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거, 그림인가요, 사진인가요?" 얼마 전 가진 내 사진 전시회에서 많이 들은 질문이다.
내 마음이 가는 사진은 유난히도 형태가 흐린 것들이다. 기법상으로는 블러링 사진과 다중 노출 사진들이다. 색은 파스텔 톤. 아마 나는 그 흐린 형태 속에 숨어 있는, 어쩌면 그 뒤에서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무엇'을 보기를 즐겨 하는 것 같다. 무엇을 보는 것일까? 내게는 무엇이 보이는가? 이번 사진전의 작품들에서 나는 '현실과 늘 함께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을 보았다. 그래서 사진전의 제목을 '환상'이라는 뜻의 'ILLUSION'이라고 붙였다.
그 '또 하나의 세상'에서 사랑, 죽음, 그리움, 갈망, 그리고 또 다른 느낌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하나 하나 왔다가는 사라지고 또 다가온다. 그들을 붙잡아 자세히 들여다본다.
◆사랑
사랑. 살아가는 의미를 갖게 해 주는 것. 그 덕분에 아침에 눈뜰 때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고, 가을 단풍은 더 붉고 노랗게 빛난다. 그 덕분에 내 아버지, 어머니와 형제자매, 아내와 아이들, 처가 식구들, 친구와 동료 코치들, 그리고 매일 매 순간 만나는 모든 사람을 보는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랑! 색깔로 치면 파스텔 톤의 노랑 파랑 연보라 색이다. 또 다른 세계에서 나는 사랑을 본다.
◆죽음
우리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을 대해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롤랑바르트는 그의 저서 '밝은 방 - 사진에 관한 단상'에서 사진의 본질은 사랑과 죽음이라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그의 어머니의 죽음이 있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그것이 슬픈가? 그렇다. 죽음을 이별과 연관시켜 생각할 때는. 죽음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만일 있다면 무엇일까? 해답은 아마도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말 언저리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싶다. Here & Now! 또 다른 세계에서 나는 죽음을 본다.
◆그리움
사진에 한창 몰두하기 시작할 무렵 주위 가족 여러 사람이 떠나갔다. 30여 년 만에 경험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간다. 남겨 둔 그림자는 그대로 여기에 있는데, 아니 오히려 더 짙어져 가는데 실체는 더 희미해진다. 그리고 아스라이 훨씬 더 이전의 이미지에 섞여간다. 그리움은 형체 없이 남아 있는 색과 빛의 그림자, 또 다른 세계에서 나는 그리움을 본다.
◆갈망
사진을 찍기 전,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내 상태에 집중하고 자신과 대화를 한다. 짧게는 1분 정도, 길면 30분 정도.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몸과 마음은 편안한가? 무엇이 보이는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카메라를 들고 길을 걸으며, 주위를 보며 생각한다. 무엇이 보이는가? 어떤 빛이 내 눈에 들어오는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또 다른 세계에서 갈망하는 나를 본다.
흐리고 겹쳐진 또 하나의 세상에서 더 뚜렷하게 다가오는 이미지들을 모은다. 그 이미지와 함께 한 내 기억과 꿈도 모은다. 가지런히 모아서 정리하고 다시 본다. 가까이서, 멀리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앉아서, 누워서. 걸으면서, 쉬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새벽 잠에서 깨어나서. 가슴이 뛴다. 이 정리가 끝나면 어떤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인가?
사진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사진과 함께 마음 깊이 어슴푸레 난 길을 따라간다. 삶을 셀프 코칭을 통한 구도의 길이라 한다면 사진 작업은 나에게 끊임없는 성찰 질문의 과정이 된다.
김종성 코치 / (현)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 / 사진작가 / (전) 외환은행 지점장