 민생 챙기기 행보에도 열을 올린 인물. 정책 공부에 열심이었던 그의 내공이 이번 탄핵 국면에서도 발휘돼 눈길을 끈다.
민 의원은 탄핵안이 발의되면 박 대통령과 그 측근의 정리 작업, 국정에서의 차단 등에 대해 법률로 확고히 못을 박자는 구상을 내놔 시선을 모았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지 못하도록 공무원들에게 엄정 중립 명령을 내리는 새 법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이 안에는 이와 동시에 박 대통령이 임명한 주요 인사들이 국정을 대신 이끄는 '사실상의 박근혜 정부' 대신 다른 국정 비상 동력 가동이 가능하도록 아이디어를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통신기반보호법 개정안을 준비하는 등 과거부터 영역과 이슈를 가리지 않고 뛸 수 있는 아이디어맨으로 통해온 능력이 이번에 톡톡하게 제몫을 한 것.
'학림사건'과 '첨단 IT'까지 한 두름에 꿸 수 있는, 정통성과 시대 공감 능력, 다양한 능력의 인간 콜라보레이션인 셈이다.
이처럼 일부 거물들이 과거의 명성에 비해 주춤하지만, 대신 신진기예하고 열정이 넘치는 인재들로 꼽히던 인사들이 어느새 중진, 더 나아가 정책 능력을 갖춘 거목으로 성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었다는 점이 위안을 준다.
대중성 면에서는 약간 떨어지는 면이 있어도 이들 1950년대생이 원로로 조기등판하면 빨라질 대선 정국에서 선명성 정치(일부 막말 정치도 여기 포함)만이 판치는 와중에도 최소한의 무게중심 역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 섞인 관측도 나온다. 우리 정계가 확보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지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